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우리 집에 한옥(韓屋)이 들어왔다

2022년 9월호(15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1. 11. 18:54

본문

[김원천의 건축이야기 1]

우리 집에 한옥(韓屋)이 들어왔다

사람들에게 한옥 짓는 일을 한다고 말하면 가끔 “소장님은 어디 사세요?, 한옥에 사시죠?”라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한옥사무실에서 일해요. 그리고 한옥호텔을 운영해요.”라고 동문서답하듯 사는 집은 한옥이 아님을 넌지시 알린다.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 아닌데 대답을 피하는 것은 낡은 빌라에 살기 때문이다. 회사를 차리고 사무소에서 가까운 곳에 얻은 집은데 한옥에 살고 싶었으나 비싸서 당시에는 살 엄두를 못 냈다. 


한옥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실제 살고 싶냐 물으면 추위, 공사비용, 유지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살기는 쉽지 않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나도 한옥을 짓는 일을 하면서 한옥관리의 노하우를 알기 위해 한옥호텔을 운영하고, 일하는 사무실도 한옥을 고쳐 8년 이상 경험했지만 온전히 내가 사는 집이 아니기에, 건축주들에게 한옥집의 경험을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살고 있던 빌라의 임대기간이 만료되어 집을 알아봐야 했는데 여전히 도심의 한옥을 매입하거나 땅을 사서 한옥을 짓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아파트를 얻거나 더 멀리 교외에 땅을 매입해 집을 짓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어느 날 와이프가 “여보! 나 동네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이제 사람들과 친해져 동네가 친숙해졌어. 그리고 아이들도 이 동네를 떠나기 싫다네. 지금 사는 빌라가 낡기는 했어도 6년간 살면서 정들었는데 그냥 여기 살면 안 될까?”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애초에 회사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은 동네가 좋아 보여 이사를 왔으니까.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걸어 등하교하는 길과 친구들과 놀던 동네 놀이터, 역사적으로 오래된 가게들이 아직도 영업 중 (중국집 금문, 동양서림, 학림다방)이고, 대학로 방향으로 뻗은 동네의 메인 길은 남향이어서 밝고 따뜻하며 차도와 보도가 잘 나뉘어져 안전해서 걷기 편했다. 동네 전체가 대체로 밝아 걸으면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하는데 이는 아파트보다 3~4층의 낮은 건물이 많고 산과 하늘이 어디서든 잘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가족들은 이 동네가 좋아서 계속 살고 싶다는 것이다. 떠나기 싫을 정도로 애착이 생겼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낡고 조그만 빌라(75m2)였다. 이곳에 살면서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나도 회사를 다녔으니 가족의 보금자리라 부를 수 있다. 거기에 동네를 더 좋아하게 되었으니 이 집을 고쳐 쓰기로 결정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을 고칠 생각을 하고 빌라의 외부와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는데 콘크리트 구조의 방 3개, 화장실 2개, 부엌, 거실, 앞 뒤 베란다로 이뤄진 직사각형의 평면구성으로, 특히 앞뒤로 베란다가 있어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했다. 아쉬운 점은 마감재들이 낡고 벽지가 뜯어진데다 일부 벽에는 곰팡이가 생겨 냄새도 났다. 하지만 구조가 멀쩡하고 거실중심으로 방과 부엌이 잘 배치되어 조금만 고치면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왕 고치니 한옥의 느낌을 줘야겠다 생각하고 특히 나무를 많이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한옥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특히 나무를 가공해 짓는 집이기 때문이다. 나무향이 좋고 만질 수 있어서다. 집을 만질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집에 애착이 생기지 않을까? 피부를 뜻하는 순우리말 ‘살’에서 ‘사랑, 사람, 살다’등의 말들이 만들어졌다는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살이 있어야 서로 불타오르는 사랑을 할 수 있고, 살아있는 사람도 살이 있으니 살아 있는 거다! 최순우 선생님의 ‘부석사 무량수전 베흘림 기둥에 기대어’느끼신 사무치는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목수시절 한겨울 치목장에서 대패질을 하며 맨손으로 만지는 보드라운 소나무의 생기 넘치는 그 감촉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 벽에 붙이는 단순한 내부 장식이 아닌 한옥의 대청을 거실에 넣어 아이들이 소나무 기둥을 껴안을 수 있도록 하자.’
그래서 집 이름을‘포송재’(抱松齋)로 정했다. 기둥은 원통으로 모나지 않게 굴렸지만 집 한가운데 서는 소나무는 껍질만 벗겨낸 후 원목에 가깝게 만들어 껴안기 좋게 세웠다. 기둥을 세우고 소파대신 마루를 놓고, 앞 베란다는 여름에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높였고, 그 앞에 창문을 달았다. 2.4m x 3.6m 의 한옥대청이 우리 집 거실에 들어온 것이다!
최근 한옥 사는 분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추위 때문만이 아니다. 요새 단열재로 좋아지고, 창문도 바람이 덜 들어오게 만들 수 있어 기술적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구조가 원목 그것도 소나무로 짓는 집이라 나무가 습하면 불어나고 건조하면 줄어들게 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비틀리고 갈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육중한 기와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갈라지니 무너지는 것 아닌지 걱정도 되고, 먹색의 기와지붕이 보기는 좋지만 흙으로 얹어놓은 것이라 폭우가 쏟아지기라도 하면 비가 샐까 조마조마 하는 일이 많다. 결국 관리의 어려움이 크다. 요새같이 바쁜 세상에 집을 관리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고 싶은데 이런 걱정이 실제 삶을 불편하게 만드니 1970년대 이후 한옥을 버리고 양옥집이나 아파트로 떠나거나 부수고 새집을 지은 것이 지금 우리 도시의 모습인거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65%에 이른다.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동주택을 터전삼아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공동주택이 도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좁은 땅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 수 있으니 좋은 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한 채씩 짓는 것보다 여러 채를 한꺼번에 지으면서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 집끼리 수평과 수직으로 맞대어 지어지니 에너지도 아낄 수 있어서 관리비도 줄일 수 있다. 꼭 필요한 시설은 공동의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런 집이 도시에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집이 아닐까? 한옥(韓屋)을 말 그대로 ‘한국인이 사는 집’으로 본다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현시대의 한옥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우리 집인거다. 

 

누구에게나 한 번뿐인 인생이고 그런 내 몸을 감싸주는 집을 사랑할 수 있어야 삶이 소중해지기 때문이다. 행복은 문득문득 내 주위에서 나타난다. 그 마음 붙일 소중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 건축하는 이들의 몫이 아닐까? 우리 가족이 선택한 ‘포송재’는 지금 만질 수 있고 껴안을 수 있는 내 집이 되었다. 얼마 전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 현관문을 열었더니 소나무향이 가득했는데 기분 좋아진 아이들이 “와~ 우리 집이 제일 좋다.”를 외쳤다. 동네를 아끼는 마음의 시작이며 오감을 자극하는 우리 집.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와 집도 인생을 소중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좋은 점을 찾으려 노력하되 나쁜 점이 있다면 조금씩 고쳐서 살아갈 때 삶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참우리건축 대표, 김원천 한옥건축가
building@chamooree.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5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