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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드는 행복의 기준

2022년 9월호(15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1. 1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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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9]

 

스스로 만드는 
행복의 기준

 

지난 6월, 여름이 시작될 무렵 우리는 약관 20세에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그의 기사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뒤이어 7월에는 수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필즈상을 39세의 수학자인 허준이 교수가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발 빠르게 자기계발서를 준비 중인 출판사에서는 벌써 책 제목까지 정해 놓았다고 합니다. 《허준이처럼 수학하고, 임윤찬처럼 연주하라》. 예전에는 올림픽이나 콩쿨 기사를 보면 누가 금메달을 땄는지, 누가 우승을 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졌었는데 이젠 어떤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하는지, 곡 해석을 어떻게 했는지, 수상소감은 무엇인지 등이 담겨있는 인터뷰와 기사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고 1등도 좋고 우승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행복한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의 수상소감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개인적으로 수학은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이고, 일반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일입니다.”이 수상소감을 보고 나는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함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종(種)의 위대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수학을 열심히 한 결과 단순히 문제의 답을 아는 것 저 너머의 사고를 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 편견 등과의 맞닥뜨림과 인정… 결국은 진정한 자신을 깨닫는 것이 인생이라면 허준이 교수는 수학을 통해 인생을 통달했나 봅니다.

 

또한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 하고만 사는 게 꿈인데, 그렇게 되면 수입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고 있다.”한국 나이로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데, 그 전에 내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콩쿠르에 나왔다. 음악 앞에 모두가 학생이고, 내가 어느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이 얼마나 신박한 답변입니까? 18세의 청년은 이미 인생을 관통하는 노 철학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허준이 교수와 임윤찬 모두 다독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학을 푸는 사유의 힘도, 음악을 해석하는 힘도 단단한 인문학의 뿌리에서 나온 것임에 분명합니다.

 

경제 발전이 최우선이던 그 시절 우리는 늘 끝없는 비교에 시달렸습니다. 국가 간의 비교는 물론 개인의 성취도 남과의 비교우위에 있을 때 비로소 인정을 받곤 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을 혹여나 하지 못하면 뒤쳐질까 두려워한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경제는 점점 나아졌지만 우리들의 행복지수는 늘 바닥이었지요. 심지어 경제수준이 우리보다 낮아도 행복지수는 훨씬 높은 다른 나라들을 분석하느라 바빴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행복이라는 주관적 기준을 모두 같은 기준에서 찾으려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우리의 젊은이들은 스스로 행복의 기준을 만드는 것에 익숙합니다. 일찌감치 나 자신과 싸우며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허준이, 임윤찬 같은 사람들은 사유하는 과정에서 본질에 집중하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경쟁은 이미 관심 밖에 존재하는 개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세대가 젊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본질을 미래세대인 젊은이들은 먼저 깨달아버린 것이지요. 

 

대한민국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세대 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진보와 보수, 여자와 남자 등 사회 곳곳에서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요. 자기 자신이 목 놓아 외치고 주장하고 애쓰는 그 모든 것들은 전부 다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제 우리 사회에 기쁨을 준 이 두 젊은이를 통해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내가 정해 놓은 행복의 기준은 과연 내가 만든 것인가? 사회적 통념, 남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스스로 만드는 나만의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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