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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도전

삶의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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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스토리 - 성우]

목소리의 도전

 

 

  저는 ‘성우’가 되기 전에는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던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회사를 다니며 현재 하고 있는 일을 60세가 넘어서도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 무렵, 어릴 적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기행 다큐 PD가 되고 싶다던 친구가 여러 번의 고배 끝에 서른이 되어서야 결국 PD가 되었다면서 말이죠. 그때 축하하는 마음보다는 ‘나는?’ 이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지요. ‘내가 하는 이 일이 내가 꿈 꿨던 일이었나?’ 그런데 황당한 것은 제가 꿈꾸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던 겁니다. 친구가 기행 다큐 PD가 되고 싶다고 할 때 마음속으로 ‘그럼 난 내레이션 하는 성우가 돼야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고, 무작정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학원을 등록하여 그때부터 성우가 저의 꿈이 되었습니다. 학원을 다니며 발성을 배우고, 발음을 정확히 하고 연기와 내레이션 등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배워갔지요. 성우는 목소리로 하는 연기자이기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캐릭터의 삶을 연기하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TV와는 다르게 마이크로만 상황과 감정을 연기하여 듣는 이가 상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정밀한 분석과 표현력이 중요합니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과 몸으로 체험하는 모든 것들이 연기의 자양분이 되죠. 그래서 저는 정말 열심히 놀고 최선을 다해 놀았습니다. ‘놀았다’라는 말은 제가 즐겁게 한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여행, 파티, 연애, 운동 등의 경험들이 큰 자산이 되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부딪쳐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성우’라는 직업의 매력은 바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라는 점입니다. 또 온전히 나의 목소리와 탤런트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정년이 없다는 것 등 여러 가지 매력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온전한 내 것으로 일한다는 점입니다. 나의 목소리로 연기하고 내레이션하고 무언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때, 정말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낍니다.


  성우가 된 후 전속생활을 하면서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해 여러 역할을 맡았는데, 그중 ‘와이파이 초한지’라는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벅찼었지요.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택시를 탔는데 ‘와이파이 초한지’ 방송이 나왔습니다. 제가 “어! 와파초다” 라고 하니 기사님이 너무 신나 하시며 정말 재밌다고 극찬을 하셨습니다. 손님 때문에 못듣게 되면 재방 시간에 맞춰 다시 듣는다면서요. 같이 있던 PD가 제가 성우라고 얘기했는데 바로 그때 제가 연기 했던 부분이 들려서 순간 “나다!”했더니, 기사님이 신기해하며 오늘 정말 운이 좋다고 기뻐했습니다. 제가 성우라서가 아니라 제가 출연한 작품이 사랑받는다는 걸 알게 되니 너무 좋았던 거지요. 드라마를 기획하고 연출한 PD와 기술, 효과, 음악 감독, 재밌게 만들고자 애쓴 선배들과 동기들이 한마음으로 만든 작품이어서 정말 보람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은 정신병원의 일상을 다루던 드라마에서 아이를 잃고 밤마다 아이 이름을 외치며 돌아다니던 환자였습니다. 복도에서 들리는 소리여야 하기 때문에 녹음실 안에 있는 필터박스에 들어가 소리를 쳤습니다. 아이 이름을 처절하게 외치는 장면에서는 온 힘을 다해 외치다가도 갑자기 웃다가 울었다가 변화를 줘야 했기에, 하고 나면 진이 빠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장면을 위해 여러 날 연기해야 했지만, 한 번도 하기 싫은 적이 없었습니다. 더 잘 소리치기 위해 녹음이 있는 날에는 말수를 줄이기도 하고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참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여자로서 저음의 소리를 가진 편입니다. 타고난 소리가 저음이라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야 성우가 될 수 있는 줄 알았던 때에는 성우는 꿈도 꾸지 못하고 제 목소리가 좋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서른이 넘어 뒤늦게 성우 준비를 시작하며 제 소리가 개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죠. 목소리가 곧 저의 도장이 된 셈이죠. 저는 목소리를 위해 특별히 관리하지는 않지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잘 먹는 편입니다. 음식을 가리거나 끼니를 거르지 않고, 어머니께서 목에 좋으라고 도라지 정과를 해주시는데, 어머니 덕분에 건강한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 같아요.


  요즘 하고 싶은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커서인지 성우 지망생들이 정말 많습니다. 성우가 되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개성과 연기에 자신감을 가지라는 겁니다. 또 자신의 소리와 연기를 사랑하면서 준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감을 절대 가질 수 없고 좋은 소리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리란 듣기 좋은 소리라기보다 ‘전달이 잘 되는 소리’입니다. 말을 너무 빨리하거나 우물쭈물해서 소리 전달이 잘 안 되는 경우, 아무리 목소리가 좋아도 듣기 싫거든요. 정확한 발음으로 의미 전달에 신경을 써서 말한다면 듣는 사람에겐 참 듣기 좋은 소리가 될 것입니다.

 

KBS 성우 남유정
mocharose@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8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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