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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음악

국악과 유럽 감성이 결합된 재즈 아티스트 이지혜를 만나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09.01 08:24

[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국악과 유럽 감성이 결합된 재즈 아티스트 이지혜를 만나다

 

 

  유난히 무더웠던 7월말, 재즈 보컬리스트 이지혜를 만나러 가는 날은 여름이었지만 가을인양 청명했고 간간히 바람도 불어 날씨부터 재즈의 자유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연희동에 있는 제법 큰 카페 2층에 자리 잡고 두리번거리니, 하얀 민소매를 입은 이지혜씨가 카리스마 있는 무대 위의 모습과는 달리 쑥스러워하는 소녀 같은 모습으로 올라오더군요.

 

처음부터 재즈를 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이지혜씨는 어땠고, 재즈는 본격적으로 언제부터 하게 되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 장기자랑 시간이면 친구들과 화음 맞추며 듀엣을 부르라고 매번 지목 당했죠. ^^ 평소엔 조용한 저였지만, 노래를 할 땐 제 안에서 힘이 나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나는 가수가 될 꺼야’라고 생각한 이후, 본격적으로 1995년 서울재즈아카데미 1기생으로 들어갔죠. 그 당시에는 클래식이 아닌 재즈나 팝을 가르치는 곳이 별로 없었거든요. 재즈 강연과 음악을 들으면서, 특히 즉흥연주를 하면서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지요. 그 이유는 잘 짜여진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게 아니라 바로 무대에서 순발력 있게 창조해 나가고 서로 맞춰가는 재즈의 자유로움이 저를 완전 매료시켰거든요.


보통 재즈하면 미국이 본고장으로 미국에서 공부할 것 같은데요. 특별히 유럽을 선택한 이유는요?
  유학을 결정하고 이곳저곳을 알아보니 유럽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좋고, 무엇보다 들어가기는 힘들지만 학비가 지원이 되더군요. 학부과정을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기로 하고 세 군데 시험을 봤는데 놀랍게도 세 곳이 다 합격되었습니다. 그 중 ‘네덜란드 헤이그왕립음악원’을 택했는데, 이유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에 아예 제일 엄격한 곳을 들어가자고 한 거지요. 물론 공부하기는 정말 만만치 않았어요. 이론과 청음, 발성수업 등을 아주 수준 높게 가르쳤는데, 언어가 잘 안 되니 좀 고생을 했지요. 하지만 제 스스로 군기가 바짝 들어‘난 열심히 할거야! 난 정신 차려야 해!’라고 다잡으며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부지런히 따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여름 방학 두 달을 다른 유럽친구들은 여행도 가면서 여유롭게 지내는데, 저는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지요. 드디어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한 첫 레슨시간 받은 평가는 놀랍게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엉엉 울었어요. 그때 제가 어리석었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유럽문화와 그들의 실제 삶에 관심을 두며 주변도 널리 돌아보게 되었죠.

 


그럼 유럽에서 6년간 공부하고 지금은 벨기에에 살고 있는데요. 유럽교육과 문화가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이고, 또 공부하며 가장 영향을 주었던 스승은 누구인가요?
  제가 재즈분야를 공부하긴 했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유럽은 교수들이 학생들을 일일이 테스트한 다음에 그들을 제대로 파악해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접근하며 가르칩니다. 만약 가르치다가 학생이 소화를 못하면, 테스트를 멈추고 “넌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평가를 내리죠. 그렇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을 똑같이 대하고 차별없이 기회를 균등하게 줍니다. 그리고 영어에는 딱히 존댓말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존댓말을 쓰면서도 존경의 마음이 안 담겨 있을 때가 있죠. 유럽은 존댓말은 안하지만 오히려 가르치는 분들을 존경한다는 것이 역설이죠. 더 좋은 점은 유럽 사람들은 화장을 하거나 말거나, 또 내가 어떻게 입거나 말거나 다른 사람의 눈을 상관하지도 않고, 전혀 외모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사람에 대해 어떻다 저떻다 왈가왈부 하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죠. 이에 반해 한국 사람들은 “너 어디 아프냐?”, “너 얼굴에 점 빼야겠다”등 외모를 지적하는 대화가 빈번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눈치 보는 그물들이 쳐 있는 것 같아요. 유럽은 그런 그물들이 없고 생각도 자유롭게 해서 나와 상대방 의견이 다르면 토론하며 생각을 나누죠.

 

  이런 환경 속에서 저를 새둥지로부터 훨훨 나르게 만든 선생님 세 분을 소개할게요. 먼저 벨기에 뷔르셀에서 대학원 다닐 때 만난 ‘데이비드 린스’David Linx입니다. 벨기에 출신 재즈 가수인데요. 이분에게 2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어요. 그건 바로 제 자신의 마음을 열고 영감(inspiration)을 가지도록 조언해 주신 거였어요. 그전에는 제가 노래를 해도 무언가에 갇혀있거나 혹은 스스로를 닫은 느낌을 가졌는데 말이죠. 그리고 또 한 분은 ‘디드릭 위슬즈’Diederik Wissels 이신데, 바로 데이비드 린스의 작곡자겸 피아니스트로 그분께 앙상블을 1년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 데포트’Kris Defort로 이분에게는 자유즉흥연주(Free Improvisation)를 배웠죠. 이 세 분의 가르침을 받은 후, “저는 완전 날아갔어요! 새가 독립해서 날아가듯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지혜씨의 느낌이 인터뷰어인 저에게도 아주 생생하게 전달되었어요.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날아 갔냐고?) 노래하는 것과 작곡하는데 있어 마치 한계가 없어진 것처럼 되었고, 창조적인 일을 할 때 경계가 없어지고 제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또 즉흥연주를 할 때도 테마를 연주하는 코드와 화음은 똑같이 쓰긴 하지만, 가사도 없고 음도 바로 골라야하죠. 재즈하는 사람들도 자기만의 다른 음들이 있거든요. 틀은 없지만 서로 조화를 찾아가며 연주하는데 거기서 제가 완전히 자유로워진 거죠.

 

< 올해 7월 재즈파크 공연 : 보컬-이지혜, 섹소폰-스테판 드베버, 피아노-김가온, 장구-홍상진>

 

국악과 재즈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를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접목 시키려 했나요?
  저에겐 이런 시도가 너무 자연스런 과정이었죠. 재즈를 제대로 공부하면서 국악도 같이 배웠거든요. ‘네덜란드 헤이그왕립음악원’학부 과정에서의 전공은 재즈 보컬, 부전공으로 클래식 성악을 했고,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국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황병기’선생님의 음반을 사서 듣고 책을 보며 존경하게 되었고, 그 분의 음악에 대한 자세를 배우게 되었죠. 재즈와 국악공부를 함께 공부하다 보니, 이 두개를 같이 조합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정통 재즈의 역사와 스타일 등을 배웠지만, 그것을 가지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었지요.

 

  그리고 국악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우리 가락이니 자연스럽게 접합되었고요. 사실 국악을 공부하기 위해 국악이론에 대한 책을 여러 개 뒤적여 보았지만, 너무 어렵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러다 어린이를 위한 국악이론 책을 보니 ‘기청’선생님께서 쓰신 상·하로 된 책이 글씨도 크고 그림도 있어 너무 쉽고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그 이후 유럽에 머물 때 독일 베를린에 사는 국악인 부부가 1년에 몇 번 뷔르셀에 와서 국악 워크샵을 열었는데, 거기에 참석하며 장구도 배우고 음악적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제가 아주 전문적으로 장구를 연주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경험도 하고 배우게 된 거죠.


 

 

1995년도부터 재즈를 시작했으니 어언 20년을 넘게 했는데 본인에게는 이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옛날에는 사람들이 “노래는 바로 네 인생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사실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죠. 왜냐하면 젊었을 땐 ‘음악 따로 삶 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젠 이 말이 이해가 됩니다. 바로 음악이 제 삶을 성장시켰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재즈는 제가 살아있음을 확인해줍니다.

 

 

공연이 없을 때는 어떻게 지내나요?
  벨기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음악학교가 있어요. 클래식, 재즈, 무용, 미술, 문학, 연극 등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각 도시마다 있답니다. 7살 어린나이부터 70대 전 연령대까지 배울 수 있는데 제가 거기서 가르칩니다. 어쩌면 유럽에서 제일 부러운 게 이 시스템이 아닌가 싶어요. 이젠 한국에도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사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배워간다면 자기 소질이 일찍 계발되고 더 나아가 전공으로 발전할 수 있거든요. 유럽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취미를 가지고 있어요. 문화생활이 몸에 완전 배어 있는 셈이지요. 이렇게 가르치기도 하고 음악관련 자료도 찾고, 또 공연준비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향수병이 저를 힘들게 하지만요!^^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에서의 모습과 평상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네요. 제가 지난 7월 11일 ‘재즈파크’에서 본 재즈공연은 지금까지 본 재즈 공연과는 격이 달라보였어요. 무엇보다 무대에서 공연을 리드해 나가는 이지혜 씨의 말과 행동은 상당히 절제되어 보였거든요.

 

  제가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고, 또 음악공연 때 너무 말을 많이 하면 음악을 듣는데 방해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어렸을 때 가정교육으로는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어머니가 영어교사이셨는데, 집에서도 예의와 진지함을 배운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 이유는 무대에서 카리스마 있게 리드해 가야 제대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 재즈 음악인으로서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처음 재즈를 접했을 때 ‘사라본’이라는 재즈 보컬을 굉장히 좋아해서 따라 불렀는데, 무언가 고독을 느끼게 하는 그분의 감성이 좋았어요. ‘엘라 피츠제럴드’도 재즈 천재이지만 즐거운 분위기인데 반해, ‘사라본’은 즐겁기도 하지만 고독을 아는 것 같아 지금도 여전히 좋아합니다.

 

유럽에서 음반제작을 하셨는데 좋은점이 있다면?
  저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음반이 슬로바키아에 있는 ‘헤브헤시아’에서 발매되었는데요. 음반사 사장님인 ‘얀 서드지나’(Jan Sudzina)님은 예술을 사랑하는 분인데, 제가 어떤 음악을 녹음하든지 상관없다고 원하는 대로 다 하라며 아티스트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분이십니다. 어떤 레이블에서는 지나치게 관여하며 이러면 흥행이 된다 혹은 안된다고 간섭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렇지만 이분은 제가 음반을 내는데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도록 중요한 기여를 해주신 분이죠. 유럽의 이런 문화풍토가 좋은 거죠.

 

앞으로의 계획
  제가 어렸을 때 ‘음악이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기보다 인생에는 너무나 다양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젠 다른 것도 하고 싶어요. 가르치는 것도 괜찮고 아예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노래할거야!”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작곡한 곡을 재즈 후배들에게 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중, 저와 학생기자 등은 이지혜씨의 원-투-쓰리 지휘에 맞춰 재즈에서, 제일 궁금했던 ‘자유즉흥연주’를 아주 조용한 커피숍에서 즉흥적으로 해보는 비밀스러운 재미를 맛보았습니다. 같이 한 네 명 모두 자기 원하는 음정으로 ‘아~~~’소리를 내며서 말입니다. 그런데 음을 변화시켜가며 중간 정도 가니 희한하게 음이 서로 맞아간다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물론 저는 희미하게는 알았지만 전문가인 재즈보컬 이지혜씨가 맞아간다고 알려주셨지요.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무대에서 자유즉흥연주가 이루어진다는 게 신기했거든요. 이지혜씨와의 유쾌한 인터뷰를 마치며 유럽에서 우리나라 재즈 보컬로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모습에 자랑스러웠습니다. 현재 이지혜씨는 재즈와 한국전통음악을 기본으로 본인이 작곡한 곡과 모던재즈로 자신의 밴드인 ‘Jihye Lee Quartet’을 이끌고 있습니다. 2012년 2월 데뷔앨범 ‘가블린 비’(Goblin bee)가 ‘그레고리 카르나스’(Grzegorz Karnas)의 프로듀싱으로 발매되어 그 해 6월 국내 수입 발매되고, 2016년 12월 다이아몬드 스트라 리더(Diamond Sutra Reader)가 발매되었습니다.

 

www.jihyeleemusic.com
유트브 검색어 : 재즈디바 이지혜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5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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