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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는 콘트라베이시스트 조영호

예술/음악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0. 1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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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이야기]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는 콘트라베이시스트 조영호

 

  ‘기교만 추구하는 연주는 즐기는 음악을 방해해’
  ‘음악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고 즐길 수 있어’

 

 

  대학 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에 흠뻑 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작가가 쓴 다른 책을 찾아 읽었는데 제목이 ‘콘트라베이스’였죠.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기억나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간결한 펜 그림의 책표지입니다. 안경을 낀 주인공 옆에 서 있던 커다란 콘트라베이스가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10월호에는 실제 콘트라베이시스트 조영호님의 음악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아무래도 가족의 영향이 컸어요. 아버지는 서울시향에서 오보에를 하셨고 또 교사로 계셨죠. 어머니는 성악을 전공하시고 국립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형도 오보에를 하고 있었고요. 가족 전체가 다 음악을 하니 저도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고 하게 되었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공연하는 오페라 무대를 많이 보았는데 정말 근사했죠. 무대에서 어머니가 시녀로, 또 어떤 때는 귀부인으로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무대를 동경하고 무대에 대한 설렘을 가졌던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의 역할은?
  아시다시피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모니’입니다. 좋은 음악은 빛이 나지 않는 여러 사람들이 같이 동업을 해서 빛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콘트라베이스는 첫 음을 많이 연주하고, 비올라나 세컨드 바이올린은 리듬을, 바이올린, 첼로는 멜로디를 많이 연주하면서 서로 하모니를 이루지요. 바이올린만 있어서도 안 되고 베이스만 있어도 안 되죠. 사회도 직업 귀천 없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해나갈 때 사회 전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듯이 오케스트라에서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슬럼프가 있었나요? 또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슬럼프는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아요. 먼저 저는 대학을 한 번 떨어졌고요.(웃음) ^^ 대학 졸업 후에는 독일로 유학을 갔어요. 부푼 꿈을 가지고 갔는데 처음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뭐야? 도시가 이렇게 쪼그맣고 불빛도 별로 없고, 이렇게 작은데 무슨 선진국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도 없고 조용하고 별로 겁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독일 오케스트라에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학기를 마치고 바로 오디션을 준비했습니다. 오디션이 1차, 2차가 있는데 1차에서 단번에 합격한 거예요. 그래서 한 번 해보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 오디션만 보면 1차에서는 다 붙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본선에서는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오디션을 15번 정도 봤는데 15번을 다 그랬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그중 한 오디션에서는 최종으로 3명이 남았어요. 솔직히 두 명은 저보다는 별로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좀 자신이 있었죠. 제 차례가 되어 연주를 했는데 끝나니까 저에게는 다시 한 번 똑같은 곡을 연주해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연주했죠. 그때 약간 음정이 흔들렸어요. 그랬더니 심사위원 수석이 씩 웃더라고요. 합격 결과는 오디션이 끝나고 바로 알려주는데 제가 또 떨어진 거예요. 속상한 마음에 왜냐고 물어봤더니 “넌 음정이 좋지 않아”하더군요. 그때 많이 실망했어요. 차별 같은 것도 느끼고 너무 낙심해서, 그때부터는 오디션을 아예 안 봤어요. 그리고 한 학기 정도 악기를 놓고 방황을 했죠.
 
  나이가 서른이 되었는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악기를 그만 둘까? 언제까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이런 고민으로 방황을 했어요. 선생님께도 한국으로 돌아가서 오디션을 보겠다고 말하고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한국에 IMF가 터지면서 오디션이 취소가 되었죠. 그때 정말 음악을 그만 둘 생각이었어요. 자동차 정비를 배울까? 요리사가 되어볼까? 제가 방황을 하도 심하게 해서 어머니도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그렇게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무엇이고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죠. 결국 음악이었고 오래 전부터 해오던 콘트라베이스였어요. 그러니 조금 전까지는 지겹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 일이 갑자기 저에게 소중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오디션 준비도 그전의 2~3배로 많이 하고, 어떠한 단점도 지적당하지 않으려고 준비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계기로 오디션에 합격하는 기쁨도 누리고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어요.
 
독일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수습 단원으로 있으면서 한국과 가장 다르게 느꼈던 부분은 개인의 다양성과 그런 개인이 단합하는 힘이었어요. 전체 속에서 역할이 비록 작아도 결국 자기가 중요하고 또 자기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도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같이 가는 것이죠.
  파트별로 연습할 때 수석이 활 긋는 방식을 정하면 보통 우리나라는 그냥 적어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왜?’라고 하면서 토론을 해요. 왜? 활을 아래로 그어야 하는지를, 또 위로 긋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그 이유를 설명해 나가지요. 그래도 수긍이 안 되면 계속 토론을 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릴 경우도 있어요. 이런 토론의 시간에는 나이도 직책도 상관없어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의 말을 들어가면서 결론이 날 때까지 토론하죠. 그렇게 하다 일단 정해지면 독일 사람들은 군말 없이 따라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자리에서는 그냥 따라가지만, 뒷자리에서 “왜 활을 아래로 긋냐?”, “실력이 없다”는 등의 말이 많지요.
  토론을 엄청 길게 하지만 한 번 결정을 내리면 아무 말 없이 따르는 독일 사람들이 그래서 리더쉽leadership도 있고, 팔로우쉽followship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성과 가치에 대해 중요시 여기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 원리와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잘 지키는 문화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고 또 부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존경하는 스승님은?
  여러분이 계시지만, 독일 유학 때 지도교수님이셨던 ‘파이트 페터 슈슬러’선생님입니다. 유학갈 당시 저는 기능적, 기술적으로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가르침 이후 음악을 왜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기술적으로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시험이나 연주회를 앞둘 때마다 실수할까봐 늘 긴장을 하고 음악을 즐기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네가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네 음악을 들으면서 즐길 수 있겠니?”라고 하셨죠. 그 말씀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어요. 제게 “너의 개성, 너만의 음악을 찾아라”라고 조언해 주신 분이셨지요.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제 스스로가 답을 찾도록 가르치셨죠.
  졸업시험 하루 전, 갑자기 교수님이 절 불러내어 맛있는 음식도 사주시고, 이곳저곳 많이 데려가시며 심지어 저녁에 술까지 사주시는 거예요. ‘시험 전날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에 졸업시험이 걱정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제가 그럴 줄 알고 일부러 불러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실수할까 걱정하지 말고, 딱 지금처럼만 해”라고 말씀하시는데, 제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어요. 집에 와서는 술기운에 완전히 골아 떨어져서 아무 생각 없이 푹 자고, 시험도 긴장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하나도 떨지 않고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자의 상태와 지금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아시고 행동해 주신 탁월한 스승이셨지요.
 
음악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자기에게 행복한 음악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학생들 본인이 원해서보다 부모님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배우러 와도 열정이 적고 언제든지 선생님이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기를 바라죠. 그러니 자신을 표현할 줄을 몰라요. 왜 음악을 하려고 하는지 근본 동기가 없이 하다 보니 입시 위주에만 맞추어서 하려고 해요.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하는 법부터 시작합니다. “꼭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지만 한 곳(음악)에 집중하는 것을 훈련하고, 근성을 키우고, 한 번 뚫어보는 경험을 쌓아 그것을 응용해서 다른 것들을 얼마든지 해도 좋다. 음악을 통해서 그 기질을 키웠으면 좋겠다.”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따라 오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아이들을 가르칠 때마다 비록 내가 지금 대가는 아니지만 ‘도’ 만큼은 오늘 내가 대가가 된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다음날에는 ‘레’ 만큼은 내가 대가가 되자, 그 다음은 ‘미’, ‘파’, ‘솔’... 이렇게 전체는 아니지만 각각의 음표마다 최고의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을 하다 보면, 어느덧 아이도 스스로 자신감도 찾고 ‘이 음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지?’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죠. 저는 아이들이 ‘내가 왜 음악을 하지?’라는 질문과 답을 스스로 찾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음악을 하다 보니 전체의 조화를 생각하게 되어, 다시 뒤늦게 지휘를 공부해 올해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저는 앞으로 관악기로 구성된 일반인 밴드를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지만 졸업 후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적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또 누구나 쉽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곡가들은 전부가 신앙인이었다며, 그래서 ‘내가 하는 연주가 그들의 깊은 (종교적) 내적 동기에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깊은 차원은 어떤 것일까?’를 늘 고민한다고 고백하는 조영호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깊은 음악의 본질을 추구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조영호(曺榮浩)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졸업(음악학사)
가천대학교 대학원 지휘과 졸업(지휘석사)
독일 쾰른음대 (Hochschule für Musik Köln)졸업(DIPLOM)
동 대학 최고연주자 과정 졸업(KONZERTEXAMEN)
뒤셀도르프 시립교향악단, 서독방송교향악단 준단원
 
성남시립교향악단 수석
한국 콘트라바스협회 회장
예원, 서울예고, 선화예중, 예고, 서울대 강사
동덕여대 겸임교수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6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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