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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는 알맹이 보다 껍질이 맛있다?

2018년 12월호(제11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2. 1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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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성벽을 둘러보고]



  호두는 알맹이 보다 

껍질이 맛있다?



 


 중국 남방(남경, 소주, 상해)의 화려하고 품격있는 중국의 비단옷, 다양한 찻잎과 다기들, 음악, 서예와 그림 및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는 건축물을 경험하면서 저는 호두의 고소한 알맹이가 떠올랐습니다. 단단한 껍질 속에 고소한 알맹이가 들어있는 이 음식이 제가 경험한 중국의 남방문화에 딱 맞는 듯이 보였지요.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 고소한 내용물보다 단단한 껍질에 관해 음미해보려 합니다. 명나라 초기의 수도였던 남경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과 이를 가능케 한 정치/경제구조, 그리고 그 껍질을 통해 추론해 보는 남방 중국인들의 심성에 관해서입니다.


▲ 사진속 건너편 입구에서 시작된 명성벽(중화문)의 두께


 1. 남경의 명나라 성벽  


 남경의 명나라 성벽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건축한 것으로 ①궁성 ②황성 ③경성 ④외곽성의 4중 구조로 건설(1393~1366)되었습니다. 그 규모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규모로 외곽성이 60㎞, 경성이 35㎞에 달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한양과 비교한다면 한양의 둘레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싸고, 그 외곽도 역시 다시 한 번 더 둘러싼 것입니다. 거기에 황제가 거하는 황궁을 주변으로 하여 별도로 2개의 성벽을 더 쌓았지요. 그리고 경성성벽을 따라 총 13개의 성문을 달았습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명성벽 경성 13개 문 가운데 하나인 ‘중화문’인데 폭이 118m, 길이가 128m로 성문에 쳐들어 온 적군을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며 공격할 수 있도록 해두었고, 성벽사이에 수천 명의 군사를 숨겨둘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중국 전역에서 가져온 돌들이었는데 각 돌마다 맡은 관리의 이름이 적혀있어 일종의 ‘실명제’를 실시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문이 성벽을 따라 13개가 있었는데 13이란 숫자는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 북두칠성은 ‘죽음’을 남두육성은 ‘삶’을 관장한다고 믿어졌는데 이는 삶부터 죽음까지의 전체, 우주의 질서의 중심이 명나라 황제가 거하는 수도 남경에 있다는 당시 한족의 세계관을 암시합니다.



2. 명성벽을 통해 생각해 본 중국의 정치/경제구조 


 남경 성벽의 잔해에 떨어지는 노을을 보면서 그 당시 이것을 건설했을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중국인들의 땀과 노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런 규모의 성벽을 건설하는 비용은 얼마 정도였으며 어떤 방식으로 마련되었을까요? 현지에서 이에 관한 설명은 없었으나 주원장이 집권 후 강남일대의 부자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이주시키고 당시 최고의 부자였던 ‘심만삼’을 운남지방으로 유배를 보내버린 사실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당시 황제의 권력과 중앙집권적 정치구조의 모습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황제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구조가 형성되어 거대한 성벽의 건설을 추진할 수 있었고, 또한 문제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권력자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한편, 이러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의 그늘에는 중국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있었습니다. 항상 북방민족의 위협에 시달렸던 남송, 그리고 짧은 원나라의 통치와 명나라의 건국, 그리고 정변을 통한 수도의 이전 등 유목민족과 한족의 정권교체때마다 겪어야 했던 급격한 변화는 경제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수백 년 이상 경제력을 쌓아가며 힘을 키워낸 대상인들이 유럽에서는 나타나지만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이라고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말합니다. 이러한 대상인들의 출현으로 시장경제를 넘어선 자본주의가 나타날 수 있었는데 중국은 이것이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것이죠.      



3. 외적 구조 속 중국인들의 심성


 눈에 보이는 이런 성벽과 정치, 경제구조의 껍질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심성은 어떠한 것일까요? 중국을 여행하는 누구나 다 실감할 것이지만, 중국의 지리적 규모는 사실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넓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지리적 경계선이 정권이 바뀔때마다 계속 변동되었기 때문입니다. 혹 지리적 경계에 대한 불안이 자신의 둘레를 확고하게 세우고 방어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요? 4중(궁성/황성/경성/외곽성)으로 된 명성벽이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명성벽 뿐 아니라 중국의 다른 건축물들 역시 벽이 무척이나 높습니다. 영락제가 북경에 세운 자금성 역시 그러합니다. 이와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궁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라가 백제를 무너뜨리고 발해와 더불어 남북국 시대를 연 뒤에 고려는 474년, 조선은 500년을 지속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한반도의 대외전략은 북쪽을 잘 틀어막으면 되었기에 중국에 비해서 불안의 심리는 더 적었다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성벽이나 궁궐의 크기를 보고 갖는 자부심 속에는 사실 경계의 미확정과 정치적 변동에서 오는 불안이 숨어있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과 정치적 변동이 중국인 특유의 ‘관시’문화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관시문화’는 식당에서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식당에 가면 ‘원’으로 된 탁자에 빙 둘러서 밥을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요리를 시켜놓고 원에 놓아 조금씩 돌려가며 먹습니다. 이러한 원 안에 누가 같이 앉을 수 있을까요? 가족과 친구들입니다. 원 밖의 사람은 외부인이며 원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러한 ‘관시(關係)’는 해외에 나간 중국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성, 시, 고향마을에서 온 사람들끼리 똘똘 뭉칩니다. 남경이 4개의 원으로 둘러쳐져 있듯이 ‘관시’의 원도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쉽게 ‘친구’라 부르는 바깥 원에서부터 진정 마음과 이해관계를 내어놓을 수 있는 속 안의 원까지 중국인들의 보이지 않는 관계의 망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의 가장 중심부를 ‘중화사상’이라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란 자부심, 굳이 애써서 밖을 살펴 배울 필요가 없으며 다른 민족은 한족의 황제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대상에 불과합니다.



4. 단단해 보이는 호두껍질도 망치로 치면 깨진다.


 절대 뚫을 수 없어 보이는 4중으로 둘러쳐진 남경의 방어는 말 타고 쳐들어온 만주족에 의해서 그리고 영국군(난징조약, 1842년)과 일본군(난징대학살, 1937~38)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이 4겹으로 둘러쳐진 성벽은 나를 보호해주는 방패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내가 밖을 살피는 것을 막는 ‘감옥’이라는 것을 주원장은 알지 못한 듯합니다. 거대한 성벽을 건설할 만큼 번영했던 경제력 역시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유럽만큼은 나아가지 못했지요.


 중국전역을 말 타고 순례한 청나라의 황제들도 결국 이 ‘중국 중심’, 바로 ‘중화’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고, 영국은 아편을 팔아서라도 이 땅을 밟기를 원했으며, 일본 역시 중국을 집어삼킬 야욕에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패망을 자초했으니 ‘중원’은 주변을 빨아들여 침몰하는 늪지대와 같은 걸까요?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남기고 ‘중화문’은 오늘도 남경의 하늘을 쓸쓸히 지켜보고 서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말과 마차까지도  올라 갈수 있게 설계한 명성벽(중화문) 안 




법무법인신지 파트너 변호사 황경태
kt.hwang32@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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