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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없다!(3)

2018년 12월호(제11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2. 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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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연구여행 3]



  중국은 없다!(3)


 


 지난번 호까지(9월호, 11월호) 우리는 ‘중국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다섯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


 1) 중국에는 종교가 없다! 인류가 동진하는 가운데 중국에 이르러서는 종교가 세속화된 무종교사회로 되었다가, 다시 세속이 유교, 도교라는 종교를 만들어내는 세속의 종교화가 일어난 사회가 중국임을 보았습니다.


 2) 중국에는 지도/지리가 없다! 중국의 북쪽, 서쪽의 지리적 형태는 문(만리장성)으로는 결코 걸어 잠글 수 없고 단지 개방된 채로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열린 문으로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빠른 말과 청동기, 철기문화로 정주민족을 정복하였으며, 그래서 중국인들에게 정치심리학적으로 불안한 방어적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3) 중국에는 민족이 없다! 이런 열린 문 혹은 고물줄처럼 늘어날 수 있는 모호한 지리적 경계선은 중국인에게 모호한 민족적 정체성을 만드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의 정치적 팽창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현대공산주의 중국은 구조적으로 민족과 종교를 부인하는 한계를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과 종교를 포괄적으로 허용하며 섬세하게 다스렸던 청나라에 비하여, 전혀 다른 민족과 종교를 가진 신장위구르(이슬람)와 티벳(불교)지역 때문에 그 통치가 항구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중국에는 사상/철학이 없다! 애초에 공자의 사상은 정치적 안정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2천년 이상을 이어간 그 후배들(맹자, 순자, 한비자, 이사, 주희, 왕양명, 훈고학자들, 강유위, 양계초)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정치철학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반대로 현실을 떠난 도가/도교나 본래적으로 역사초월적인 불교는 유학에도 영향을 미쳐 현실과 동떨어진 선비들의 골방 안에서의 철학만 하도록 만들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은 앞에서 말한, 중국이 매우 일찍 무종교사회가 되어버려서 궁극적이고 영원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 경향을 가진 것과도 관계됩니다. 제대로 된 사상/철학은 1) 본질적으로는 종교와의 대화에서 견고한 기초를 얻으며, 2) 역사와 사회현상의 도전 속에서 건강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중국에는 정치가 없다! 정치는 한 인간과 그 인간이 이루는 사회가 가치있는 삶과 문화를 추구하는 것을 도우는 도구, 체제,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가진 삼대 탐욕(물질욕, 성욕, 지배욕)을 근본적으로 책망할 절대종교가 중국에는 없기 때문에, 진정한 가치있는 삶을 도우는 정치가 없었던 나라가 되었습니다. 들어서는 왕조나 왕권마다 지배욕의 투쟁과정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물질욕과 성욕까지 마음껏 만족시킬 수 있으니, 중국의 오랜 역사는 그야말로 지배욕들의 투쟁의 역사라고까지 말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진시황을 필두로 하는 황제절대권의 전형이 만들어져서 2천년 역사 전체가 이런 절대권 혹은 그 뒤에 숨어서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세력들(환관 혹은 외척)에 의해서 유지되었지요. 공산주의의 무지막지한 철권통치를 이룬 모택동이나 제2의 모택동이 되려하는 시진핑을 중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절대종교가 없는 세속사회 속에서 절대신 대신에 인간 절대통치자를 받아들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 가지 주제를 덧붙여 이 제목(중국은 없다!)을 완성하려 합니다 : 6) 개인/공동체가 없다!, 7) 역사가 없다!, 8) 문화가 없다!  



 6) 개인이 없다! / 공동체가 없다!


 14억이나 되는 중국인을 향해서 중국에는 개인이 없다!라는 말이 이상할 뿐 아니라 어불성설처럼 들릴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이란 사회, 전통, 민족, 역사 등의 그 어떤 것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는 절대적 독자성/독립성을 가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서구에서도 이런 의미의 개인이 드러난 것은 기독교적 영향력 이후였다고 합니다(래리 시덴톱, Inventing the Individual 개인의 탄생, 2014).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아테네조차 한 사람은 ‘시민’이라는 의미 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기독교가 가진 성경은 인간 개인을 먼저 ‘신의 형상’을 닮은 신의 창조물로 선언합니다. 이어서 ‘선악과’는 인간이 자신을 만든 신까지 배신할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자유를 가졌지만,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법칙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신이 준 법칙에 순종해야 할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관에서는 ‘개인의 양심’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간이 행동의 ‘자유’를 누리지만 동시에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개인임을 드러냅니다. 물론 서구에서 이렇게 시작된 개인은 현대에 와서는 극단적 개인주의로 경도될 위험까지 나타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 눈을 오래된 전통사회인 동양을 향해 돌리면 비단 중국뿐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한국도 이런 의미의 개인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최근의 연구(마르티나 도이휠러, 조선 20181121)로서 드러났듯이, 지난 ‘1500년동안 한국사회의 핵심집단은 씨족’이었으며 이런 경향을 씨족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유교가 훨씬 더 강화시킨 거지요.   


 이렇게 절대적 판단을 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개인이 없고 사회, 전통이 우선하게 될 때 생기는 현상은 1) 개인의 독자적 양심의 중요함과, 2) 행동의 자유와 3) 그것에 대해 책임지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씨족적, 전통적으로 행동하게 되니, 씨족과 전통의 방어막 아래서 행동하는 삶을 살게 되지요. 이런 사회 속에서는 개인윤리는 무의미하게 될 뿐 아니라, 지켜야 할 법도 매우 상대적으로 여겨서, 법을 어기고도 얼마든지 수단(가족, 시 등)를 사용하여 책임을 면하려는 전통이 동양에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개인관을 가진가운데 중국인은 거대하고 둥근 땅덩어리에 통일을 이룬지 무려 2천년이 지났습니다. 중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절대적 개인’은 중국인 개개인이 아니라 중국 전체를 통치하는 황제 한 사람, 공산당의 주석일 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사람은 그에게 봉사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수족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런 현상과 더불어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이한 현상은 중국에는 공동체가 없다!’는 겁니다. 중국은 오랫동안 조상신을 섬기는 것을 계속해 왔으며 유교도 그런 방향으로 가족화된 가운데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내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면 필연적으로 다른 가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결국 내 가족 절대주의가 생길 수밖에 없고 이것이 가족들끼리의 수많은 다툼과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들과 왕권들은 이런 내 가족 중심주의를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집단들에 불과하고, 항구적인 가족들끼리의 투쟁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그 지역 속의 모든 개인, 가족, 민족, 집단들이 상호 불필요한 투쟁없이 서로 가치있는 삶을 사는 체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소행성의 날’이 선정되었는데 화성과 목성 사이에 존재하는 소행성대의 엄청나게 많는 소행성들(지름이 2km 이상은 10만개, 그보다 작은 것은 10억개)이 지구에 날아들어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의 원폭과 같은 피해를 일으키는 것을 같이 대비하자는 취지에서이지요. 이렇게 지구를 파멸할 외적 요인이 일어날 때에 인간끼리 그동안 싸우던 싸움을 중지하고 일치단결하여 그 요인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는‘공동체’를 우리는 의미합니다. 즉 혈통, 언어, 민족, 문화(명)를 초월해 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집단이지요. 그러나 중국은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눈덩이굴리기’를 계속하여 모든 민족들을 중앙을 향하여 모으려는 구심력적 태도를 지닌 집단을 줄기차게 형성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50여개의 민족과 문화와 종교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거대한 씨족인 한족중심주의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는 겁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원심력적 태도를 가지고 외부로 나가되 외부와의 만남에서 자신까지 새롭게 변화시켜가는 집단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7) 중국에는 역사가 없다!


 이것 역시 매우 대범한 주장입니다. 역사를 보는 두 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순환적/반복적’, 2) ‘직선적/발전적’. 순환적 역사관은 역사란 일어났던 일이 계속 일어나고 반복하는 순환과 같다는 겁니다. 직선적 역사관은 어떤 방향을 향하여 역사가 진행하거나 발전한다는 생각입니다. 실제 역사에는 이 두 요소가 어느 정도 병존하지만, 중국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이 역사의 순환성인데,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린 것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첫째, 중국은 무려 3천년 전부터 무종교적인 세속사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 행위에 재갈을 물리는 절대법이 없었고 인간행동에 책임을 지게 만드는 절대자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단지 지배하는 자가 법이고 기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수많은 왕조들이 바뀌고 긴 시간이 흘러도 인간의 욕망들의 투쟁이 반복되는 순환적 역사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불투명한 민족정체성은 당연히 불투명한 역사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이미 ‘중국에는 민족이 없다!’를 말씀드렸지만, 역사는 민족이 자기 땅에서 일구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에는 민족정체성이 선명하지 않으니 역사정체성도 선명하지 않거나 심지어 조작될 가능성까지 많습니다. 중국이 주장할 수 있는 민족정체성은 크게 유목민족적 정체성정주민족적 정체성 두 가지 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민족들이 서로 교차해 가면서 중국대륙을 정복하고 다스렸기 때문에, 어느 것이 본질적으로 중국적인 것이냐를 따지기가 매우 애매하고, 민족적 자의식의 분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왕조의 역사를 유목민족과 정주민족의 구성으로 구별해보면 이런 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를 중국서쪽 끝에 있었던 이민족 국가로 본다면 그때부터 현대까지 2200년의 중국역사 중에서 유목민족 정권이 지배한 기간은 무려 7/10 정도가 됩니다. 유목민족들은 원래 문자,역사에 무관심한 사람들이며 단순히 중국 전체를 통치하며 지배하기를 원하였을 뿐입니다. 이들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중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이냐 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둘째는 중국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지배하던 정주민족과 섞여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무인정신은 잃어버리고 이들과 동일하게 문약과 문화적 호사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로 많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세 태도 중의 하나를 취하였습니다.


 1) 적극적으로 중국에 들어가며 철저히 중국화되기를 원한 경우 : 대표적인 것은 짧은 기간이지만 가장 먼저 중국을 통치하였던 선비족의 북위입니다. 북위의 풍태후와 효문제는 나라를 적극적으로 한화(漢化)하기를 원해서, 황제가문의 성도 ‘탁발씨’에서 중국식인 ‘원’으로 바꾸었으며 모든 제도를 그렇게 했으며 유목민족의 조잡한 문명을 다 버리도록 하였습니다.


 2) 중국에 결코 동화되지 않고 분리했으며 유목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한 경우 : 몽골족의 원나라는 마지막으로 정복한 남송의 사람들을 가장 낮은 사회계층으로 취급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명나라가 중원을 다시 석권하였을 때에 이들은 망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북쪽으로 도망갔을 뿐이고 거기서 정권을 유지하였는데 이 정권은 보통 북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족들 중에서, 이민족 정권 중에서 가장 반감을 가진 것은 원나라입니다.


 3) 중국에 적극적으로 들어갔으나 통치는 자신들이 하지만 정주민족들은 수족처럼 부리는 체제를 만든 경우 : 거란족의 요나라가 화북을 점령하면서 북쪽에 거주하는 자신들을 통치하는 기구로는 ‘북면관’, 남쪽에 거주하는 한족을 통치하는 기구로는 ‘남면관’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을 여진족의 금나라도 이어받았고, 실제로 같은 여진족의 후대 정권인 청나라도 발전적으로 계승하였습니다.


 이렇게 민족적 정체성의 혼돈은 역사적 정체성의 혼돈으로 이어졌으며, 유목민족과 정주민족 중에 어느 역사가 정통인가 하는 문제로 중국은 늘 혼돈스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사조작이 매우 손쉬울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것이 정권가진 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이 중국인들 속에 널리 퍼져있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는 민족, 언어, 역사에 관련해서는 분명히 한반도 정권에 속하지만, 한 때 중국에 조공을 바친 것 때문에 중국의 변방정권이라고 억지부리는 동북공정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어느 민족, 정권, 역사에 있어서 어느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서 자기 정권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역사조작의 유혹은 있기 마련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중국은 위와 같은 역사적 정체성의 혼돈 때문에 역사조작은 어떤 민족과 역사보다도 심할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중국에는 문화가 없다!


 위대한 문명을 이룩한 중국에 대해서 이 말은 앞에 했던 주장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역설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먼저 문화란 정치, 경제와 대비되는 좁은 의미의 예술 정도가 아니라 인간(들)이 의식을 가지고 이루는 총체적인 가치있는 삶의 체계로, 또 ‘문명’은 ‘그 문화의 기술적, 물질적 차원’이라고 정의해 봅시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예를 든다면 중국은 나침판/자석, 화약, 제지술이라는 탁월한 문명을 이루었지만, 결국 뒤에 이것을 받아들여서 전세계를 배로 항해하며 정복한 기술, 최첨단 대포와 총, 문화발전의 기초가 되는 문서문화를 이룬 서양에 역전되었습니다. 서양이 우월한 것은 이런 기술문명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과학들과 함께 종교, 철학, 윤리, 역사, 심리와 같은 종교학, 인문학, 사회학이 하나의 총체적 체계로서의 문화를 이룬 점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실용적인 것을 추구한 중국에 비해, 원리적인 것을 추구한 서양은 서로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동양은 처음부터 내내 신비한 점성술에 머문 반면, 서양은 그것을 원리적으로 추구하여서 수학, 천문학으로 발전시켜 21세기에 인류가 우주로 나갈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중국은 화약이라는 실용적인 것을 발명했지만, 서양은 그것을 화학, 물리학이라는 가장 원리적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뉴턴의 물리학으로 원리적 혁명을 일으켰다면,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으로 또 한 번의 원리적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둘째, 중국은 부분적이고 상호연관이 없는 문명을 추구한 반면, 서양은 총체적 일관성 있는 문화를 이루어 갔습니다. 중국은 어떤 문명을 발전시켜도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과의 상관이 없는 부분화된 가운데 머물고 말았기 때문에, 거대한 체계로서의 문화를 형성하기보다 기술문명의 차원에 머물렀습니다. 그렇지만 서양은 어떤 한 영역의 일은 반드시 인간 삶의 총체적 면과 연관된 가운데 진정한 가치를 따지는 문화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종교, 철학과 같은 근본적인 영역의 발전과 변화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과 예술의 영역에서의 발전의 방아쇠를 당기는 체제를 만든 겁니다.


 셋째, 중국은 정치(황제)권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구조를 만든 반면, 양은 각 개인이 자기가 추구할 영역들에 자발적으로 찾아서 몰입하는 구조를 이루어 갔습니다. 역사적 사례를 들어보자면, 18세기 말 영국의 메카트니경이 건륭제를 알현했을 때에 망원경과 그와 함께 달린 정교한 시계를 선물로 준 일이 있었습니다. 천체를 관측하고 난 뒤에 그 시간을 즉각 알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지요. 그렇지만 건륭제는 그것을 남방의 장인들에게 명하여 그대로 만들라고 하여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였을 뿐, 서양과의 교역 뿐 아니라 서양의 분화, 발전하는 과학과 산업과 사회구조에는 관심이 전무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정권(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산업, 기술의 발전을 이루는 구조를 가진데 비해, 서양은 기술발전이 정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권과 상관없는 사업가(상인)들과 기술자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구조가 되었던 겁니다. 서양은 산업혁명 이후로 점차로 사회가 분화, 발전되어 갔으며, 아편전쟁 당시 중국은 군사력에서뿐 아니라 문화의 총체적 차원에서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21세기 중국이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답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동도서기(동양의 도, 서양의 기술)이라는 이전의 선배들의 헛소리를 반복하거나 단순히 서양의 일부 혹은 전부를 복제하면 된다는 어리석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독자 여러분께 ‘중국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매우 당돌한(?) 8가지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너무나 좋고, 깊이가 있으며, 도량이 넓은 수많은 중국인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의도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14억이나 되는 중국인이나 남한의 50배나 되는 넓이와 엄청나게 긴 역사를 가진 중국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평가해본 것입니다. 이제 다음 호에는 ‘중국은 있다!’라는 주제로 몇 번에 걸쳐서 다루려고 하는데, 독자 여러분은 이 모두를 다 읽고 난 뒤에, 이런 저런 내용에 찬성과 반대를 들면서 토론한 후에 과연 ‘없다!’와 ‘있다!’중에 어떤 쪽으로 기울지를 선택하여 중국과의 좋은 관계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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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8호 중국은 없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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