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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으로 뻥! 전율하게 하는 오케스트라의 기둥

예술/음악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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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이야기]

한 방으로 뻥!
전율하게 하는 오케스트라의 기둥

 

< 코리안 심포니 팀파니스트 김한규>

   프로필
    경희대 음악대학 졸업, 조선일보 신인음악회 출연. 베를린국립음대 졸업(Diplom)
    동대학 최고연주자과정 수료.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독주회
    현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팀파니수석 
    현 경희대, 이화여대, 한양대 겸임교수, 숙명여대 출강

 

팀파니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그 소리는 사람의 심장 박동과 닮았다고들 합니다. 그래서인지 둥~ 둥~거리며 울릴 때는 심장이 떨리면서 몸이 반응을 하고, 특히 클라이맥스에서는 그 소리로 인해 감동이 더하게 됩니다. 8월의 예술인을 찾아 코리안 심포니의 ‘김한규 팀파니 수석'을 만났습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연주자 속에 음악적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느껴져서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나올까? 빨리 알고 싶어졌습니다.

 

팀파니 인생의 시작
  어릴 때는 노래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어요. 악보는 볼 줄 몰랐지만 피아노 치는 누나 옆에서 보며 어깨너머로 음을 배웠고, 혼자서 카세트 오디오 두 대를 갖다놓고 번갈아가며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파트를 각각 녹음하여 4성부 합창을 만들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하하). 그러다 성악을 전공할 기회가 생겼는데 노래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고 왜 이렇게 힘들게 노래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갑자기 성악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하지만 워낙 음악을 좋아했던 저에게 어머니는 서울시향의 타악기 연주자 분을 소개시켜주셨는데, 그 때부터 제 타악기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졸업후 진로를 고민하다 음악의 본고장인 독일, 그 곳엔 어떤 것이 다를까, 무엇이 더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유학을 떠나게 되었지요.

 

팀파니의 매력
  팀파니는 오케스트라의 기둥과도 같아요. 바이올린, 플룻 등 멜로디 악기들이 건물의 아름다운 선과 데코가 된다면 팀파니는 곡 전체의 템포를 책임지고 리듬이라는 음악의 골격을 담당하지요. 기둥이 흔들리면 건물 전체가 흔들리겠지요.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서 'Second Conductor'라는 수식어가 따른답니다. 그리고 연주회를 하다보면 조명에 따라, 온도에 따라서 금관악기나 현악기들의 음의 높이(pitch)가 변할 때가 자주 있어요. 이 때마다 팀파니스트는 오케스트라의 전체 음정에 민감히 반응하면서 연주해야 합니다. 팀파니는 북이지만 음정이 있고, 음정이 있지만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음정은 팀파니의 아래에 있는 페달로 맞추는데 북을 조이거나 늦추면서 조율을 합니다. 그리고 팀파니라는 타악기는 리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굉장히 음악적이고, 민감하고, 멜로디적 이어야합니다. 음이 많지 않고 멜로디가 한정되어있기에 다른 멜로디 악기들 보다 음악을 표현하는게 훨씬 더 어려울 수 있어요. 또 팀파니의 매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클라이맥스, 긴장감, 희열의 꼭대기에서 한 방으로 뻥 뚫으며 전율하게 하는 것이지요.

 

 

팀파니 연주자로 가장 힘들었던 시간
  팀파니 연주에 앞서 제게는 엄청난 무대 공포증이 있었어요. 내 것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을 많이 쑥스러워 했었고, 심지어 옆에 한 사람만 있어도 덜덜 떨었지요. 타악기는 특징상 손이 아주 민감하게 움직여야 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유학시절 한 학기에 한번씩 열리는 '타악기 클래스 향상 음악회'가 있었어요. 저도 연주시간 10분정도의 비브라폰 곡을 외워서 연주해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떨림이 오기 시작하더니 1분도 채 되지 않아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생각이 날 때까지 아무거나 쳤지요. 연주자로서 그렇게 비참한 경험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 죽고 싶었으니까요. 연주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려왔어요. 그런데 저의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선생님이 저의 등을 떠미시더니 다시 나가서 인사를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당시 선생님의 말씀과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요. "오늘 너의 연주를 보러 온 사람들이 너의 연주를 듣고, 너를 위해서 박수를 쳤기 때문에 충분히 감사의 인사를 하고 들어와야 한다. 그것이 무대에서의 너의 운명이고, 의무이다.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좋은 연주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고, 그 이후로 단 한 명을 위한 연주에도 목숨을 다해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럼, 무대 공포증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저는 늘 자신감이 부족했고, 실제로 부족한 부분을 연습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유학시절 저의 일과는 아침에 눈뜨면 집을 나가 학교 지하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면 잠을 자야하는 생활을 늘 했답니다.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연주회를 하루 앞둔 그날 저녁, 선생님과 맥주를 앞에 놓고 나누었던 그 대화를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네 속에는 정말 좋은 음악이 있어. 그러나 잘 할 수 있는데 두려움이 너무 많아. 그것이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니? 실수라면 교수인 나도 한다. 그러니 내일은 너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네가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 보여주고 싶은 전부를 다 보여주도록 해," 늘 들어오던 말씀 같았으나 그말이 다음날 저에게 스파크가 튈 듯한 충격과 변화를 주게 될 줄 몰랐어요.
  다음 날 연주하면서 악보 곳곳에 ‘이 부분은... 이렇게 표현해야지’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었고, 조금도 떨리지 않았어요. 물론 실수한 부분도 있었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지나갔지요. 예전에는 실수를 하게 되면 그것이 자꾸 생각이 나서 뒷부분을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그 날의 연주는 실수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행복한 연주였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콱! 박힌 것만 같았어요. 지금은 그 때보다 기량도 많이 좋아지고, 더 원숙한 연주를 할 수 있겠지만 그 날의 연주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겁니다. 독일 학생들도, 선생님께서도 기립박수를 쳐주시고 연주를 함께 다니는 중에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만나서도 저의 연주를 칭찬해 주셨거든요. 그런 저의 선생님이 제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2개월 후에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지금도 저의 선생님 '에드가 국가이스(Edgar Guggeis 전 베를린국립음대 타악기 교수)'를 생각하면... 목이 메입니다. 제 인생에 음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온몸으로 가르쳐 주신 분이었으니까요.

 

그 스승의 그 제자
  코리안 심포니의 팀파니 수석으로 스케줄이 엄청나지만, 그런 중에도 대학교에 학생들을 가르치러 갈 때가 되면 마음이 설레입니다. 제가 선생님께 배운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주고 싶기 때문이지요. 먼저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판단하거나 평가하기보다, 제 안에 있는 것을 끌어주신 선생님처럼 저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가르치고 있어요. 또 저의 연주가 인터넷 동영상으로 나가면서 지방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배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좋은 연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실수도 하지만 저의 연주를 보고 배우는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앞으로 독주회(타악기)도 잘 준비해서 타악기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더 성숙한 연주자로 살아갈 계획입니다.

 

  젊고 활기 찬 김한규 팀파니스트를 만나는 내내 좋은 선생님을 만난  사람의 행복한 에너지가 전해졌습니다. 자신을 절망의 늪에서 끌어주셨던 스승을 기억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자신의 프로필 문구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스승이란 단순히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사람이다’. ‘에드가 국가이스’(Edgar Guggeis) 스승을 본받아 자신도 진정한 스승 되길 바라는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한규 팀파니스트 
jclsg3@hanmail.net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4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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