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115호)

공적인 일탈의 시즌! 하나미!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7. 7. 22:25

[내가 경험한 일본문화]

공적인 일탈의 시즌! 하나미!

작년 무더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저는 한국에서 일본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을 잘할 수 있겠다는 꿈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10년 전, 일본에서 잠시 살았던 경험으로 일본문화를 대략 알고 또 일본어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쿄에서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회사내의 문화였습니다. 사적인 질문과 잡담은 마치 사내 금지인 것처럼 직원들은 오로지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없고, 핸드폰을 충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적막감이 흐르는 사무실에 있다 보니 제 발걸음 소리가 그렇게 큰지도 여기 와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점심이면 각자 사온 도시락으로 혼밥을 하고, 제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회사 내에서는 일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저는 마치 습한 사우나탕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이제야 일본 직장 문화에 적응이 된 건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할 때쯤 어느덧 2019년 봄이 오고 벚꽃이 한창인 4월이 되었습니다.


“자, 자, 오늘은 오전근무만 하고, 오후에는 사쿠라 하나미(花見, 하나미-꽃 구경 가는 것을 의미)다!”, “예? 일하다 말고 갑자기 꽃구경을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지요. 더 충격적인 것은 개미 걸어가는 소리도 들릴 것처럼 그렇게도 조용한 사무실에 사장의 그 한마디로 동료들은 모두 들떴습니다. ‘입사한 이래 회사가 이렇게 시끄럽다니...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동료들의 활기찬 모습에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도대체 벚꽃이 뭐길래 이토록 일본인들이 흥분을 하고, 뉴스에서는 잘못 전한 사쿠라 개화시기에 대해 엎드려 절할 만큼 사과를 하는가?’라고 말이지요. 벚꽃이 단순히 국가를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에 그런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본인들에게 ‘하나미’란 특별함 이상이었습니다. 하나미는 3월말과 4월초에 만개하는 꽃을 보는 축제로 그 대표 꽃이 사쿠라(벚꽃)이며 졸업과 입학, 입사 그리고 회계연도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그 중심에는 하나미가 있습니다.
보통 달력에서는 1년이 1월부터 12월까지이지만, 일본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4월에서 그 다음해의 3월까지를 하나의 ‘회계연도’로 하여 정부가 예산을 집행하는 기간으로 삼습니다. 그 때문에 회사와 학교에서는 신입생 환영회도 할 겸, 한 해를 시작하는 일정을 잡아야 하니 모두들 뉴스에 집중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래서 그렇게 사쿠라 만개 시기 뉴스에 민감했던 것이었습니다. 
한 번쯤 이 시기에 사쿠라를 구경하러 일본에 방문한 분들은 눈치 채셨을지 모르지만 이 기간만큼은 모든 공원에 사람들이 파란 시트를 펼쳐 놓고 공적으로 시끄럽게 떠들며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기간에는 없던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며 일본인들이 유독 활기찬 시기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일본인들이 이때를 좋아하는지 일본의 ‘날씨 예보 뉴스’에 따르면 일본인의 98%가 벚꽃을 좋아한다고 답했고, 5명 중 3명이 올 봄 하나미에 나설 예정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벚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덕분에 미야모토 가츠히로(宮本勝浩) 간사이대학 명예교수는 “하나미의 경제효과가 연간 6,500억 엔(약 6조6,000억 원)에 달하고, 이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1,600억 엔(약 1조7000억 원)이 외국인 관광객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사쿠라의 만개시기를 알리는 것은 봄 학기 시작의 팡파레이자 일본 회사 입장에서는 유일한 봄 소풍 같은 날이지요. 더군다나 올해는 5월 1일부터 31년 만에 헤이세이(平成) 대신 레이와(令和)라는 새로운 연호를 교체해서 사용하기에, 일본인들 사이에는 이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뜻에서 설렘과 기대 속에 맞이하는 하나미가 더욱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미는 역사적으로, 일본 귀족들이 시작한 놀이 문화로 나라시대(710~794)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매화를, 이후 헤이안 시대(794~1185)에는 벚꽃을 함께 감상한 것이 하나미의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 후 무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하나미를 대규모 연회로 발전시킨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였고,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그는 태평성대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594년 5,000명 규모의 ‘요시노(吉野)의 하나미’와 1598년 1,300명 규모의 ‘다이고(醍醐)의 하나미’를 개최해 다도(茶道)와 시를 즐겼다고 합니다. 수도가 지금의 도쿄(東京)지역으로 옮겨간 에도시대(1603~1867)부터는 서민들도 하나미를 같이 즐기게 되었고요. 


이렇게 시작된 사내의 사쿠라 축제! 적어도 40~60년정도 된 사쿠라 나무들은 우아하고 몸집이 커서 사쿠라 속에 있을 때 마치 아름다운 궁전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에 걸맞은 레드카펫을 까는 것이 아니라 농촌 작업장이나 공사장에서나 쓸 법한 블루 시트였습니다. 도무지 자연과 어우러지지 않는 이 새파란 색은 바로 돗자리였습니다. 꽃 터널 아래 빽빽하게 펼쳐진 파란 블루시트는 각 회사 및 단체가 아침부터 서둘러 자리를 맡아놓기 위한 ‘내 자리 찜!’의 표시였습니다. 이것 때문에 뉴스에서는 블루시트를 규제해 달라는 당부를 끊임없이 합니다. 벚꽃으로 흐드러진 공원 안에서 작은 공간조차 찾기 힘든 사람들과 미리 자리를 맡아 놓은 사람들로 인해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제가 다니는 회사는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꽃구경 산책을 한 후, 한 식당에서 회식을 하고 해산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를 차지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할까요? 흔히 일본인들을 예의가 바르고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배려의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시즌만큼은 무질서가 공식적으로 허락된 나들이로 평소 남에게 피해 줘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일본들에게는 공인된 일탈의 시즌입니다. 저는 이 날만큼은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다른사람에게 피해줄까봐 조심조심하는데 그날만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말을 하고 왁자지걸하게 떠들 수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술이 들어가지 않은채 말이지요. (보통 술이 들어가야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일탈도 잠시, 나들이에서는 다들 왁자지껄 했지만 회사로 복귀하고서는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로 돌아갔습니다. 저 혼자만 꽃가루 알레르기로 아쉽게도 가지 못한 동료들에게 어제 본 벚꽃에 대해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그 동료를 불편하게 하거나 놀리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쉼과 감동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틀 안에서 정해진 때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낸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며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싶어서 말입니다. 잠시 폈다 순간 사라지는 사쿠라처럼 잠시 들떴다 순간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본의 삶이 허무하기도 해서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쿠라를 보기 위해 자리를 잡을 때 다양한 시트를 깔아도 될 법한데, 튀면 절대 안 되는 일본인들의 정서 때문인지 동일한 재질, 동일한 색인 파란 블루시트를 꼭 깔아야만 되는 자리쟁탈전에 내년엔 제가 준비한 빨간 레드 카펫을 깔아봐야겠습니다. 이들에게는 너무 획기적일까요? 

 

 

일본 타이요홀딩스_사우메니지먼트 
데이터분석가, 김지혜
Kim.jihye@taiyo-hd.co.jp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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