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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New Tango)는 왜 창조적인가?

예술/음악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1.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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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에 대하여]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New Tango)는 왜 창조적인가?


  자주 가던 실내악 연주회에서 어느 날 우연하게 탱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탱고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탱고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 했었지요. 특히 탱고가 춤곡이라는 것 때문에 춤에는 익숙하지 않은 저에게 더 멀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주된 곡들은 물론 처음 들어본 곡인데도 무언가 친숙한 것 같고 깊은 감동을 마음 속에 남겼습니다. 춤곡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클래식 음악처럼 깊고 순수한 느낌이 들었지요. 이 음악에 매료된 저는 바로 이 곡들의 작곡자인 ‘피아졸라’를 찾아 보게 되었고, 과연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였기에 이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탱고’는 왜 매력적인가?

  탱고의 여러 곡들을 찾아 들어보면서 그 멜로디 안에 무언가 슬픔과 애절함에 호소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특히 그 멜로디에 사용된 가사들도 대부분 이루지 못한 소망과 사랑 같은데서 비롯되는 슬픔을 담은 내용들이 많았지요. 사실 탱고는 아르헨티나라기보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뒷골목의 하층민 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즉 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되었기에 탱고에는 이별과 패배와 같은, 일종의 ‘한’의 정서가 깔려있다는 거지요. 탱고를 들을 때 느껴지는 슬픔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탱고는 후에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 당시 남미로 건너온 여러 유럽 이민자들의 힘든 상황에서 많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초기에는 남성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추던 춤이었다고 하니까요. 특히 탱고의 이런 면들을 생각하면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 것 같고, 한국인 중에 탱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요?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된 작곡가 피아졸라의 증조부도 1880년대 아르헨티나가 이루었던 전성기에 성공을 꿈꾸는 유럽의 이민자들 속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로 아르헨티나로 왔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의 해안지역 마르델플라타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 Astor Piazzolla의 사계(Four Seasons) >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는 왜 새로우면서 깊을까요?

  첫째, 피아졸라의 출발점이 ‘탱고이자 동시에 클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받았지만, 장난기 많은 소년에겐 어울리지 않았는지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군요. 그러다가 뉴욕에 거주할 때 피아졸라의 옆집에 살던 ‘벨라 윌다’라는 피아니스트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인 라흐마니노프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연주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은 피아졸라는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탱고는 잊어버리고 클래식에만 몰두할 정도로 클래식은 그에게 매력적이었고, 실제로 후에 많은 클래식 곡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피아졸라는 클래식에 빠져들긴 했지만, 태어난 곳이 탱고의 본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였기 때문에 ‘탱고에서 받은 영향을 지울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전설적 탱고가수 ‘가르델’과의 만남 이후에 그는 탱고에 점차 빠져들었지요. 하지만 탱고가 가진 뒷골목 배경 때문일까요? 그는 한편으로 탱고를 연주한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프랑스에서 ‘불랑제’를 만난 후에야 탱고와 클래식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하는 불필요한 갈등을 이겨내고, 그 둘을 융합한 전혀 새로운 탱고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즉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누에보 탱고’가 이렇게 창조된 겁니다.


  셋째, 특히 피아졸라는 ‘재즈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더 나아가 재즈 뿐 아니라 다양한 음악들을 받아들이고 융합하고자 노력했지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음악도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전자음악이 나오자 ‘일렉트로닉 옥텟’을 창단할 정도로 음악의 폭을 넓혀갔습니다.



“나에게 있어 탱고는 발보다 귀를 위한 것이다.”


  피아졸라가 남긴 말입니다. 그는 음악으로서만의 탱고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를 원했고, 탱고를 비판하고 멀리하는 사람들에게 탱고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피아졸라의 바람과 탱고와 재즈, 클래식 등을 하나로 소화해 낸 결과 그의 ‘누에보 탱고’는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탱고에 쉽고 더 풍성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즈와 클래식 마니아들 역시 그의 음악을 친숙하고 새롭게 접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만약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 속에 클래식이 들어가 있지 않았더라면 그 곡들이 그렇게 깊은 요소들을 담을 수 있었을까요? 정반대로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 속에 탱고가 없었다면 그 애절함과 열정이 전달될 수 있었을까요? 클래식과 탱고를 합쳤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해내어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을 창조해내었기 때문에,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는 탱고의 발전이자 재즈의 발전이고 클래식의 발전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예찬(중3)

rhtndud1020@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7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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