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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6) 링컨의 미국 제16대 대통령 (재)취임연설

2021년 1월호(13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2. 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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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의 내면 들여다보기 6]

 

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6)
링컨의 미국 제16대 대통령 (재)취임연설

[출처] Getty Images Library of Congress

우리에게 2021년의 시작은 우한폐렴(코로나19)으로 당장의 생존을 위해 급박하게 돌아간 상황으로 기억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럴수록 정반대로 사건,역사,문화의 근본을 천착한다면, 전격적인 회복과 완전히 새로운 출구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 근본을 파고드는 작업의 하나로서, 우리는 격동의 시대에 위대한 지도자였던,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라는 당대의 별명으로 불리워진 에이브러험 링컨이 가진 내면세계를 벌써 여섯 번째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런 별명으로 불리워진 것이 정당한 이유는, 현대의 지도자와는 너무나 다르게 언행과 심지어 내면세계까지 완전히 하나로 통일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링컨보다 150여년 전(1716,1723)에 어떤 유명한 음악가가 작곡한, 너무나 아름다운 곡인 칸타타(BWV 147a,147)의 제목과 같이 말입니다 : ‘마음과 입과 행동과 삶’(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1) J.S.Bach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드러난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흔히 쉽사리 파악되지 않은 한 사람의 내면세계까지 환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정치가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

 

1) 급격한 정치적 각성(‘aroused’ 1854)에 이은 상원의원 도전을 향한 적극적 공세로서 더글러스와 7차에 걸친 정치 토론회 개최(1858)

2) 15대 대통령 당선(1860)과 전쟁에 수동적으로 끌려들어감(1861)

3) 노예해방선언,게티스버그연설(1863)로 노예문제의 적극적 해결책으로의 선회

4) 16대 대통령 당선(1864)과 노예해방을 향한 헌법수정 제13조의 통과(1865.1.31)

 

그는 이제 로 자기의 전 생애를 마무리할 차례입니다. 16대 대통령으로서의 취임은 그가 지금까지 했던, 부정적인 것(노예제도)을 극복하는 과제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재취임연설에서 남은 말은 그가 남긴 여태까지의 모든 공적인 말 중에서 단연 최고였습니다.

 

1. 링컨이 정치가로서 평생동안 기초로 삼았던 세 근거 : 독립선언문, 헌법, 성경

링컨이 정치가로서 평생동안 기초로 삼았던 근거는 세 개이지만, 앞의 두 가지인 독립선언문헌법은 링컨과 미국에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들은 국가적,문화적,역사적 한계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1) 독립선언문에 한계가 있다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국독립선언서는 영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치적 자유와 독립은 적극적으로 말하지만, 자신 가운데 실존하는, 또 다른 속박당한 자인 흑인들의 자유와 해방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입니다. 먼저, 노예주의자들은 이 침묵을, 독립을 쟁취할 당시 미국의 조상들의 생각에는 흑인들에게 같은 자유와 해방은 당연히 없다소극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침묵은 곧 부재(不在)’라는 겁니다. 반면에 링컨은 독립선언서를 미국에서 아주 중요한 권위를 가지지만, 역사적 문서, 즉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으니 시대적 한계가 있는 작품으로 보았습니다. 즉 조상들은 당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인,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과제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인류 보편 문제이자 미국이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흑인들의 해방과 자유라는 문제를 후대에 넘겼다는 의미로 이 침묵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침묵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여는 것으로 본 겁니다. 사실 독립선언서 작성에서 핵심인물이었던 토마스 제퍼슨마저 흑인 여자에게서 사생아를 얻었고 심지어는 이렇게 생긴 아이를 노예로 팔아버리는 위선과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링컨은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조상들은 비판불가능한 대상이 아니며, 또 그들이 만든 역사적 작품도 절대 변화시킬 수 없는 신주단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았습니다. 이런 작품은 미국적,문화적,역사적 결과물로서의 권위만 가졌기 때문에, 이제 자신의 시대에 새로운 도전 앞에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링컨이 궁극적으로 의지한 것은, 게티스버그연설에서도 나타났듯이, ‘만인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독립선언문이나 헌법의 상위에 있는 전제proposition인 성경에 의존했던 겁니다. 만약 정반대로, 당시에 전개되기 시작하였던 진화론에 의지하여, 인간을 우연히 발생한 생물의 하나로만 본다면, 결국 만인평등설이 부인될 수밖에 없으며, 히틀러,스탈린,모택동,일제의 만행들은 전혀 비난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릴 것이었습니다.

 

2) 헌법에 한계가 있다니?

헌법 역시 한계를 가졌음을, 독립이후 링컨까지 89년 동안 무려 12회나 수정되었던 사실을 통해서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흑인 노예제도는, 헌법없는 영국의 경우 국회에서 오랫동안 벌였던 치열한 논쟁을 거친 후에 명시적으로 부정되어 불법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기초인 헌법에서는 흑인 노예제도를 명시적으로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조항이 바로 헌법수정 제13인 것입니다. 이것도 독립선언문에서와 마찬가지로 헌법에서의 침묵이나 불명확한 점을 악을 행하는 빌미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못박은 겁니다. 흑인 노예 문제에 대한 헌법수정이 제13조이며, 그 이후에 계속 수정이 이루어져서 최근에는 1971년에 효력이 발생한 헌법수정 제26조까지 진행되었습니다.2) 심지어는 1920년에 효력을 발휘한 헌법수정 제18조 자체가 1933년에 발효되는 헌법수정 제21조에 의해서 폐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바위와 같은 미국적,문화적,역사적 기초였던 두 가지 외에, 링컨은 그 어떤 영구한 반석 위에 우뚝 서야 했겠습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3) 그러면 성경에는 한계가 없는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 봅시다. 그러면 (적어도 링컨에게) 성경은 한계가 없는가? 근세 서구에서 스피노자를 위시해서 일어난 성경에 대한 비판,비평은 여러 단계를 거쳤습니다 :

 

1) 그리스,로마의 작품을 기준으로 삼는 서구문학과 오래된 동양의 책인 성경(특히 구약성경)을 단순무식하게 비교할

    때에 발생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2) 19세기 초까지 문학성 자체를 비교하는 (저등)문학비평과,

3) 거기에 헤겔의 역사철학을 가미하여 발생한 19세기 이후의 고등문학비평,

4) 20세기에 다양한 문명이 가진 고대의 종교서적과 성경을 비교하는 양식비평등의 시대제한적인 방법들을 사용함으로      논리 위주의 서양신학은 고대  (서쪽)동양의 책이자 종교적 계시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다름’ otherness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는 사실이 이제는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젊은 시절에 19세기 당시까지의 철학과 신학의 사조를 따라 성경을 논리적으로 비평,비판하고, 이것과 함께 교회,목회자의 실천적 부조리를 묶어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치적으로 각성한 1845년 이후는, 인간이 그 근본과 깊이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전능주 하나님의 섭리’ unfathomable divine providence of the Sovereign God의 손안에 장악되어 움직여지는 링컨 자신을 통해서 만들어 가시는 미국 역사를 발견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에게 창조주인 자신을 부인할 수도 있는 신적 자유를 주셨음과 동시에 1) 놀랍고 신비한 섭리로 미국의 현실 역사를 움직여 가시고, 2) 링컨 자신은 그 섭리에 의한 도구나 장기말처럼 움직여지는 수동적 존재라는 사실에 전율한 겁니다. 미국 사회의 근본적 악인 노예제도를 결정적으로 바꾸기로 하나님은 결정하셨다는 점에 링컨은 동의하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이것을 이루기 위해 링컨의 생명 자체를 좌지우지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장을 방문했을 때도 적이 자신을 관찰하여 저격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큰 키로 비쩍 서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병사중 하나가 위급한 중에 이 자식아, 고개 숙이란 말이야!”라고 고함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에 인간의 생명이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로 마감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링컨은 시대정신,철학,경향을 따라서 성경을 비판,비평하여 성경 위에 인간이 올라서려는 허망하고도 교만한 신학자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오래된 성경을 읽는 중에 살아있는 하나님이 현재 자신의 시대에 주시는 객관적 음성과 뜻을 들으며 그 앞에 순종하려는 보통 사람의 경건한 자세를 가졌습니다. 성경 각권은 기록된 성경이 전달되어 읽혀질 첫 시대 사람들을 위한 글이었다는 점에서는 명백하게 시대적,역사적 작품입니다. 하지만 링컨은 그런 물질성,시대성을 관통하여, 보편 인간이라면 누구나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시로서 성경을 받아들인 겁니다. 신학적 전문수업을 받지 않았던 것이 링컨에게는 오히려 복이 되었던 셈입니다. 성경은 한계가 없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링컨 스스로는 이중적으로 답했을 것입니다:

 

1) 일단 성경은 첫 번째 수납자를 위한 것이므로 시대적 한계가 있다.

2) 그러나 후대에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그 시대성을 초월한 영적 메시지와 계시를 찾아서 그것을 자신의 시대에 역사화

    하고 링컨이 남긴 것처럼 영속화할 수 있는, 열려있는 책이 성경이므로 한계가 없다.

 

이런 태도는 기록된 책으로서의 성경 자체를 아예 하나님 자신과 동등할 정도의 우상과 같이 받들려는 성경주의자’ biblicist들의 자세와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오히려 링컨에게 성경은 살벌한 정치세계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책이었습니다. 반면에 성경주의자들에게 있어 성경은 교회 안에만 비겁하게 머물러 있게 만드는 것이었고, 그 결과로 세상을 향한 그 어떤 정책화,정당화(정치이론을 가진 정치단체구성),정치화,역사화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자신의 마지막 인 재취임연설을, 이때까지의 이론적 근거로 삼았던 독립선언서나 헌법을 버리고, 유일하고 영원한 근거이자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철저하게 기초해서 작성했습니다. 당시 민주당편 신문인 NY Word는 이 연설에 대해서 단순하게 종교가 정치를 대신했다’. NY Tribune성결한 성경적 의미가 평화의 가능성을 방해한다고 비난할 정도였습니다.

 

2. 성경의 기초 위에 선 재취임 연설의 특징 :

링컨이 내뿜었던 중에서 단연 최고인 이 연설은 오직 성경에만 모든 기초를 둔 결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링컨의 평가 자체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전의 연설들(: 게티스버그연설)에서는 자신의 말이 곧 잊혀질 것이라고 겸손하게 판단했지만, 이번 연설에 대해서는 굉장한 기대를 걸었으며 역사적 작품이 될 것을 미리 짐작했습니다. 이 연설이 끝나자 반응이 궁금했던 링컨은 취임식 이후의 리셉션에서 만난, 흑인 노예였다가 해방되어 의원에까지 오른 프레드릭 더글러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연설이 당장에는 인기가 없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그가 서로우 위드에게 남긴 말이나 미리 작성했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상]에도 표현했습니다: “나는 이 연설이 즉각적으로 환영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 목적에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인간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men are not flattered.” 링컨은 이 공적인 을 작성하는 데에 그동안 내적으로 이루었던 모든 지혜와 역사에 대한 통찰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비록 700여자로 이루어진 짧은 연설문이지만 구약성경의 시작인 창세기부터 신약성경의 끝에 놓인 책인 야고보서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적용,응용하였고, [신학적 명상]까지 미리 적어놓았습니다. 링컨은 누가 가르쳐준 것을 배우지 않고 섬세한 마음으로 외부의 자극과 성경이 내면에 비치는 빛을 평생 스스로 학습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죽기 직전까지 배움을 이루어가서 나이가 들수록 성경을 통하여 깊은 명상에 들어가고 지혜로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연설문에 포함된, 링컨이 인용,적용한 성경, 혹은 성경을 사용한 명상 일곱 개를 살피면서, 그의 내면에서 넘실거렸던 생각을 추적해 봅시다 : 1) 창세기 3:19, 2) 마태복음 7:1, 3) 누가복음 17:1(=마태복음 18;7), 4) 시편 19:9, 5) 시편 147:3, 6) 야고보서 1:27, 7)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상]

 

1) 인생관과 노동관을 성경에서 인용 :

창세기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링컨은 성경의 첫 부분인 창세기의 시작에 표현된, 인간은 땀을 흘려야 먹을 자격을 가진다는, 인간 삶의 현실적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이 성경구절을 훨씬 신날하게 현재의 상황에 적용해서 말했기 때문에, 당시에 이것을 듣는 사람들의 귀가 쨍하게 울릴 정도였을 것입니다. 남부군은 Deo vindice(하나님이 우리를 확증하시리라’)를 외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북군을 항하여 돌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링컨은 이런 사람들을 다른 사람(흑인노예)들이 흘린 땀으로 얻은 빵을 쥐어짜내듯이 탈취하는” wringing their bread from the sweat of other men’s faces 악한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연단되었던 면도날 같은 입이 그의 인생의 가장 후반부에도 발휘되었던 겁니다.

 

2) 건강한 비평적 삶을 성경에서 인용 :

마태복음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지만 링컨은 더 깊은 지혜를 발휘하여, 비판하는 것 자체를 여기서 딱 멈추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어서 산상수훈(마태복음 5~7)에서 가르친, 형제의 눈 속의 티끌은 잘 보아도, 자신의 눈 속의 대들보를 보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매우 비관적인 인간관을 받아들였고, 이 진리가 자기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겸손함 때문에 역사에 뛰어들지도 못하고 무능하게 역사를 관조만 하고, 자신의 손에 더러운 때를 묻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깨끗하고 거룩하다고 자위하는 어리석음이나 위선을 링컨은 범하지 않았습니다.

 

3) 역사진행 원리에 대한 성경인용 :

누가복음 17:1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마태복음 18:7)

즉 링컨은 60만명이 죽어나가는 치열한 현실 역사를 어떻게 평가해야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피하지 않았고,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는 대답을 찾아냅니다. 서로 나누어져 싸우는 두 편 모두 같은 성경을 읽으며, 모두 같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똑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링컨은 직시했습니다. 위에서 말한반란군’(남부군에 대한 링컨의 용어)의 위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북군(연방군) 또한, J.W.Howe가 불렀던 공화국의 전쟁 찬송’ Battle Hymn of the Republic에서처럼 자신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봉사하는 의로운 전쟁’ righteous war을 치른다는,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확신을 가졌던 겁니다. 링컨은 타인을 함부로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전쟁이 일어난 과정과 결과를 섬세하고 균형있게 그리고 과감하게 증언했습니다. “모두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했고, 모두가 전쟁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연방군은 전쟁없이 연방을 구하려고 했고, 반란군insurgent agents은 교섭,타협에 의한 효과를 무력화시키고 전쟁없이 연방을 붕괴시키려고 했고”, 양쪽 모두 가진 안일할 태도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냉정하게 선언합니다.

그런데 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특수하고도 강력한 이익’ a peculiar and powerful interest남부에 주로 몰려있는, 미국 인구의 1/8에 해당하는 흑인노예라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서슬 푸르게 지적합니다. 그런데 반란군의 잘못은 전쟁으로 연방이 해체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이익을 강화시키고,영구화시키며,확장시키려는 적극성에 있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연방군이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는단지 노예제도 사용지역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소극성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링컨의 논리는 정말 합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란군과 함께 연방군 역시 어리석었던 이유도 말합니다. 모두 “(1) 전쟁의 참화가 이처럼 엄청나며, (2) 그 기간 또한 4년을 넘길 정도로 길어진다는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며, (3) 그 누구도 전쟁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거나, 심지어 전쟁 자체를 불필요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양측 모두는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나타난 결과는 덜 근본적이고 덜 놀라운 것(초라하고 비참한 것)이 되었다고 단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신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양측 모두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수 있으며, 그 어떤 쪽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되지 않으리라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전능주는 (인간들과는 별개로) 당신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링컨이 작성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상]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좀 더 단순하게 묘사합니다: “양쪽 모두 틀렸든지, 적어도 한쪽은 틀렸다.”

 

그러면 아주 중요한 원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악은 왜 생기느냐는 신학에서 전통적인 신정론’(神正論,theodicy)에서 늘 다루던 질문입니다. 링컨의 위대성은 여느 철학자처럼 자신이 창안하였지만 증명할 수 없이 주장만하는 철학적 전제에 기초를 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어버릴 인간의 철학적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넘어지게 하는(실족失足하게 하는) offenses이 없을 수는 없다는 예수가 말한 진리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렇지만 링컨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 offenses의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즉 그 원인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창조주를 배신할 수도 있는 신적일 정도의 놀라운 자유(창세기 2:17 선악과의 실재적 의미)를 인간이 자기 기준과 자기 마음대로 쓴 것에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정반대로 그 넘어지게 하는 것(존재)을 허락한 하나님의 심원한 섭리를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5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이 찾았던 답변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애를 다른 사람으로 넘어지게 하는 일에 쓴 사람에게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악하게 사용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저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예수의 선언이었습니다. 링컨은 이 진리를 자기 상황에 적용하여 미국의 노예제도를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만드는,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인 미국의 독립이후 지금까지 당분간 지켜보신 제도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하나님이 그것을 바꾸시려고 작정한 섭리의 때(‘불쌍한 자에게 은혜를,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는 은혜와 공의의 해’)가 돌아왔기 때문에, 남부와 북부 모두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존재)’ offenses에게 주어지는 저주로서 이 섬뜩한 전쟁이 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를 링컨은 찾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자들이라면, 하나님께 돌려드릴 신적 속성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구분해 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수사적으로’ rhetorically 질문합니다. 이어서 성경에 근거하여 수사적 답변을 섬뜩하고도 신날한 방식으로 내어놓습니다. 바로 직접 인용한 시편 19:9을 통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the judge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다음호에서는 링컨이 재취임연설을 위해 근거했던 나머지 성경들(시편 19:9, 시편 147:3, 야고보서 1:27)과 링컨이 써서 책상 서랍 안에만 넣어두었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상]을 다루겠습니다. 이어서 링컨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 링컨의 정체성으로 링컨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 전체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 제1곡 Chorus는 링컨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과 입과 행동과 삶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드려야 하네. 그가 하나님이시자 구세주라는 사실을 두려움이나 위선이 없이 증거해야 하네"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muss von Christo Zeugnis geben ohne Furcht und Heuchelei, dass er God und Heiland sei.   
2) 한국헌법은 정권이 바뀌면 헌법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꾸어버리는 열등한 프랑스적인 정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헌법을 수정해가면서 250년을 지나온 미국의 헌법정신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것은 물질주의적,인본주의적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인간 상위에 그 어느 분이 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정권을 장악하는 자마다 최고 권위를 영구히 가지려고 헌법 자체를 바꾸어버리는 철학적전통을 가지게 된 겁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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