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163호)

왜 일본은 우리를 무시하는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2. 2. 13:12

[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6]

왜 일본은 우리를 무시하는가?

 

 요즘 한일 관계가 뜨겁습니다. 위안부, 징용, 독도 등등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뜨겁긴 한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양새입니다. 최근 일본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서술했습니다. 엄연히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인데 이웃나라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도 초등학교에 교과서에 실었으니 말입니다.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면 독도를 ‘무력’으로라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웃나라가 우리 땅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이웃나라를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왜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일까요. 역사를 한 번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은 무엇일까요? 일본과의 싸움인 임진왜란이라고도 하고, 청나라에 굴복한 병자호란이라고도 하겠지만 압도적인 대답은 역시 일본에게 36년간 나라를 빼앗긴 것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5천 년 역사를 이어가다보면 이런저런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임진왜란처럼 방심하여 왕이 나라 끝 의주까지 도망간 때도 있고, 병자호란처럼 명분만 따지며 남한산성에서 덜덜 떨다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여 머리를 조아릴 때도 있었고, 방심하고 명분만 좇다가, 대세에 어두워 나라도 빼앗기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렇게 역사는 지나왔습니다. 한편 생각해보면 한 번도 시련을 겪지 않고 나라도 빼앗기지 않고 어떻게 5천 년을 이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역사는 공짜가 없습니다. 시련을 주면 반대로 기회도 줍니다. 임진왜란을 겪었지만 임진왜란을 겪은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통해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했습니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멀리하고 유교적 명분을 잃은 광해군은 인조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사대 명분만 좇다가 청나라의 침략을 받고 삼전도에서 머리를 아홉 번 박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모도 공짜는 아니었습니다. 항복의 조건으로 소현세자가 청나라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 소현세자는 서구의 학문과 청나라 문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청에게 항복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던 신문물에 대한 정보를 소현세자를 통해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명분론에 입각한 인조와 신하들이 소현세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차에 일어난 죽음이라 여러 가지 억측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청에게 항복한 것이 아쉬운 게 아니라 소현세자가 다음 왕위를 이어가지 못한 게 더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건 치욕이긴 하지만 전 그렇게 치욕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면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심정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술국치보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해방 이후 우리가 보여준 태도입니다. 5천 년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나라를 빼앗기고 다시 찾았으면 당연히 친일을 정리하여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역사의 정기를 바로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1910년 8월 29일이 가장 치욕적인 날이 아닙니다. 해방이 된 지 80여 년이 되어 가는데도 과거 역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역사의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2023년 오늘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이 아닐까요? 오늘도 일본이 우리를 무시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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