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163호)

잠잠한 호수 같은 시골 공간과 시간 속에 돌 던지기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2. 2. 13:19

[상상농부 이야기 14]

잠잠한 호수 같은
시골 공간과 시간 속에 
돌 던지기

 

2023년 4월. 버섯 농부 5년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40대 중반까지의 이전 삶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농업 영역에 뛰어든 시간들이 엊그제 같았는데 말이지요. ‘송화고’ 버섯이라는 작물만큼은 가장 잘 키울 줄 아는 농부가, 단순히 농사만 잘 짓는 것이 아닌 최고의 품질과 영양가 풍성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해 주는 농부사장이 되기 위해, 그리고 땅만 바라보는 것에 익숙한 농부들의 시각을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지역 농부들 모임을 위해, 시골의 어린 촌놈들과 함께 공부하고, 운동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뛰어 오다보니 시간이 살처럼 지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들을 위해 농부로서 지난 시간들을 정리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싶어 글을 써 보았습니다.   

최고 농산물은 책임이 어우러진 합작품
한 작물에 있어서 최고의 농부가 되는 것은 농부 혼자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송화고 버섯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요. 배지가 입상이 된 후에 온도, 습도, 환기, 때에 맞는 솎는 작업 등 버섯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거나, 가장 예쁘고 싱싱한 버섯들을 수확하는 것 등은 농부의 실력과 정성에 달려있습니다. 하지만 종균 회사에서 오염되거나 기형적인 종균을 배지 공장에 제공하거나, 종균 회사가 최고의 우량 종균을 배지 공장에 제공해도 배지 공장에서 배양과정에 실수를 범한다면 농부들이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가진다 해도 최고의 작물을 재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12번의 배지를 받는 동안 50%는 항상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로 종균의 문제로 인해 예상치 못한 기형 버섯들이 생산되거나, 배양 문제로 인한 감소된 수확량 앞에서 농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막상 결과가 벌어지면 대부분 농부의 책임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최고의 농산물은 종균(자) 회사, 배지 회사, 농부’이 세 주체가 서로 책임을 가지고 만들어갈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땀에 대한 최고의 보상은 신뢰와 양보를 기초로 한 합작품
농사를 짓는 많은 농가들 중 노력한 만큼 수익을 얻는 경우를 많이 보지 못합니다. 수 십 년 농사를 지어온 농부든, 귀농한 농부든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노력한 만큼 수익적 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 태풍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타 지역 농가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반사이익으로 많은 수익을 얻는 경우 외에는 평상시에 그 노력의 대가를 넉넉하게 거두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농부들이 영농조합이나 작목반, 연구회 등을 통해서 돌파구를 마련하곤 있지만 이 또한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일반적으로 99% 이상이 실패) 
실제로 지난 시간 동안 저 또한 수확 버섯들에 대한 안정적이며 적절한 농가들 수익을 위해 함께 하는 농가들과 연합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 보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앙꼬없는 찐빵처럼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신뢰와 양보를 생각지 않고 오로지 수익에만 마음을 두기 때문입니다. 내 작물 먼저 판매라는 욕심과 조합이 자신의 작물을 판매해주는 도구라는 생각으로 인해, 함께 머리를 맞댈 때 나오는 전혀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결국 맛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농부들이 만들어 내는 기쁨
지난 4년의 시간동안 큰 즐거움은 농사를 잘 짓고, 수익을 내는 1차원적 문제들의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지역 농부들과 함께 만나 고민들을 나누고, 서로가 가진 경험들을 공유하는 시간들이 참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농산물이 다양한 곳으로 흘러가게 함을 통해 함께 맛보게 된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있는 평창에서는 고랭지 배추, 부추, 양상추, 고추 등 최고의 작물들이 많이 수확됩니다. 하지만 버려지는 작물도 많습니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물들의 경우 수확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 대한 농부들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이런 상황이 꼭 낙담할 상황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이 농산물 흘려보내기 운동입니다. 농산물 도매시장 등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음식으로 먹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이런 농산물들을 꼭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지요. 이 움직임은 농부들의 자발적 동참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물 재배에만 고정된 시선을, 판매되는 상품성만 생각하고 기준치 미달은 버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작물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로 전환시켰을 때 전혀 다른 즐거움, 보람, 가치를 맛보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최고의 기쁨
그러나 가장 큰 즐거움은 산골짝의 어린아이들과의 만남입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학원에 가는 것이 힘들고, 광범위한 인터넷망으로 인해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과의 만남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매주 찾아가서 대화의 물꼬를 트고, 뒤쳐진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해 초등수학을 미리 준비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함께 자전거, 달리기, 등산, 심지어 야구장 방문 등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한 시간들은 외적인 힘듦을 능히 삼키기에도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부모들의 자식 집착, 좋게만 대해주길 바라는 욕심으로 인해 만남이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가장 참기 힘든 아픔이었습니다.  

최고의 농부, 사장, 운동가, 선생으로서 도약기를 꿈꾸며
지난 4년의 시간과 경험들을 뒤로 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어 봅니다. 버섯 분야에 있어서는 최고의 농부로, 최고의 상품을 소비자들 손에 가장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사장으로, 그리고 돌을 던지지 않으면 파장이 일어나지 않는 호수 같은 시골 사람들을 대화의 장, 가치 있는 삶의 장으로 끄집어내는 농부운동가로, 그리고 방치된 아이들에게 시골이 아닌 온 우주를 꿈꾸게 만드는 농부 선생님으로서의 도약 말입니다. 

 

 평창 상상농부 한상기
01sangsang@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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