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163호)

5월, 내면의 어린 나에게 선사하는 어린이날 선물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2. 3. 16:15

5월, 내면의 어린 나에게 선사하는 어린이날 선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대형마트, 백화점의 장난감 판매대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온 아이들, 손자, 손녀를 데리고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 삼촌, 고모까지 온 가족이 아이 한 명을 위해 이 하루를 보낸다. 놀이 공원은 이날이 대목이라 각종 행사를 열어 어른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놀이 기구 하나 타기 위해 엄청난 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날만큼은 아이를 위해 수고스러움을 감수한다. 식당마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 메뉴를 홍보한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식당들은 이른 시간부터 입장하기 쉽지 않다. 입맛 까다로운 할아버지도 손자 손녀의 입맛에 맞춘 음식을 드신다.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이가 왕이 되는 이 날의 풍경이다.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은 갖고 싶은 선물을 받고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온종일 놀아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날이다. 옛날과 달리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아이들에겐 선물보다 학원가지 않고 자유로이 놀 수 있는 이날이 손꼽아 기다려질 것이다. 불과 한 두 해 전까지 만해도 나 역시 어린이날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아이들에게 봉사했다. 하지만 청소년이 된 아이들이 어린이날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여유로운 어린이날을 보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어린이날마다 대형마트 완구점과 북적이는 놀이 공원을 전전하다 보면 영혼은 넋이 나갔고 몸은 천근만근이 되곤 했는데 말이다.

 남편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산책 겸 나가 어린이날 행사를 구경했다. 쨍한 햇살처럼 그곳에 온 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이 세밀화처럼 선명하다. 만약 행복의 실체가 있다면 이런 장면이겠구나 싶다. 아직은 코로나로 마스크를 써야 했지만 야외 활동이 가능했고 곳곳에 설치된 작은 부스에는 소소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키링과 스티커, 그리고 수제비누, 수제청, 수제 쿠키들… 구경하면 사야 할 것 같은 예쁜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북적북적 인파 속에서 한 엄마가 아이를 꾸짖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절로 들리는 엄마의 큰 목소리를 통해 동생이 징징거리니 물건을 빨리 고르라고 재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잔소리에 초조해진 아이는 선택이 어려운 것 같았다. 듣고 있으니 내가 지금 저 아이 입장이라도 불안해서 물건 고르기 어렵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조금 멀리 작은 분수대에서 시원한 물이 쏟아지고 있어 그리로 향했다. 아이들이 발을 담그고 첨벙거리며 노는 풍경은 덩달아 나까지 신이 나게 했다. 그 모습에 저렇게 신이 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 엄마가 아이를 나무란다.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들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진다. 엄마는 옷이 젖은 아이를 혼내는 중이었다. 조심성이 없다며 꾸중했고 앞으로 네가 이렇게 자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자신의 상상까지 더해 근심거리를 만들어 아이를 혼내었다. 하지도 않은 미래의 일까지 미리 꾸중을 들어야 하다니 내가 아이라도 몹시 억울할 것 같다.

불편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광경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나도 저 아이 엄마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사람 많은 곳에서 아이를 다그치는 행동 말이다. 아이를 존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더 고백하자면 어린이날마다 불편한 마음이 들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의 기분만을 고려해 내 감정과 취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움직였던 일들이 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수고로움이 아이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감당이 될 수는 없다. 늦은 시간까지 놀이동산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남편과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로에게 극도로 예민해질 만큼 피곤했다. 둘 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했던 어린이날 장소들, 아이를 위한다며 꾹꾹 참아내고 있다가 폭발한 감정은 돌보아 주지 않았던 각자의 마음이 나 좀 알아차려 달라며 외치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찬란한 햇살 아래 눈이 부시게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아이의 욕구에만 귀 기울이지 않고 잠시 자신의 마음에게‘괜찮아?’하고 물어 보아주고 돌보아 주었다면 매해 어린이날의 기억이 조금 더 아름답게 남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별다르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게 그때의 나였으니 말이다. 늘 부족했지만 잘하려 최선을 다하는 엄마였다. 애당초 완벽한 엄마였던 적은 없었다. 노력과 좌절이 세트처럼 항상 함께 했지만 그 누가 엄마 노릇에서 완벽할 수 있을까… 대신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이 자라듯 조금씩 성숙해졌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곧 있으면 어린이날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행복한 이벤트가 가득한 5월에 나는 내 안의 어린아이를 위한 시간을 꼭 마련할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소음에서 잠시 멈추어 마음에 귀를 기울여 준다. 내면의 어린 나에게 선사하는 어린이날 선물이다. 

 

 

서울 양천구 김보경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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