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163호)

‘신해양강국’슬로건,  그 머나먼 길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2. 3. 16:34

‘신해양강국’

슬로건, 그 머나먼 길

 

 ‘선장님, 해적위험 취약 선박(속력 15노트 이하, 건현 8미터 이하)인 00호가 해적위험해역을 운항하게 됨에 따라, 수사기관 등으로부터 승선중인 자녀분(00년생)에 대한 아동학대 가능성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부에서는 다시 한 번 00호의 해적위험해역 운항중단을 촉구하오니 항해 계획을 철회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 1월 이미 고위험지역에서 해제되어 전 세계의 요트들이 자동차 사고율보다 낮은 사고 발생율로 아무런 문제없이 오고 가고 있는 아덴만을 지나 안전한 항에 머물고 있는 김선장에게 온 해수부 공무원이 보낸 문자다. 든든한 청해 부대와 외교부가 4시간마다 전화를 해 안전을 확인해주고 프랑스, 영국, 미국, 호주 등 전 세계에서 온 요트들이 편안히 잘 다니고 있는 길을 우리 해수부 공무원들만 가지 말라며 아동학대를 운운한다.‘단단하고 든든한 신해양강국’의 슬로건을 내건 어느 해양 행정 후진국의 공무원은 가뜩이나 긴 여행으로 지쳐있는 선장의 마음을 더 지치게 만든다.

 해수부에 전화를 해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처럼 왜 미리미리 고시를 바꾸지 않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냐? 왜 이게 아동학대냐? 물으니 대답을 잘 못한다. 오랜 분단과 권위주의의 상흔은 시민들의 활동을 돕고 지원하는 것보다 모호한 상황엔 그 자유를 통제하는 쪽으로 행정 행위를 발달시켰고 여전히 그런 흔적들은 무사안일, 면책의 방향으로 공무원들의 기본 사고를 이끈다. 어느 선장님께“왜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바다 여행이 이렇게 취약하고 발달하지 못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옛날에는 배 타면 다 월북한다고 생각했다”는 대답이 우스개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세계적 흐름과 달리 우리만 그 곳을 여전히 위험하다‘정의’하고 시민들의 통행을 막아두기 급급하다. 그렇게 규정된‘우리만 위험한 곳에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힘들 수 있으니 이는 아동학대일 수 있다’라는 고압적인 탁상행정의 논리적 귀결이 만들어진다. 위험하지 않다는 건 그 곳을 지나고 있는 배들의 엄청난 물동량과 낮은 사고 발생률, 고위험지역 해제 사실이 이미 증명하고 있고, 힘들지 않다는 것쯤은 김선장이 여행 중에 만난 4년 동안 요트에서 자라고 있는 6살 딸아이를 둔 독일의 마르코 가족 및 유럽 배 안에서 살고 있는 많은 어린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늦둥이 딸을 금지옥엽 키우고 있는 선장 부부에게 아동학대 운운은 부모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무지에서 발생한 상당히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필리핀의 푸에르토 프린세사 만의 풍경


 이 에피소드 속에서 몇 년 전 한강 요트 트립을 찾아왔던 미국인 Mike가 떠올랐다. 10살 때부터 14살 때까지 누나, 엄마, 아빠와 온 가족이 5년간 50피트에서 살며 북쪽 알래스카에서 칠레 남쪽 끝까지 남북미를 여행했단다. 그 경험이 어땠냐 물으니 그는 그 경험은 자기가 어디에 가도 사람들 앞에서 늘 자랑하는, 또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있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초롱초롱한 초록색 눈으로 내게 말했었다.“만약 당신에게 자녀가 생겨 다시 그 여행을 할 기회가 온다면 그 여행을 또 할 텐가?”물으니 그는“Absolutely!”라고 말하며 내게 꼭 그런 여행을 해보라 권했다. 네 살 때 할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배에 올라 스무 살 쯤엔 친구들과 망가지고 버려진 배를 고쳐 몇 년간 대서양을 건너고 태평양을 건너며 세일링 여행을 떠나는 유럽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유튜브 속에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김선장은 해수부 공무원의 아동학대와 범죄 규정의 압박 속에서 아프리카 지부티의 흙바람을 맞으며 아내와 딸을 한국으로 보냈다. 한국인 가족의 첫 유라시아 대륙 횡단 도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가족과의 눈물의 생이별 후 그는 지금 맞바람을 맞으며 홀로 인도양을 건너고 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지구를 배를 타고 돌아보는 순례길과 같은 여행은, 파도와 멀미, 작렬하는 태양에 시달리다 해질 무렵의 진한 노을, 밤하늘의 은하수와 바다에 비친 별빛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몸이 빚어내는 눈물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이다.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의미 있는 도전을 거대한 유람선을 타고 잔잔한 바다를 거니는 사람들의 배부름 정도로 인식하는 해양수산부를 가진 국가에‘신해양강국’의 슬로건이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돌아간 딸 생각과 함께 인도양의 강한 맞바람을 맞으며 홀로 전진하고 있을 김선장의 무운과 건강을 기도한다.

 

세일링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임대균
keaton7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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