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163호)

자연, 인간, 건축을 생각하다. 소리를 짓는 이형호 건축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2. 17. 17:08

[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자연, 인간, 건축을 생각하다.
소리를 짓는 이형호 건축가

 

한국의 마당문화, Open Stage K, ‘사운드포커싱홀’
그동안 우리나라의 공연장은 정동극장에서 출발해 서양극장 형태의 실내위주로 발전해왔습니다.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지자체 예술회관 등이 그 예들이죠. 실제적인 관객과 예술가의 접점이 일어나야 할 공연장이 이렇게 실내에 있다 보니 특권층, 매니아층, 예술가의 가족 등으로 관객이 한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우리나라의 공연은 야외에서 주로 이뤄지는 마당문화였죠. 마당에서 판소리, 창, 퍼포먼스 등 모든 것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졌습니다. 유럽에서도 원형광장, 극장들이 야외에 있어 자연스럽게 일상의 삶속에서 공연들이 펼쳐지므로 어린 시절부터 버스커나 예술가들과의 접합이 이루어지게 되었죠. 지금 우리나라는 유독 이 부분이 사각지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간을 통한 소리 건축’이라는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사운드포커싱홀’입니다. 무대가 야외를 중심으로 오픈 되어 예술가들, 일반 사람들, 관객들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밀물과 썰물처럼 서로 교류가 일어나고 새로운 문화형태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버전의 야외 공연장, 복합문화공간이지요.

최고의 화가를 꿈꾸며 아웃사이더를 선택하다
미술학도로서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저는 그림 공모전에 입상도 자주 하고 유난히 상복이 많아 선배와 교수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료, 학교 등의 안정적인 인사이더보다는 아웃사이더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저는 자신감이 넘쳤고, 세계적인 화가가 되고 싶다는 야망 속에 어떻게 그 꿈을 이룰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미래의 화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 후문인 상수동 지하 작업실에서 학교에 가지 않고 1주일 동안 미래의 길에 대한 고심 끝에 제 생각이 분명 맞을 것을 확신하고 바로 부동산중개소로 달려가 작업실을 내놓았습니다. 

얼떨결에 건축가의 삶에 발을 들여 놓다 
이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졸업과 동시에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곧 현실이자 생활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입시학원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을 아주 잘 가르친 덕분에 대치동 중심에서 2년 여 시간동안 학원을 운영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 작업실과 카페를 동시에 짓자는 생각에 양평, 양수리 등을 돌아보던 중, 원주 치악산 상원사 쪽 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건축을 전공한 선배에게 건축 의뢰를 했는데, 선배가 가져온 도면이 너무 평범한 겁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저는 선배에게 다시 그려주면 안되겠냐 하니 이리 밖에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서로 설득하기 위해 시작된 논쟁은 새벽까지 이어졌으나 결국 합일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화가 치민 저는 밖으로 나와 ‘그래 내가 하고 만다!’라고 결심했는데 그것이 바로 건축을 하게 된 출발이 된 것이죠.

원주 치악산 상원사 밑에 첫 ‘소롯길’을 만들다
제가 말을 뱉었으니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림을 전공했으니 건축물 설계 계획도를 드로잉하듯 금방 그렸지만 시공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직접 공사장에 찾아가 배우기 시작하며, 1년 반 정도 걸려 설계부터 시공까지 생애 첫 작품으로 원주 ‘소롯길’을 만들었습니다. 치악산 상원사 바로 밑 국립공원 안에 있는 저의 첫 작품은 유명세를 타 각종 매스컴, 건축전문 매거진, 고등학교 미술책에도 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에서 사람들이 가끔 찾아와 건축 의뢰를 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속에서 그림과 건축이 계속 싸우다, 
결국 건축을 선택
하지만 늘 제 마음속에는 ‘아! 나는 그림으로 돌아가야지’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저를 화가로 활동하길 기대하고 있었고, 저도 자신감이 있었죠. 전업 작가로 잠깐 있었을 때도 화랑에서 전속작가로 활동하며 나름 비전이 있었으니까요. 작업실을 짓다 건축가의 길로 왔지만 그래도 내가 돌아갈 곳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이렇게 계속 제 마음속에서는 그림과 건축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2007년 어느 날 정식으로 건축 설계사무실인 건축디자인 연구소를 개소했습니다. 그렇게 건축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이후, 지금까지 그림에 대한 생각은 일체 안하고 있습니다. 오직 건축가로서 활동하고 있지요. 

건축, 소리를 만들다.
공교롭게도 건축설계회사를 시작한 곳이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이었습니다. 우연하게도 뮤지컬 무대 설계를 두 번 정도 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무대에서 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정확한 데이터를 갖고 있습니다. 소리는 공간의 크기, 부피에 따라 영향을 받고 똑같은 면적이라도 방향, 재료, 마감 등에 의해 소리의 음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데이터 분석해 공식화 한다면 새로운 건축의 장르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건축음향악’이라는 학문이 따로 있더군요. 그 후로 건축과 소리의 관계성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공부하면서 건축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소리 건축!’ 야외에서도 가능한가?
건축과 소리의 밀접한 관계성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편으로 의문이 생기더군요. 바로 내부가 아닌 야외에서도 가능할 지에 대한 것이었죠. 이런 고민 속에 건축가로서 새로운 건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습니다. 순수미술을 했을 당시에도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었죠. 순수미술에서 건축으로 넘어오며 이 고민도 함께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기존 전공자들의 건축의 인사이드 벽을 구조적으로 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순수미술은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건축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공동영역입니다. 건축은 협업관계에서 조직, 스텝, 협력사, 건설사, 시행사 등등 여러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비전공자로서는 불리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었죠. 그렇다고 건축계 기존 사람들의 뒤를 따를 수는 없으니 저만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건축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정체성(identity)를 구축해야만 했고, 그 대안으로‘소리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술과 건축은 하나다
사람들은 제가 미술에서 건축으로 넘어간 것이 특별해 보일 수 있지만, 미술과 건축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림과 건축을 하나로 보았듯이 말이죠. 건축에도 선, 면, 입체(mass), 색채 등이 중요하게 존재합니다. 4년 전 처음으로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건축 답사를 위해 유럽 프랑스와 스위스 일부를 방문할 때였습니다. 프랑스 시내와 유럽 건축 세계를 보고 학부 때 미술을 공부하고 나중에 건축대학원에 간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에서 지붕의 선이나 건물 외벽의 선이 부자연스럽거나 건축의 어느 면과 입체의 조형성이 불안하거나 건축의 내, 외벽의 색채가 미학적으로 조화롭지 않는 등 그림을 그릴 때 2차원인 평면 캔버스에 3차원을 생각해 그려냈던 훈련들이 3차원인 건축을 보며 상상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주의 건축을 몸소 배우다
저는 어릴 적부터 지금껏 유난히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청년시절에도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인지 자연주의 건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건축을 해야 하는데 저에게 쌓인 경험들을 어떻게 하나로 엮어야 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당시 잠 못 이루며 이른 새벽에 지어야할 땅에 앉아 고민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바로 그 시간, 제 시야 밑에 등산로가 있었는데 어떤 나이 드신 분이 저를 발견했는지 한 번 휙 쳐다보고 산행을 계속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새벽 파란 하늘이 펼쳐지면서 제 가슴을 치던 그 순간, 그 분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곳에 당시 독특한 건축을 짓고 싶었는데, 만약 저 분이 등산 할 때 이곳에 도드라진 건축물이 있는 것을 좋아할까? 산을 좋아하시는 분은 자연 그대로인 산으로 놔두길 바랄 텐데 말이죠. 양심적으로 제 가슴을 짓누르는 눌림이 오더군요. 그래서 그동안 스케치 해뒀던 설계를 다 지우고 새로 바꾸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강원도 전통 민가를 제가 원하는 공간 세계로 끌어 올 것을 생각하니 너무 좋은 겁니다. 그래서 지은 것이 ‘소롯길’입니다. 전통가옥을 계승한다기보다 강원도 지역성에 맞는 건축 재료인 참나무와 흙으로 너와집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건축을 시도했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건축물이 원래 있었던 것으로 외소하게 보이는데 들어가면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창문의 프레임마다 자연을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풍경이 달라져 자연스레 자연과 일치한다는 평을 합니다. 바로 이 프로젝트가 모체가 된 것이죠. 그 후, 자연주의 건축에서 소리 건축으로 넘어 왔습니다. 

 


소리 건축인 ‘사운드포커싱홀’
 (야외에서 전문 음향 장비 없이 공연을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이게 가능한가요?)
유럽의 원형극장은, 소리를 전달하는 스피치 용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음향장비 없이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으로 엄청난 음량과 특화된 뮤지션들만이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장군들의 연설이나 예수님의 강론 등 말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소리를 듣는 원형 객석이 중요합니다. 객석이 26도 정도 기울어져 깔때기처럼 되어있는데, 소리를 내면 무대에서 객석 끝까지 소리가 빠져나가면서 들리는 구조죠. 기울어져 있지 않으면 소리가 퍼지면서 사라져버려 광장처럼 전달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유럽 원형극장의 무대 뒤에 대리석 같은 재료로 반사벽을 만든 겁니다. 소리가 반사되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말이죠. 또 공연 무대나 객석 중간에 공명 항아리를 심어놓아 소리를 약간 증폭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미미하게 흔적이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사운드포커싱홀’은 유럽의 원형극장 형태의 소리를 만드는 이 세 가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평지위에 유리 반사벽을 활용한 공명시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원형극장은 ‘아~’ 하고 소리를 내면 소리가 빠져 나가기 때문에 무대 가운데로 다시 소리가 돌아오는 소리는 아주 미미하죠. 또한 스피치에 적합하다보니 잔향률 등 음질의 중요성에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중심으로 한 공연장은 잔향률과 음질이 아주 중요합니다. 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제일 좋은 잔향률은 1.8~2초 정도가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야외에서는 0.5초도 안될 만큼 바로 소멸됩니다. 그러니 야외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고 노래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사운드포커싱홀’은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청중이 있는 객석공간은 잔향율이 2초에 맞춰져있습니다. 최고의 잔향률이죠. 이점이 세계 특허를 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건축음향학계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충북대학교 한찬훈 교수님과 여러 석학들이 전문기기를 가져와 직접 음향테스트를 했습니다. 야외에서 음향장비 없이 자연음임에도 마치 좋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 같습니다. 인터뷰 마치고 한번 직접 경험해 보세요. 이태리 오페라의 대부 마우리치오 피쿠니(안드레아 보첼리 스승)가 이 ‘사운드포커싱홀’에서 노래를 하고난 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한 소리가 엉뚱하게 한국에서 완성되었다”라고요. 소리의 질감에 예민한 그는 “이곳은 녹음실로 써도 될 정로로 최고의 음질을 가지고 있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주연, 건축은 조연’
자연주의 건축을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자연은 주연이고 건축은 조연’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전 세계의 건축은 그 시대 권위의 상징물 또는 과시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건축가를 양성하거나 그 나라의 건축을 랜드마크화 해서 또 다른 건축 브랜드를 만드는 산업 같은 것이죠. 특히 유럽 여행을 하며 ‘르 코르뷔지에’ 건축을 보고 이런 부분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노출 콘크리트 건축을 세계화 시킨 ‘라투레트’수도원이 있는데 좋은 공간이긴 하지만 예배처소는 사면이 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리의 명료도가 떨어진다고 느꼈어요. 우리가 큰 카페 공간에 가면 사람들과 소리의 소음으로 인해 불쾌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럴 때 소리 음질에 대한 고민을 안했다는 생각이 들죠. 그 수도원 뿐 아니라 그의 작품의 교회 건축 등은 목사님의 설교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었어요. 물론 아름다운 건축공간의 감동도 있었지만, 건축 본래의 목적과 멀어진 것을 보면서 저는 더욱 전문성을 갖추고 건축공간이 만드는 소리의 중요성에 대한 연구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주의 건축은 과시욕이 아닌 자연에 순응하는 건축입니다. 평생 봐도 지겹지 않은 자연과 같이 순응할 때 건축의 가치는 지속될 수 있는데, 설계자의 지나친 의도성이 강조된 건축은 언젠가는 사람이 떠날 거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의도는 쉽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쉽게 질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연 그 이상의 예술품을 만나본 적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자연주의 건축과 어떤 점이 다른가?
일반적으로 자연주의 건축은 자연의 일부에서 모티브를 시작해 자연채광의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거나 외부자연을 실내와 연결시켰다는 등의 스토리로 전개되어집니다. 저의 자연주의 건축은 다시 말한다면 ‘자연이 주연이고 건축은 조연’으로써 건축이 돋보이기보다는 ‘겸허한 건축’을 의미합니다. 자연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며 건축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가능하면 땅의 훼손 또한 최소화 하여 본래에 자생했던 나무나 새들이 다 공존하는 것이죠. 무엇보다 땅을 훼손하는 순간 바람의 길이 달라집니다. 땅을 그대로 놔두고 건물은 자연에 스며들듯 얹혀있게 짓고 바람이 다니는 길을 막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좋은 공기가 우리 피부에 닿고 바람을 타고 꽃향기가 날아와 후각과 촉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자연주의 건축은 시각에만 집중되어진 건축이 아닌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건축입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있는 것이 건축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서 반 이상은 건축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건축과 항상 교감을 해야 되는 거죠. 자연, 건축, 인간이 서로 교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건축이 자연의 숨결에 스며들기만 해도 저는 이미 그 이상의 가치가 확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고객 설득? 자연주의 건축 본질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다 지방으로 내려온 이유 중 하나는 고객들과의 만남을 편안하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저를 찾아오는 고객이라면 오는 동안 자연을 이해하게 됩니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으니까요. 저는 고객과 건축 컨셉을 말할 때 제 의도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찾습니다. 그 공감의 장소는 ‘땅(대지)의 해석’이고 ‘자연’입니다. 자연주의 건축에서는 건축가의 의도를 이야기해 고객을 설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건축가의 제3의 공간인 ‘자연’이라는 주제를 놓고, 서로 이야기하다보면 금방 공감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건축가의 일방적인 의도나 생각을 강조하고 건축주를 설득한다는 것은 이미 건축의 본질을 벗어날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앞으로 새로운 작업들
언젠가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생길 때 실험적 건축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건축주나 용도가 분명하지 않아도 제한이 없는 건축가의 상상력이 위주가 된 창의성 있는 건축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1만 6천 평 정도 되는 땅을 12년 전 사놓았었죠. 그동안 법규와 용도, 경제성의 제한 안에서 한 설계의 한계성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에 도전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빙하미술관’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유알컬처파크와 4~5km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장소로 좀 특별한 건축 방식입니다. 빙하라는 모티브로 환경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물위에 떠있기 때문에 아주 화려합니다.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그동안 시각적인 건축에 너무 집중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빙하미술관은 굉장히 시각적인 건축이거든요. 일반 건설회사에서 시공을 할 수 없는 외피 디자인으로써 난이도가 매우 높아 조각가들이 시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정형화된 것도 아니고 비정형화 된 것도 아닌 그때 그때마다 예술의 감각을 옮겨 놓으며 예술가 20여 명이 완공을 위해 재밌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올해 말, 크리스마스 전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죠.

···

2019년에 완공한 야외 ‘사운드포커싱홀’은 우리의 마당놀이 공간을 현대건축의 새로운 버전 공연장으로 재해석한 이형호 건축가의 세계적인 특허품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형호 건축가의 설명을 들으며 직접 무대에서 소리를 내보았습니다. 오~ 정말 마이크 없이 소리가 맑게 울리는데 신기했습니다. 때마침 공연을 준비하는 분들도 볼 수 있었죠. 유럽의 뮤지션들이 방문해 홀을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K클래식 뿐 아니라, 수많은 공연들을 모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리가 1초에 340m를 가는데 중앙무대에서 유리 반사벽까지 21m라고 하더군요. 크기는 25m, 30m까지도 늘릴 수 있다고 합니다. 과학적 근거로 소리를 건축한 이곳! ‘사운드포커싱홀’은 Open Stage로 관객들이 자연과 함께 공연을 감상할 수 있고, 음향장비 없이도 언제든 공연이 가능해 예술가들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감성이 교감되어 사람들이 마음의 소리를 듣기를 바라며 무대를 내려와 비 오는 봄날 원주에서 산본으로 향했습니다.

 

 

이형호 건축가
이형호 건축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미술활동 중 건축으로 전향해 동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였다.
2007년 나무티엠건축연구소를 개소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진행해오다가 2014년 서울 사무소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과감한 행보를 통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작품 활동과  유알컬처파크 개발에 5년간을 전념하여 최근에 완공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작품은 자연주의 건축을 주제로 대지의 조건을 그대로 두거나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존하여, 건축물이 돋보이기보다는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우선시 했다. 
 
주요작품으로는 소롯길을 첫 작품으로 시작하여 충무로영상센터(서울메트로), 춘천평화감리교회(현 한마음교회), 블라디보스톡 비즈니스센터, 도봉구 평화울림터 외 다수의 작품이 있으며, 현재 빙하미술관 프로젝트 진행에 전념하고 있다. 
award로는 1985년 The World Art Festival 회화부문 대상, 2011년 국민교회건축상을 수상하였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지정로 912
유알컬처파크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2>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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