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호(163호)

 나만의 대만 살이! (1)타이완, 타이페이, 타이랜드 뭐가 다르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2. 17. 17:18

[세계속의 한국인]

나만의 대만 살이! (1)
타이완, 타이페이, 타이랜드 뭐가 다르지? 

 

아무리 글로벌한 시대라고 해도 타국에서 자리 잡고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 온 가족을 이루면서 말이죠. 무엇보다 2세대들의 정체성과 교육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 순애보로 시작해 대만에 코를 꿰어 22년 동안 살며 새로운 것을 접하는데 두려움을 없애고 매번 인생은 무한도전이라 생각하고 대만에 정착한 분이 있습니다.‘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독자들을 위해 현재도 진행형인 대만살이의 희노애락을 3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너 그것 한 번 신청해봐!”
25년 전, 대학4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교내 게시판 글에 눈이 확 뜨였습니다. 곧장 같은 기계과 동기 ‘수기신’와 함께 학과사무실을 방문했죠. 마침 조교선생님과 행정사무원들이 있더군요. 조교선생님에 “학과사무실에 붙은 내용이 뭐에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응, 너 그것 한 번 신청해봐!”라고 한마디를 던졌는데 순간 저는 잠시 짧은 시간이지만 엄청 깊고 뭔가 저를 응원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평소 영어에 자신이 없었던 저는 졸업을 앞두고 영어 학점도 이수할 겸 신청해야겠다고 바로 마음을 먹었죠. 무엇보다 여름방학동안 해외 서머스쿨을 다녀오면 3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모든 것을 제치고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 캐나다, 독일, 영국, 일본, 중국 등 협력하고 있는 대학에 랭귀지 스쿨을 이수하면 학점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신 각 과마다 성적순으로 1명밖에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성적이 조금 상위권이었던 저는 과친구‘수기신’보다 앞에 있어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바로 또 다른 고민에 빠졌습니다. 영어권 나라 중에서 영국, 미국, 캐나다 어디로 가야할지… 영어의 본고장 영국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현재의 패권국가 미국으로 가야할지 그것도 아니면 안전하고 평온한 캐나다로 가야할지… 결국 캐나다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캐나다 UVIC (University of Victoria)에 도착
캐나다 밴쿠버에서 배를 타고가면 빅토리아 섬이 있습니다. 빅토리아 섬에 있는 UVIC (University of Victoria), 생전 처음 가보다는 해외, 그것도 10여 시간 이상 가야 하는 캐나다. 그 당시 처음 알았지만 직항이 없어 한국에서 일본 도착 후 JAL 비행기로 갈아타고 캐나다 밴쿠버로 가야했습니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 다시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빅토리아 섬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한국에 있는 우리 학교에서 동행하는 사무실 직원이 있어 비교적 안전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UVIC 대학에 도착하니 여름방학으로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복귀해 도미토리(기숙사)는 비어 있었습니다. 대신 한국, 일본, 대만, 태국 그 외 유럽에서 온 학생들로 채워졌습니다. 바로 다음날 오전, 영어 시험을 본 후, 점수에 따라 학생들은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 심화반으로 나누어지더군요. 오전에는 영어 듣기, 말하기, 숙제발표 등으로 오로지 영어로만 진행되었고 오후는 레크레이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운동, 독서, 댄싱, 음식 만들기 등 영어 실력을 떠나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모두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캐나다 안에서 타이완을 만나다
운동시간에 농구를 하며 타이완에서 온 자매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언니(Peggy)와 동생(Lydia)이었죠. 남녀 혼합으로 팀이 구성되었는데 특히 농구를 좋아했고 승부욕이 남달랐던 저는 기필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고 실제 이겼습니다. 경기 중 넘어져 무릎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승부욕에 불탔던 저는 그것도 잊고 있었죠. 동생(Lydia)은 시합이 끝나고 달려와 그 당시 아까징끼(옥도정기)라고 불리던 약을 의무실에서 가져와 제 무릎에 발라 주었습니다. 그 후 저녁시간 때 기숙사 앞에서 언니와 동생을 다시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온 같은 학교 타 학과 동기였던 ‘연택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연택강이 나에게 조용히 말했죠. “쟤들이 타이완 여학생이야, 내가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조금 배웠는데 말 걸어 볼께. 너흰 기다려.”라고 하더군요. 너무나 신기했던 ‘타이완’이라는 나라. 그때 처음 타이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런데, 타이완, 타이페이, 타이랜드 뭐가 다르지?’라며 되 뇌이고 있었죠. 연택강은 언니와 동생 앞으로 가더니 “니…스 따이완 넌 마?” 그러자 두 자매는 전혀 알아듣는 표정이 아니더군요. 친구는 “쟤들이 타이완 애들이 아닌가 봐!”라고 했습니다. 
영어에 자신이 없었던 저는 살아남기 위해(?) 오후에는 무조건 즐겁게 노는 것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 오후 시간대에 댄싱을 신청했죠. 때마침 언니와 동생도 댄싱을 신청해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언니와 동생 번갈아 가며 댄싱 파트너가 되어 짧은 영어를 건넬 수 있었습니다. “Where are you from?”, 되돌아오는 말은 “Taiwan!”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어느덧 22년의 세월을 타이완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처음 타이완 사람에게 듣게 된 타이완! 저에게 추억과 인연을 만들어주게 될지 그땐 전혀 몰랐습니다. 

 


“Lydia! 언니 주지 말고 너만 먹어!!”
이리 보내던 나의 캐나다 생활은 이제 어느덧 2~3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곧 한국으로 복귀 해야 하고 더 이상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 보내게 될 기회는 없을 것 같았죠. 이런 추억이 끝나기 전에 언니와 동생 두 자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UVIC 안에서 모든 생활을 했던 터라 밖에 나갈 생각은 엄두를 내지 못했죠. 하지만 오직 선물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주변 마을로 혼자 나갔습니다. 오직 제 마음은 상점에 가서 동생(Lydia)에게 줄 선물을 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상점에 들어가자마자 걱정이 먼저 앞서더군요. 왜냐면, 돈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돈도 벌지 않았고 카드도 없었던 가난한 대학생이라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았지만… 하지만 캐나다는 딸기가 무척 쌌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인데 (그때 당시 무척 많이 주었던 기억이 남) 딸기를 사서 동생(Lydia)방으로 가서 노크를 했습니다. 문이 열리고, 그녀에게 딸기를 주면서 말했어요. “언니 주지 말고, 너만 먹어!!” 이 말만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습니다. 동생(Lydia)에게 처음으로 가진 느낌을 뒤로 하며 저의 순수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딸기처럼 불타오르는 사랑을 너에게 주고 싶었다.”
며칠 후, 드디어 나는 한국으로, 언니와 동생은 타이완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밴쿠버 공항에서 그녀들을 배웅해주면서 언니를 좋아했던 연택강과 동생을 좋아했던 저는 공항 비행기 출발시간 때까지 함께 했습니다. 새끼손가락을 걸며 꼭 만나자고 했던 그 날의 표정을 지금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 어떤 강력한 문서로 체결된 형식보다도 저에게는 더 강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겨울방학이 되었을 때 저는 배낭여행을 타이완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처음 타이완에서 보게 된 언니와 동생은 약속을 지킨 저에게 너무나도 고마움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러던 어느 하루, 동생(Lydia)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캐나다에서 자기에게 딸기를 선물했냐?”고요. “사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돈으로는 다른 것을 살 수 없었다. 하지만 딸기처럼 불타오르는 사랑을 너에게 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동생(Lydia)은 타이완에서 중학교 영어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고, 타이완의 반도체 회사에 파견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저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타이완 생활은 시작되었죠. 

 

 

JNT technology 대표 김규일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2>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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