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호(165호)

꽃들의 이야기 속에서 역사의 현실을 생각해보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5. 14. 16:10

꽃들의 이야기 속에서 역사의 현실을 생각해보다

 by 도라 폐야체비치(Dora Pejačević)의 Blumenleben(꽃들의 인생) 
Op. 19(1904~1905) 중 NO.2‘Veilchen’(제비꽃)

 

< 지난 달 초 황금연휴기간을 이용해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의 열성 후원자 여러분들과 함께 4박 5일로 ‘표현훈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표현훈련’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서 10년이 넘게 해마다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해온 프로그램으로 금번에는 한국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 중에 하나인 양양군 현북면에 위치한 ‘푸른하늘은하수팬션’에서 시간을 가졌는데, 앞으로는 동해바다를, 뒤로는 태백산맥을 두고 있는 환상적인 장소였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소개드렸듯이 ‘표현훈련’은 1) 마음에서부터 출발해, 2)생각하고 3)표현하고 그것을 4)행동으로 옮기는 인간 활동의 단계들 속에 세 번째인, ‘표현’을 어떻게 자유롭고 풍성하며 창조적으로 할 것인지 다양한 주제와 표현방식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시간입니다. 이번에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큰 주제로, 시(문학)를 짓고, 자화상(미술)을 그리며, 클래식 곡(음악)을 선정해 비평, 해설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참여한 분들은 문학과 예술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니기에 각 분야에서 충분히 천재성을 인정받은 작가의 작품을 흉내 내고, 분석하고, 비평해 각자의 전문분야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표현을 위한 표현이 아니라, 가치있고 창조적인 행동을 위한 표현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던 것이지요. 그 중에서 음악훈련으로 총 7명이《1일 1클래식 1포옹》책에서 6월에 소개된 곡 중 하나를 선택해 비평적으로 다룬 두 곡을 선정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작품은 도라 폐야체비치(Dora Pejačević; 1885~1923)의 총 8개 피아노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Blumenleben(꽃들의 일생, Op. 19; 1904~1905)중 2번째 곡인 Veilchen(제비꽃)입니다. 이 곡의 작곡가인 도라는 클래식 음악계에선 다소 낯선 크로아티아의 여자 작곡가로서 39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80곡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오늘 작품은 꽃다운 청춘기라 할 수 있는 19~20살에 만든 작품입니다. 꽃다운 청춘의 시기에 있던 음악가가 만든 꽃들의 향연이니 얼마나 아름다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지 않나요? 그것도 총 8개의 각기 다른 꽃들을 소재로 곡을 만들었으니 더욱 그러할 테지요. 도라는 8가지 다른 종류의 꽃을 계절의 순서에 따라 1)Schneeglöckchen(스노우드롭;겨울~이른봄), 2)Veilchen(제비꽃;이른봄), 3)Maiglöckchen(은방울꽃:3~4월), 4)Vergißmeinnicht(물망초;5~6월), 5)Rose(장미;5~6월), 6)Rote Nelken(레드카네이션;7~8월), 7)Lilien(백합;7~8월), 8)Chrysanthemen(국화;9~10월)로 배열해 곡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Veilchen(제비꽃)은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봄날 올망졸망 피어 바람에 한들거리는 보랏빛 제비꽃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작곡가의 감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더해 우리가 음악이라는 표현훈련을 통해 연습한 대로 작곡가 개인과 가족의 역사를 넘어 작곡가가 살아간 사회와 시대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가운데 Veilchen(제비꽃)뿐 아니라, Blumenleben(꽃들의 일생) 작품 전체에 담겨 있는 또 다른 면과 가치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크로아티아의 다양하고 풍성한 자연이 담겨져 있습니다.
도라가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계절에 따라 피는 다양한 꽃들은 그녀가 자란 크로아티아 지역의 지리, 기후적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도라는 친가와 외가 모두 귀족인 엄청난 금수저 집안 출신으로 당시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크로아티아 나시체 지역의 부모님의 집, 정확히 말해 성에서 보냈습니다. 크로아티아는 이탈리아 반도 동부에 지중해를 면하고 있는 나라로 4계절이 뚜렷한 기후를 가졌는데, 도라가 자란 나시체는 해안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 북동쪽에 위치해 있어 겨울이 더욱 추운 확실한 계절의 변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녀가 Blumenleben(꽃들의 일생) 작품에 눈 속에 피어나는 꽃(스노우드롭)을 시작으로, 마지막을 가을의 대표 꽃인 국화로 장식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환경과도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크로아티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원시적이면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생물 다양성 생태지역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니, 어린 시절부터 그런 자연환경 속에 자란 도라가 다양한 꽃을 소재로 음악을 만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라 폐야체비치

 

2. 내성적이고 민감한 성격의 감수성과 호기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호기심’이야말로 도라가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임은 그녀를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곡 전체를 듣다보면 이러한 호기심에 내성적이고 민감한 그녀의 성격이 만나 만들어진 차분하면서도 예민한 관찰이 담겨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8가지 꽃 각각의 특징을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두 번째 곡인 ‘제비꽃’은 올망졸망 모여 있는 꽃들 위로 따사로운 봄 햇살과 바람이 부드럽게 때로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느낌을 준다면, 다섯 번째 곡으로 Blumenleben(꽃들의 일생) 전체 작품을 대표해 부제로도 사용되는 ‘장미’는 장미꽃의 고상함과 화려함을 그대로 담아내며, 바로 눈앞에서 장미의 봉오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것 같은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 줍니다. 여러분들은 들판에 차분히 앉아 꽃들을 바라보고 있는 도라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지 않나요?

3. 문학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Blumenleben(꽃들의 일생)은 8가지 꽃을 계절에 따라 배열한 형식에 있어, 또한 그 하나하나의 곡이 가진 시적인 분위기를 통해 이 곡이 문학적 성격을 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도라는 어려서부터 개인 교습을 통해 음악뿐 아니라 언어, 철학, 정치적 텍스트 등의 포괄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주어진 배움의 기회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 지식을 추구했는데 그 통로가 된 것이 바로 책과 여행이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의 고전문학에 심취했을 뿐 아니라, 여행을 통해 저명한 작가와 예술가를 만나 교류했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키워갔고 예민한 관찰로 만들어진 꽃에 대한 시적인 감상들을 표현할 줄 알았는데, 도라의 음악에 이러한 점이 잘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도라는 먼저 꽃들을 보고 시를 지은 뒤에 그것을 토대로 음악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후에 도라가 독일의 대표적 시인 중에 한 명인 릴케(1875∼1926)와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을 통해 이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Blumenleben(꽃들의 일생)는 어쩌면 8연으로 된 하나의 음악적 시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4. 전통을 이어가는 자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작품 뿐 아니라 도라의 작품 전체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후기 낭만주의의 분위기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도라는 슈만, 브람스, 그리그,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강한 영향을 받았는데,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를 중심으로 번져가던 국민악파의 독특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녀보다 40년이나 앞서 태어난 체코의 드보르작(1842~1904)이 민족주의 음악을 꽃피웠던 것에 비하면 그녀의 음악세계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철저한 귀족출신의 배경 속에 민족주의적 경향이 약했을 가능성이 많을 뿐 아니라, 전통을 계승하고 받아들이는데 익숙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비어진 역사의 현장이 담겨져 있습니다.
귀족집안의 딸로서 도라는 독립국가를 갈망하며 오랜 시간 고통의 역사를 거쳐 온 크로아티아의 역사적 현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실질적으로 크로아티아가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서 존재한 것은 2차 대전이 끝난 이후로, 오랫동안 크로아티아 지역은 오스만,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도라가 태어나 활동하던 시기 역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이 지배하던 시기로, 실제적으로는 헝가리가 왕권을 차지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므로 헝가리 계통의 귀족집안 출신인 도라에게 있어 크로아티아인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 고통은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무 살 나이의 귀족 아가씨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일 수 있지만, 1차 대전을 촉발한 사건이 바로 옆의 세르비아 왕국에서 일어날 만큼 민족적 대립과 고통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그녀의 음악은 아름다운,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대전과 이후의 유럽의 화약고가 되어 버린 지역의 자연을 노래하는데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권위적인 어머니에게 대한 저항으로 귀족적 삶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고, 1차 대전의 참상 속에 간호사로 지원해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역사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그녀가 39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을 때, 가족의 지하묘실에 묻히는 것을 거부하고, 무덤의 비석에는 페야체비치라는 귀족의 성을 빼로 ‘도라’는 이름을 새긴 것도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가질지 확신하기엔 쉽지 않습니다.

환상적인 양양의 자연 속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녀의 Blumenleben(꽃들의 일생)을 들으며 한반도의 안과 밖으로 들끓고 있는 위태로운 역사의 현장에 귀를 막는 빈껍데기의 시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마음과 생각, 표현과 행동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메이징 스페이스 고종훈
amazingspace21c@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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