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호(165호)

평창 산골에서 본 ‘아르헨티나의 춤들 작품 2번’ (Argentine Dances, op 2)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5. 16. 11:46

평창 산골에서 본 ‘아르헨티나의 춤들 작품 2번’           
   (Argentine Dances, op 2)

 by 알베르토 히나스테라(Alberto Ginastera :1916~1983)

 

제가 있는 평창의 산골은 요즈음 푸른 물결의 춤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고랭지 재배 주산지답게 수확을 기다리는 푸른 여름 배추들이 그 주인공들이지요. 바람과 폭우가 몰아칠 땐 마치 그 장단에 맞장구를 치듯 불협화음처럼 춤을 추는 것같이 보이기도 하고, 미풍조차 없을 때에는 고요한 호수 위를 떠다니는 백조가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수확을 앞둔 지금은 끝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듯합니다. 마치 얼마 전에 들었던 아르헨티나의 대평원인 팜파스를 배경으로 한 ‘아르헨티나 춤들’이라는 춤곡처럼 말이지요. 

 



알베르토 히나스테라의 ‘아르헨티나 춤들, 작품 2번’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춤곡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가 1937년 피아노로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아르헨티나 춤들’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곡의 작곡가인 히나스테라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곡가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아메리카 클래식 작곡가들 중 한 명이라고 해요. 그러나 자신의 제자인 ‘피아졸라’에 비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가 최근에 조금씩 알려지게 된 음악가입니다. 저도 처음에 이 곡을 들었을 때는 피아졸라의 색채가 보여서 그의 작품인가 했을 정도였는데, 나중에 피아졸라가 히나스테라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스승의 그 제자’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답니다. 사실 이 춤곡을 좀 더 풍성하게 이해하려면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는 20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만연했던 민족주의적 영향 아래 아르헨티나적 음악적 요소를 현대 음악 안에 풍성하게 담아내려고 시도했다는 점, 또 하나는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작곡가인 ‘드뷔시’를 아르헨티나적 요소를 담아낼 그릇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 곡을 듣다보면 드뷔시가 오버랩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부분과 관련해 꼭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히나스테라에게서 자신의 음악 활동 시기 색채에 대해 크게 세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민족적 요소를 큰 변형 없이 투박할 정도로 담아내려고 한 ‘객관적 민족주의 시기’(1934~1948), 나름의 해석, 비틀기 등 민족적 요소를 자신의 해석들로 담아낸 ‘주관적 민족주의 시기’(1948~1958), 자신만의 표현 세계를 그려낸 ‘신표현주의 시기’(1958~1983)입니다. 이 부분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아르헨티나 춤들’이라는 곡이 객관적 민족주의 시기에 작곡되었다는 점에서 이 춤곡을 더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담아낸 곡
그럼 히나스테라가 담아낸 아르헨티나적 음악 요소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요소는 아르헨티나 역사와 관련된 것으로 크게 세 가지 요소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16세기 이전의 잉카 문명을 포함한 인디언들의 역사가 담긴 음악적 요소, 두 번째는 16세기 후반부터 식민지화하는 가운데 뿌려 놓은 스페인적인 음악적 요소, 세 번째는 16세기 초부터 19세기 중반까지 350여 년 동안 강제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가져온 아프리카적 요소입니다. 사실 이 세 가지의 요소들은 아르헨티나가 가진 역사적인 아픔, 고통들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초라고도 할 수 있고, 단순히 음악만 감상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역사를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역사성이 포함된 음악적 요소를 조금 더 살펴보는 것도 이 춤곡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잉카 문명의 인디언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 중심의 음악(팬 플롯 연주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됨)이며, 주로 5음 음계 틀 속에서 조금씩 변형,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라면, 스페인적 요소는 대표적으로 빠른 템포를 기본으로 하고, 춤을 통해 느껴지는 힘과 열정을 드러내며(플라멩코 연상),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음악적 요소는 에너지 넘치는 춤, 일종의 리듬을 기초로 삼아 계속해서 반복하는 ‘오스티나토’기법을 들 수 있는데 아르헨티나 춤들은 이 세 가지 요소가 전체적으로 잘 담아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팜파스 평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아낸 첫 작곡
이 곡은 7분 정도의 짧다면 짧은 곡이지만 크게 세 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곡은 ‘늙은 목동의 춤 (Dance of the Old Herdsman)’으로 1분여 정도의 짧은 곡이지만, 엄청 강렬한 색깔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왼손은 검은 건반만, 오른손은 흰 건반만 연주하는 방식으로 마치 불협화음을 연주하듯 짧은 선율을 반복 변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곡의 제목처럼 늙은 목동이 아르헨티나의 대평원인 팜파스에서 소몰이를 해 나가는 모습을 연상해 본다면, 충분히 공감이 되도록 표현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첫 번째 곡과는 달리 두 번째 곡은 극대조적입니다. ‘우아한 소녀의 춤 Dance of the Graceful Girl’이라는 제목을 가진 것처럼 낭만적인 선율이 지배적이고, 8분의 6박자의 부드러운 춤곡의 특징을 지닙니다. 첫 번째 곡이 주었던 긴장감, 불협화음, 마치 폭풍우와 같았던 긴장감을 풀어줄 뿐 아니라 팜파스의 대평원 위를 전 무대로 삼으며 한 소녀가 춤을 추는 듯한 장면이 연상되지요. 실제로 두 번째 곡의 경우 히나스테라 자신이 드뷔시로부터 엄청난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것처럼, 듣는 순간 마치 드뷔시의 곡을 듣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그래서 드뷔시의 작품들(바다, 피아노 협주곡)과 비교해서 들어본다면 히나스테라가 어떻게 민족적 요소를 담아냈는지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두 번째 곡을 많이 찾지만, 사실 세 번째 곡이 더 압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방지축 카우쵸(카우보이)의 춤(Dance of the Outlaw Cowboy)’로서 아르헨티나 가우초의 춤으로 반복적 리듬을 가진 말람보 리듬 패턴(겹박자에서 2박과 3박의 형식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방식)을 사용하여, 정열적이고, 힘이 넘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곡과 같이 강렬하게 시작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화려하고 마치 타악기를 치는듯한 성격이 강해, 뒤로 가면 갈수록 빨라지는 리듬을 통해 대평원 위에서 보여주는 젊은 카우보이의 생동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 듣고 나면 다르구나 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답니다. 

 

가우쵸



히나스테라가 마치 아르헨티나의 한(恨)을 담아낸 것은 아닐까?
이 곡을 듣다보면 대자연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표현들로 마치 한 편의 그림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것을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얼마나 풍성하게 그려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 속에 담겨진 아르헨티나의 음악적 요소를 이해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작가의 생애와 아르헨티나의 역사가 담고 있는 것들을 곱씹어 가며 듣다보면, 마치 아르헨티나의 한을 담아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 천 년 이어진 잉카 문명의 붕괴, 스페인에 의한 식민 역사, 아프리카 노예들의 고통, 역사의 굴곡 등을 한 주제 안에서 거칠게, 부드럽게, 격정적으로 쏟아내었다고나 할까요?

 

평창에서 상상농부 한상기
01sangsang@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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