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호(165호)

칠레에서 본 K-문화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5. 21. 22:36

칠레에서 본 K-문화

 

서른두 살 먹은 아들이 토요일 낮에 놀러 나갔다가 일요일 새벽 3시에 들어왔다. 친구를 만나 같이 지내려 했는데 친구가 같이 놀 수 없게 되어 부득이하게 혼자 계획에 없던 K팝 파티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들은 네 명의 칠레 여자애들이 ‘혼자 왔으면’ 자기네들과 같이 놀자하여 응해주었는데, 명색이 K팝 파티라 한국인의 자부심으로 입장료인지 식대인지를 흔쾌히 내주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아들아! 니는 낭비가 심해~”라 말할 순 없어서 잘했다고 말해 주었다. 아무튼, 주말 젊은이들에겐 일반 디스코텍 문화가 주류였을 텐데 어느새 K팝 문화가 자리했다.


25년 전 칠레 산티아고
산티아고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마포초’강은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흐른다. 그 곁, 그러니까 산티아고의 중심에는 우리 교민들끼리 ‘남산’이라고 부르는 ‘Cerro San Cristóbal’이 있다. 스프링쿨러를 동원하고 도랑을 파 물을 흘려 나무에 물을 주어가며 애쓴(1년 중 8개월간 연속으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기 때문에) 끝에 280m 높이의 산에 나무들이 나름 울창하게 자라 시민들에게 훌륭한 쉼터로 자리 잡았다. 산 동쪽 초입부에 적당한 크기의 담장이 쳐진 ‘일본 정원’이 있는데 일본 정부가 돈을 내어 만들어 산티아고에 기증한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워 자주 놀러 갔다. 일본이 타국에 자기 나라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돈과 정성을 쏟아 붓는 태도가 부러웠다. ‘일본 정원’ 뿐만 아니라 산티아고 시내 중심부에 있는 ‘싼따 루치아공원’도 일본 정부가 꾸며주었다고 들었다. 이러한 정원이 아니더라도 도처에서 일본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못살아서 그랬는지 일본과 비교해 볼 때 현격한 국격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25년 전 칠레 사는 한국인 교민이 1400명이었는데 일본교민은 몇 만이 넘는다는 말을 들었었다.(일본교민 수는 풍문으로 들은 것이라 과장된 수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뭐하나 싶던 차에 드디어(그 전에도 뭔가가 있었겠지만) 2011년 다보탑 모양의 ‘우호의 탑’이 산티아고의 시내 ‘리베라수르공원’에 세워졌다. 2011년 5월 칠레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 우리 정부가 국보 20호인 다보탑 축소판을 한국 최고의 석장을 통해 제작해 칠레 측에 기증한 것으로, 공식 명칭은 ‘다보탑, 한-칠레 우호의 탑’이며 탑 설치 주변 공간을 ‘한국광장’이라고 공식 명명했다. 정말 무자게 자랑스러웠다.(칠레 정부에 기증된 다보탑은 높이 6.5m, 무게 25t으로 경주 불국사에 있는 원형 다보탑의 60% 크기라고 한다.) 

 

칠레에 있는 서울 거리


K팝 공연장에 다녀온 날
2019년 1월의 어느 날, 잘 알고 지내는 브라질의 릴리안 누이가 유튜버 사업을 병행해 보겠다고 산티아고의 K팝 공연장을 찾아왔다. 같이 오기로 한 언니가 여권을 찾지 못해 오지 못하면서 그 바람에 예매표 한 장이 내 몫이 되어 누이가 대동한 일행과 함께 만났다. 사실, 내 흥미를 자극시키진 못했지만 까닭없이 K팝에 열광하는 소녀부대들이 고마웠다. 입장료가 대단한데도 사 가지고들 들어와 앉아주니 말이다. 보아, 레드 벨벳, 슈퍼 쥬니어, 엑소, 소녀시대 등이 출연해 볼거리를 주었고 가슴 깊은 곳을 때리는 저음 공세는 아직도 울렁거린다.


일상에서 대단히 멀리 가 본 하루였다. 한편 4백 만 원이나 비행기 삯을 들이면서까지 K팝을 보기 위해 한국에서 원정을 온 두 아가씨를 릴리안 누이가 도와줬다.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다가 과한 몸수색으로 S석 입장권을 뺏기고 찢어버림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단다. 항의해 주겠다고 했더니 그러다간 자기들 얼굴이 노출되기 때문에 안 된다며 말렸다. 예쁘게 생긴 얼굴이 결코 아닌 아가씨들이라 고개를 갸우뚱 저었지만 아무튼. 릴리안 누이의 도움으로 입장권을 새로 사서 들어가려다가 또 걸렸다. 핑크색 쬐그만 손 주머니에 카메라를 또 들고 들어간 거다. 그렇지만 우리 일행 중 임현준이 유창한 영어로 도와준 바람에 입장이 안 된다던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우리랑 같이 K팝을 즐겼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우리 가게 직원인 까롤리나(Carolina)도 거금을 들여 이 공연장에 갔었다고 한다.


펜데믹 이후 대박 난 K-음식문화
펜데믹 때 용케 버텨낸 한국 식당들은 그야말로 최대의 호황기를 누렸다. 그토록 잘나가던 아랍 식당들이 파리를 날릴 정도이니 말 다했다. 간판이 한국식당이라면 맛이 있건 없건 줄이 장사진이라고 아들이 말했다. 어떤 식당은 도저히 한국 음식 맛이 아닌데도 상관없이 문전성시를 이루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까지 했다. 놀라운, 놀라운 현상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내가 알고 지내는 동네 카페 여주인인 Katie가 나한테 한국 핫도그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드라마는 또 어쩌고
한참 전부터 고리짝(^^) 드라마 ‘천국의 계단’은 인기 최고였다. 지금은 아예 거지반 한국 드라마를 다루는 유료 인터넷 회사가 돈을 많이 벌고 있다. 


우리 가게 직원의 K팝 사랑
까롤리나는 옷도 머리 색깔도 한국 아이돌 스타처럼 꾸미는 게 일상이다. 작년에 일손이 부족했을 때 까롤리나는 자기 친구 까밀라(Kamila)를 우리 가게에 소개해줘서 같이 일하고 있는데, 까밀라를 K팝 공연장에서 만난 사이라고 하니 K팝 열풍이 생활 현장화 된 것이 아닌지. 배낭의 이름표 사진에는 ‘방탄소년단’의 일원 중 하나를 꼭 넣고 다닌다. 까롤리나와 까밀라 둘 다 말이다!

 

우리 직원 까밀라와 까놀리나의 배낭이름표에는 BTS멤버 사진중 하나는 꼭 넣고 다님

 

소회
25년 전 그토록 부러웠던 일본 열풍, TV에서 연일(무려 지금까지도) 재방송으로 만화 ‘드래곤 볼’이 방영되었더랬다. 그런데 이제 한국의 국격이 달라졌다. ‘오빤 강남스타일~’이 상가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승기의 조짐이 보이더니 과거 중국이나 일본이 가졌던 문화 우위를 뛰어넘는 문화 대변혁을 맛보는 기분이 든다. 요즘 꽤 많은 가게 손님들이 부쩍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저께는 고3 여학생이 순 한국말로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인터넷 한국말 배우기 프로그램으로 독학했다니 참 놀랬다. 장래 꿈은 의사라고 했으니 무료한 나머지 장난삼아 한국말을 배운 건 아니지 싶다. 아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 싶었는지 무슨 연예인 대하듯 아들의 전화번호를 적어가면서 행복해했다. 이 정도면 말 다했지 않나! 한류열풍 덕을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인이기만 해도 무조건 좋다는~ 

 

칠레통신원 노익호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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