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호(제103호)

치킨! 먹으러 오세요~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5. 4. 17:05

[SNS문화]

치킨! 먹으러 오세요~

 치킨모임? 이게 무슨 모임이지? 치킨 먹는 모임인가?

 치킨모임 안에 들어가 보니 수십 개의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이 있고, 그 중에 들어가고 싶은 채팅방에 초대를 요청하면 입장할 수 있더군요. 웹 개발자 방, 마케팅 정보 공유방, 개발자 고픈 학생방, UX/UI 방, 머신러닝 방, 디자이너 개발자 방 등 수십 개의 단톡방이 있고 그 중에 원하는 주제의 방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아니 누가 이런 모임을 만들고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궁금증과 함께 ㈜스튜디오봄봄에서 책임개발자로 일하며 치킨모임을 관리하고 있는 배진호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치킨 모임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IT전문가 집단지성 모임’이라고나 할까요? IT 관련 인맥 기반 커뮤니티로 각자 다른 가치를 찾는 니즈들에 의해 다양한 모임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개발자 채팅방, 디자이너 채팅방, 스타트업 채팅방, 대학생 단톡방, 사회적 약자 관련 채팅방 등 수십 개의 세부적인 단체 채팅방이 있어서 자신이 관심있는 채팅방에서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온라인, 오프라인 모임을 이어가고 있지요. 

 구글 내부에서 진행되어지고 있는 직원들의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직원들끼리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서로가 그 프로젝트에 조인하고, 결과물을 내고,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아보여서 어떻게 하면 내 상황 속에서 이런 것들을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회사 밖에서 시도해 보았습니다. 같은 회사가 아니더라도 마음 맞는 사람들이 만나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프로젝트에서 수익이 나면 서로 나누고, 이게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구글의 모티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만들어준 상황을 기다리기보다 그런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보려고 시작한 것이지요.


 치킨모임의 맨 처음은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 개발로 시작됐습니다. 제가 안드로이드 개발자였기에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모아 2주에 한 번씩 모임을 하며 1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죠. 하지만 생각보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고민하다가 개개인의 전문성 부족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일 수 있는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개발자들을 따로 모아서 개발자 방을 만들고, 기획자들의 방, 디자이너들의 방, 또 기획자와 개발자가 만나는 모임,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만나는 모임 등 세미나 형태로 발표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은 지 벌써 4년이 흘러 지금의 치킨모임으로 성장했습니다. 무료이고, 특별한 책임을 요구하지 않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이름이 왜‘치킨모임’이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데 이 발상은 제가 20대 시절, 100여명이 온라인으로 하던 독서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가 잘 모르던 사이였지만 제가“치킨 쏘겠습니다. 모이세요~”했더니 전혀 알지도 못했던 간호사, 일반 직장인 등 6명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단지 치킨만 먹으면서 이야기하는데도 너무 재밌어서‘치킨이 우리나라 사회에 이 정도로 결합력을 가지나?’하며 신기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치킨모임을 하며 10여 명 정도가 즐거운 시간을 가졌죠. 치킨에 대한 친근감과 부담없이 편한 느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짜 다들 치킨을 좋아하더라고요. 이렇게 치킨모임이라는 이름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SNS는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소통의 통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의 만남이 오프라인 만남보다 너무나 가벼운 단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서로가 융합할 수 있고 참여가 쉽다는 장점도 있지요. 자신의 시간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글을 하나 남기는 것은 가능하기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SNS의 강점인 것 같습니다. 이 장단점을 다 살리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임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만 만나면 그저 지나가고 스쳐가는 사람으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데, 오프라인 모임에 나왔던 사람이 다시 온라인 모임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모습이 드러났기에 온라인에서도 점점 더 오프라인과 동일한 자신 본연의 모습을 띄게 되지요. 

그리고 치킨모임에서 하나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한계치 때문에 확장되지 못하는 문제를 없애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관계의 한계치는 5명, 10명 등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친목이 너무 활성화 되면 일정 소수 몇몇의 모임으로 만족해서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를 하며 다른 사람을 배척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실상 확산은 불가능하게 되지요. 그래서 치킨모임 내에서는 친목은 허용하되 끼리 모임을 전체적인 맥락으로 가져가지 않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꾸준히 오프라인 모임을 하고 있는데, 항상 새로운 사람이 반 이상 참석합니다. 

 새로 온 사람이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도록 하고, 전체가 새로운 사람을 꾸준히 만날 수 있게 순환을 이루는 것이 치킨모임을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 모임도 단순한 친목도모가 아니라 스타트업 모임, 멘토링 모임, 예비창업자를 위한 모임, 개발자 세미나 모임 등 컨셉을 잡아 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는 단지 정보만 공유되지 않도록 하고요. 만약 오프라인 모임에서 정보만 들을 수 있다면 그냥 온라인에서 동영상을 보는 것과 차이가 없잖아요. 사람을 만나러 왔으니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듣고 교류할 수 있도록 세미나 이후에는 반드시 네트워킹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임을 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모임이라도 그 모임이 특정 성향을 띄게 되면 그 성향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떠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까지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게끔 만남의 장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채팅방을 따로 만들고, 구인구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또 그런 방을 따로 만들고, 그렇게 사람들의 니즈에 따라 치킨모임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니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고 모임에 참석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주장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한 번은 단톡 대이동 사건도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을 때 유가족들을 비하하는 식의 발언이 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응하다보니 단톡방의 대화가 거세지고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져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었습니다. 맨 처음 이야기를 꺼낸 분이 조용히 나가면 되는데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며 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죠. 

 누군가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선의의 피해자도 생기고, 여러 사람들이 상처받는 일이 있을 수 있기에 몇 차례 권고를 했으나, 그럼에도 그 사람이 나가지 않아 단톡방을 새로 만들고 300여명 되는 사람들을 일일이 초대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감정적인 소모가 있었고 힘들었습니다. 

 한 가지 더 힘든 점은 노쇼(No Show)입니다. 2017년 송별회 때 100여명이 참여 신청을 했습니다. 저도 각자 개인 사정이 충분히 있을 수 있기에 30명 정도의 노쇼를 예상하고 70명 예약을 했는데 절반도 안되는 대략 45명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주최자의 입장으로 많이 힘들었죠. 금전적인 손해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런 힘든 점 뿐 아니라 뿌듯했던 적도 많이 있습니다. 치킨모임이 커지고 나서도 안드로이드 초보스터디를 5기까지 운영했었는데 소프트웨어 개발과 전혀 상관없는 배경을 가진 스타트업 대표님이 오셔서 안드로이드 앱 만드는 것을 직접 배워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것으로 투자까지 받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문 결제 플랫폼인 티엔디엔(TNDN) 대표님도 치킨모임을 통해서 개발자를 만나고, 투자를 받아 지금은 중국 요커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법 성장한 스타트업이 되었습니다. 

 모임을 통해 이렇게 자신의 목표를 멋지게 이루어가는 분들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제게 많은 힘이 됩니다. 치킨모임의 본질을‘사람을 통해 가치를 찾는 일’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일들이 모임을 통해 가치들을 만드는 그 생생한 현장인 셈이지요.

치킨모임을 통해 앞으로 후배들이 성장하는, 그렇게 사람들이 길러지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네이버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개발자 선배들이 뭔가 조언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갔었죠. 하지만 그곳은 전문가들의 모임이었고, 명함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저 같은 병아리들에게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죠. 그 때 앞으로 내가 만드는 모임에서는 뭔가 아래로 흘러내려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끌어주고 키워낼 수 있는 모임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치킨모임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가 잘 되어 스타트업이 되고, 그것으로 돈을 벌어 다른 사람을 또 고용하고, 그렇게 IT 내부의 문화들이 자연스레 형성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간에 소통할 수 있고, 전문가들이 강화되어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결속된 모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치킨모임 같은 이런 역동적인 모임이 많이 알려지고 활성화되면 좋겠는데, SNS는 점점 폐쇄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자기만의 세상을 꾸려가고, 서로가 넘나들지 못하도록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자기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생각하고, 무언가를 같이 해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스튜디오봄봄 수석개발자 & 치킨모임 관리자

배진호 010-4068-9276

https://apphungers.modoo.a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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