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제110호)

‘미루기’ 전략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2. 30. 21:54

[크래들코리아 교육현장칼럼 18]


‘미루기’ 전략


미루다 [미루다]

[동사] 1. 늦추어 넘기다. 

2. 억지로 넘기다. 

3. 견주어 다른 것을 헤아리다.

출처‘Daum 한국어사전’


  ‘미루다’는 그리 좋은 느낌의 단어가 아닙니다. 시간을 늦추고, 일을 떠넘기며, 탓을 남에게 돌리기도 하는 것처럼 그리 긍정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허나, 가끔은 이런 ‘미루기’를 통해 아이들과의 사소한 분쟁을 없앨 수도 있는 재미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보통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떼를 씁니다. 때로는 아주 많이 떼를 쓰기도 하지요. 때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서, 아님 재미있어 보이는 어떤 것을 가지고 싶어서, 무언가를 하고 싶거나, 보고 싶어서 등등 이유가 아주 많지요. 아마도, 아이들 본능 속에 있는 모든 욕구를 떼를 써서 얻어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이들이 떼를 쓰기 전에 분명히 부모 또는 어른들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을 것이고, 부모들은 아이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들과의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고, 부모들은 이해 못할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생각으로 안 되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고, 이해 못하는 아이는 급기야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이렇게 부모와 아이들 간에 갈등이 생기면 결국 아이는 떼를 쓰고, 부모는 속으로 참을 인(忍)을 세 번 외치게 됩니다. 이때 가급적 ‘미루기’를 많이 활용하면 아이들이 떼를 쓰기 전에 수월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충분히 이용하면, 아이와의 분쟁을 적절히 다른 존재에게 미루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입장에서 보면 궤변과 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이들의 사고에서 만큼은 적절한 논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7~8살(연년생 남매)적 일입니다. 지금도 인기가 많은 SBS TV 프로그램인 ‘런닝맨’은 4~5년 전에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런닝맨은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가장 우선시 되는 이야기 소재였지만, 보지 못한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 이야기를 숨죽여 듣기만 했습니다. 당연히 저희 아이들도 꼭 보고 싶어 하는 일등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IPTV의 ‘다시 보기’ 기능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보여 달라고 저에게 떼를 쓰기도 하고, 보지 못한 방송분이 있다며 울기도 하였습니다. 본 방송의 경우 일요일 오후 5시 경 시작인데, 대부분 외부 일정들로 인해 많이 볼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어서 아이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어느 토요일, 아이들은 IPTV의 ‘다시 보기’를 통해 보여 달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울기까지 했습니다. 그것도 엄마와 함께 밖에 나가야 하는 일정도 모두 싫다고 하며 보여 달라는 통에 저와 아이들의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말 잘하기로 소문난 저희 큰 딸은 조목조목 ‘런닝맨’을 봐야 할 이유를 늘어놓았습니다. 어떤 연예인이 나오며, 어떤 주제가 있다는 등 말입니다. 둘째는 한 술 더 떠서 저에게 아빠와 더 이상 놀지 않겠다며 협박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이때 이른바 ‘미루기’작전을 실행하였습니다. 순진한 아이들은 저에게 홀딱 넘어올 수밖에 없었던 작전이었습니다.


 우선, 저는 아이들에게 ‘런닝맨’이 너무 밉다고 항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재석, 지석진, 김종국, 하하, 이광수까지 모두 밉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과 ‘국민MC’라 불리는 최고의 인기연예인 유재석씨까지 싫고, 밉다고 이야기하니, 우선 제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듯 떼쓰는 것을 일단 멈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 아이들에게 차분히 설명을 했습니다.



 “너희들과 아빠는 평소에 사이도 좋고, 잘 놀고, 책도 같이 보고, 운동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좋은 사이가 맞지?”

 “응, 응”

 “그런데, 지금 ‘런닝맨’ 때문에 너희들과 아빠가 이렇게 싸우고 있으니, 아빠가 너무 속상해진다.”

 “…”

 “만약에 ‘런닝맨’, 이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너희들과 아빠가 이렇게 싸우지도 않았을 거고, 지금 이 시간이면 어디 좋은 곳에 놀러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게 모두 ‘런닝맨’ 때문인 것 같다. 아빠는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 어때?”

“…”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들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이야기가 틀린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 이렇게 이분법적인 논리의 사고를 가진 아이들의 입장으로는 ‘아빠’의 존재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아마도, ‘아빠’와 ‘런닝맨’중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 비교를 하고 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 정말로 ‘런닝맨’이 너무 싫다. 너희들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이렇게 떼를 쓰게 만드는 ‘런닝맨’ 너무 싫고, 유재석도 너무 싫다. 어때, 아빠 말이 틀려, 얘들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럼, 이렇게 하자, 우리가 일요일 5시에 집에 있으면, 본방송을 보고, ‘다시 보기’ 같은 건 이제 보지 말기로 하자. 아빠가 본 방송은 꼭 볼 수 있도록 약속할게. 그리고 보니, 내일이 본방송인데, 어때?”

 “그래, 그럼 내일 본방송은 꼭 보여줘, 약속!”

이렇게 아이들과의 ‘런닝맨’ 분쟁은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아이들과 서로 상처 주는 행동이나 말을 서로 하지 않고, 흔히 하는 행동들처럼 아이들을 혼내거나, 윽박질러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대신, 차분하게 ‘미루기’방식을 통해 ‘런닝맨’과 유재석씨 등 출연진에게 현재의 문제의 ‘원인’을 전가시켰던 것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스마트러닝센터’에서는 이 방법을 응용해서 자주 쓰게 되는데, 특히 아이들이 어떠한 놀이감을 가지고 다툴 때 많이 활용 합니다. 사이가 좋던 여자아이 둘이서 예쁜 인형을 놓고 서로 자신이 가지고 놀겠다며 싸우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아주 많이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이때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얘들아 왜 이까짓 인형 가지고 싸우니, 이 인형은 아주 나쁜 인형이야. 왜냐하면, 사이좋은 너희 둘이 이 인형 때문에 싸우고 있으니 말이야. 만약, 이 인형이 없었으면, 너희들은 이전처럼 서로 사이좋은 ‘베프’일텐데, 안 그래 얘들아? 그래서 원장님은 이 나쁜 인형을 쓰레기통에 버릴까 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지?”라고 말입니다. 이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양보하거나, 서로 인형을 가지고 놀지 않겠다며, 다른 놀이감을 찾곤 합니다. 둘 다 이 인형이 버려지는 것 또한 싫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여기에는 ‘솔로몬’의 지혜도 살짝 빌려온 것이지요. 그만큼 효과는 아주 뛰어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아이들과의 분쟁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저는 ‘미루기’방법을 통해 서로를 더욱 배려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때 발생하는 ‘미루기’의 대상이 되는 ‘희생양’에 대해 때로는 미안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희생양’보다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서로의 요구사항이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간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항상 어떠한 분쟁의 요인이 외부에 있을 수도 없고, 서로의 잘못을 덮어둔 채 ‘제3의 희생양’을 찾는 것은 잘못된 행동과 어긋난 분쟁 해결의 방식이긴 하나, 아이들과의 분쟁 해결 방식에 있어서 그 ‘희생양’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거나, 적합하지 않을 경우 충분히 미루기 전략을 사용해 볼 것을 권장하는 바입니다. 특히, 앞에서 응용한 ‘솔로몬’의 지혜를 약간 덧붙인다면 더 큰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좀 더 덧붙이자면, 현재 자신이 느끼고 있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있다면, ‘미루기’전략을 통해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지금 내가 버리고 싶은 ‘더 나쁜 것’에 미루어 떨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3년 반 전에 “지금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열 받는 게 모두 담배 때문이야”라는 생각으로 20년 가까이 피웠던 담배를 단번에 끊었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담배)흡연이야!”라는 한마디로 말이죠.


 여러분들도 적절한 기회가 생긴다면, 이 ‘미루기’전략을 통해 아이들과 서로 불신하는 사이가 되기 전에 잘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제 경험으로는 효과가 좋습니다.


크래들코리아‘책읽어주는 도서관’조한상 부대표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197

일산스마트러닝센터(S.L.C.)2F

070-4610-1959/010-5388-0828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0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