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4. 25. 20:45

[연극을 보고나서]

‘늘근 도둑’을 보며
연극의 매력에 빠지다

‘늙은’도 아니고 ‘늘근’도둑이 나오는 ‘늘근 도둑 이야기’ 연극을 보고 왔습니다. 어릴 적 단체로 보았던 인형극이 아닌, 대학로의 공연장에서, 그것도 저 혼자서 처음으로 보는 연극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공연장의 무대 위에는 배우 3명과 달랑 의자 몇 개만이 놓여 있었어요. 무대의 장치도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도대체 이 속에서 어떤 연극을 할까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연극은 대통령 취임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난 도둑 두 명(더 늘근 도둑, 덜 늘근 도둑)이 노후 대책을 위해 ‘그 분’의 미술관에 잠입하게 되는데,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들의 가치를 모른 채 금고만 털려고 하다 발각되어 수사관에게 조사를 받으며 옥신각신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거운 문제들을 풍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은 이해하고 웃는데 학생인 저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더러 있어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나름 제가 발견한 이번 연극의 두 가지를 매력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먼저는 배우들의 재치 있는 입담입니다. 이번 연극은 어떤 행동보다 배우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거의 전부인데, 대본에 적힌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즉흥적으로 말을 만들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시원시원하게 술술 내뱉었습니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넣어서 사람들이 지루할 새도 없이 웃게 만들었습니다. 즉흥적인 애드리브를 하는 거라면 배우들간에 찰떡 호흡을 위해 엄청나게 많이 준비 했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행동이 아니라 말로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실력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두 번째는 배우들과 관객의 소통입니다. 극중 배우들이 연극을 일방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참여시키는 점이 재미있고 신선했습니다. 연극의 중간에 도둑들이 특정 관객들을 지목하면서 “오! 이것은 ‘뭉크의 절규 ’네!”라고 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든지, 중간 중간에 관객들을 향해 질문을 하고, 관객이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관객도 연극을 만드는 한 부분으로 동참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런 매력들은 연극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으로 영화와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앉아서 감상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연극은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생생한 작품의 현장을 같이 하고 더 나아가 그 작품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똑같은 시나리오라 할지라도 고정된 작품이 아니라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늘 같은 상황이 아닌 새로운 연극이 만들어져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현장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작품이 주는 감동과 메시지가 더욱 생생하게 기억되고 남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겨울, 그동안 친숙했던 영화도 좋지만 연극 한 편을 보면서 새로운 매력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처럼 말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한수정
hannah0112@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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