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114호)

우리 좀 느리게 가면 안되나요?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6. 10. 08:44

[황경태 변호사의 법률칼럼]

 우리 좀 느리게 가면 안되나요?

혹시 2017년도 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시나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도시인의 삶을 살다보면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그저 스쳐지나가고 정작 의미 있게 남는 것은 별로 없을 가능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마 그 당시에 일어났던 비트코인 열풍이나 한강에 가즈아! 정도의 문구는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비슷한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P2P금융사고입니다. 
2019. 3. 8.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사기와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P2P대출업체 ‘빌리’의 대표 주모씨와 부동산 업체 대표 이모씨를 구속기소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주씨 등은 2015년 11월경부터 지난해 1월까지 투자할 담보가 없음에도 담보를 확보한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여 총 6802명으로부터 투자금 162억원을 가로챘으며, 이와 별개로 대출목적으로 모집한 투자금 73억원을 투자자에게 반환하지 않고 기존 연체 대출금 ‘돌려막기’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8년도 아나리츠의 1,000억원대 사기, 횡령에 이어 또 사고가 터진 것입니다. 
저는 작년부터 위 업체에 투자하신 분들을 만나면서 사건을 진행해왔습니다. 대부분 평범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전문적으로 투자를 하는 분들이 아니라 하루하루 일을 하면서 월급을 쪼개 모으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저축 대신 P2P투자를 택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평범한 사기 사건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합니다. 첫째는 종래에 없던 P2P금융이라는 IT기술과 금융이 만나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부정적인 요소라는 점이고, 둘째는 이러한 사고가 개개인의 잘못보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를 통해 ‘자율과 법’이란 주제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업에 있어서의 자율
P2P금융이란 은행의 높은 문턱과 수수료에 대한 대안으로 몇 년 전부터 떠올랐습니다. 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와 여윳돈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연결하자는 아이디어가 그 출발점이었고, 이는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태평양을 지나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2018년도 상반기 KB국민은행은 1조 3,533억원의 순이익을 신한은행은 1조 2,718억원, 그리고 우리은행은 1조 2,369억원의 이익을 올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을 이용할 때에 왜 그렇게 높은 수수료를 내야하는지가 의문인 사람들, 그리고 은행의 높은 문턱을 실감한 사업자들에게 이러한 아이디어는 꽤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현대사회에 있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율입니다. 흰 도화지에 자신이 원하는 선과 색을 통해 감성을 쏟아내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라는 무대에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느라 집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그 뒤에 분명 엄마의 잔소리가 뒤따라올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사회에서는 누가 이러한 역할을 감당할까요? 역시 규제당국이겠지요. 

자율을 대하는 법의 태도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것처럼, 규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그러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위에서 P2P금융이란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사람에게 자, 이제 당신이 그 사업을 해도 되는지, 하더라도 지켜야할 선이 무엇인지 한번 얘기해봅시다라고 한다면 이런 논의를 갑갑한 것, 발목을 잡는 것 정도로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P2P금융이라는 똑같은 현상을 대하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통해 이 점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P2P금융이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생긴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➊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 ➋ IT기술, ➌ 투자자보호를 위한 규제, 이 세 요소가 나름 균형 있게 자리를 잡은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➌의 요소가 빠져버린 것입니다. P2P금융은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인 대중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사업에 대출을 해주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를 ‘증권모집’과 본질이 같은 것이라 판단하였고 증권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판단의 저변에는 1920년대 대공황과 증권시장의 폭락의 경험, 그리고 1931년 증권법제정의 역사적 경험이 깔려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당국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P2P금융이 실제 대중화되었을 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이 사업의 본질을 증권법의 규율대상이 아닌 단순한 대부업이라 규정하였고, 그러다 보니 자본시장법상 규정된 투자자보호를 위한 각종 장치가 적용될 수 없게 된 것이 바로 사기와 횡령같은 사고의 원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업에 있어 자율로 출발했는데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지 못하고 결국 집안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꼴입니다.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장소의 분리 
우리가 가진 마음의 생각은 언어와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특별히 이러한 행동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공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해서 아직 우리가 많이 서투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적인 영역이라 해서 꼭 유명한 사람, 정치인이나 연예인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는 순간, 인터넷에 접속하여 SNS에 글을 올리는 순간부터 이미 공적인 영역에 진입한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나는 단순히 홀로 존재하는 나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있으며, 그러므로 나의 말과 행동이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동시에 생각해야 합니다. 흔히 동양적 습관대로 눈치를 봐야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실생활을 예로 들면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빨대나 비닐봉지로 인해 바로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소비 전 세계 1위가 된다는 것 및 해양오염과 이로 인한 먹거리의 위협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자율을 통합적 사고와 행동으로!   
우리 개인의 일상적 행동뿐 아니라 P2P금융같은 경우 은행의 틈새를 파고들자는 아이디어를 IT기술로 구현하고자 하는 ‘자율’은 반드시 공동체의 다른 영역인 법과 정치, 도덕과 윤리의 영역을 고려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공동체 전체 중에서 하나의 영역에 속한 IT기술이나 과학, 법이나 정치등 개별요소들이 ‘나는 나의 자율성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거야!’라고 하는 주장은 자율이 아니라 독단이 됩니다. 혹시 그러면 너무 불편하거나 거추장스럽고 또는 발전이 너무 느리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좀 더 불편하고 느리고 더디게 가야 합니다. 게으름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를 살피면서 제대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 우리가 흔히 진보라 부르는 것들을 접할 때에 무조건 빨리 시도해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공동체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고려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있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며 빨리 결과를 봐야하는 우리의 본성과 안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부터도 저 자신을 돌아보려 합니다. 나는 지금 전체를 그리고 멀리 내다보며 오늘 하루를 걷고 있는지 말입니다. 

 
법무법인 헤리티지 변호사 황경태
 kyoungtae.hwang@heritagelaw.co.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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