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117호)

‘슈퍼 히어로는 없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8. 21. 21:55

[황경태변호사의 법률칼럼]

‘슈퍼 히어로는 없다!’

 

시끌벅적한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대문역으로 가는 길에 눈에 확 띄는 뭔가가 있습니다. 아마 눈치 빠른 분이라면 “아 그거!”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망치질하는 남자, 일명 ‘해머링 맨’입니다. 미국의 설치미술작가인 조너선 브로프스키(Jonathan Borofsky)가 흥국생명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작품입니다. 아주 큽니다. 커서 그 아래를 지나다보면, 그 망치가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상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혼자서 망치질하는 모습이 노을진 석양아래 짠하게 고독해 보이기도 하죠. 그래서 식구를 책임진 가장의 무거운 어깨, 혹은 끊임없이 굴러가나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우리 지구 문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조형물들은 삭막하고 일률적인 도심빌딩의 숨구멍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공간효율성과 비용절약만을 내세운 네모난 빌딩의 네모난 방과 칸막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죠. 이러한 조형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지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아가 네모가 아닌 동그랗고, 흰색이 아닌 알록달록하거나, 또는 자연스러운 파스텔 색을 도심에서 더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다 비용, 즉 돈으로 연결된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누군가 호주머니를 열어야합니다. 이런 공간을 꾸미거나 조형물, 미술품을 설치하는데 씀씀이가 크고 마음이 너그러우신 건축주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예술작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강제하면 어떨까요? 도심 속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에도 좋고, 덩달아 예술계 분들도 일거리가 늘어나니 좋습니다. 그래서 법을 만들었습니다. 일명 ‘문화예술진흥법’입니다. 이 법은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건축주에게 미술작품설치의무를 부과합니다. 건물의 종류마다 조금 다르지만 대략 건축비용의 0.7%를 써야 합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려는 건축주의 경우에는 이 법이 달갑지 않을 겁니다. 구두쇠라고 욕해야 하나요? 지나가는 사람들 보기에도 좋고 예술산업도 발전하는 일인데, 왜 하지 않으려하냐고 따져야하는 문제일까요? 그런데 건축주의 입장에서 이런 제도는 일종의 ‘강제기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지나가다 길거리에 만난 사람이 다짜고짜 자신에게 돈을 기부하라 한다면 어떨까요? 아무리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이라도 기분이 좋진 않을 겁니다. 왜죠? 대부분 기부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이러한 종류의 정책은 대공황 이후인 1934년 미국에서 실직미술가를 위한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법제화가 되었지요. 대체로 건축비용의 1~1.5%를 미술작품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이러한 정책은 거의 공공건축물이나 공공건설에 적용되었습니다. 즉 정부가 돈을 들여서 건축하는 건축물에 적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이러한 자금도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니 본질이 다른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민간 건축주의 자유를 직접 제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최근 경기도청은 건축주의 자유를 더욱 제한하는 조례안을 하나 만들어 의회를 통해 통과시켰습니다. 조례안은 건축주가 경기도 내에서 건축물 예술작품 설치를 할 때에 무조건 공모절차를 거쳐야 하는 의무를 부과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건축주가 원하는 작가에게 개인적으로 의뢰할 수 없고, 인터넷을 통해서 접수를 받고 심사위원단을 구성하여 심사해서 작품을 선정하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의뢰받아 경기도청에 여러 번 가서 문제를 피력하였습니다. 일단, 이러한 공모절차 의무화는 건축주의 계약의 자유를 심히 제한하여 침해한다는 것과, 이어서 경기도는 이러한 조례를 만들 입법권한이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경기도 의회 입법조사관도 제 의견에 동의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조례안은 결국 의회심사를 통과하여 공포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 도출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성숙한 결과인지, 아니면 경기도 의회 142명 중 민주당 의원이 135명이고 이 조례안의 발의자가 같은 당원이기에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수학은 답이 똑 떨어집니다. 풀이과정이 다를 수는 있어도 정답이 존재하지요. 그러나 이런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정답이 아닌 해답이 있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입니다. 결국 관점과 가치관, 철학의 문제입니다.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문제이기도 하고요. 또 우리가 사는 지역공동체에서 가치가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문제는 단번에 무 자르듯이 결론이 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이 표현되어야 하고, 토론되는 지루하게 보이는 과정을 통해 점차 합의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에 해당하는 정책을 빨리빨리 만들어내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적 차원에 대한 논의와 대화들을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들이고 성숙시키며, 특히 미래세대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논의에 있어 잘 모르겠으면 뒤로 미루어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천천히’, 특히 ‘원리적 논의와 대화’는 인기가 없습니다. 헐리웃 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처럼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해야 환호를 얻습니다. 해결은 못해도 적어도 하는 모양새라도 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마트폰과 그 안의 짧은 동영상에 익숙해지듯이, 뭔가 화끈하고 빠른, 다수의 결정에 익숙해져가는 모습이 염려스럽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광화문 네거리에서 매우 자주 들을 수 있는 고함과 함성에 익숙해져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인생에서 반항기인 사춘기와 혈기 방장한 청년기가 존재하는데, 우리는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요? 피 끓는 청년시기에 내린 결정들이 인생의 깊고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과연 얼마나 위태로웠던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잠시 판단을 유보하고 조심해야 할 시기인데도, 책임지지 못할 너무나 많은 판단과 결정들을 함부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호사 황경태
kt.hwang32@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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