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117호)

나는‘포틀럭 파티’에 간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8. 21. 22:05

[김단혜 에세이]

나는 ‘포틀럭 파티’에 간다

 

카페에 가게 된 건 혼자 사는 후배를 따라서다. 잡지사 기자를 전전하며 글쓰기와 직장에 반반씩 다리를 들여놓고 어느 곳도 버리지 못하면서 한 곳도 제대로 마음 두지 못하는 후배다. 눈 뜨면 폭염과 눈 감으면 열대야가 이어지며, 나의 여름은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어 넘겨지지 않는 책갈피처럼 지루했다. 갱년기와 폐경기가 한꺼번에 쳐들어온 나의 몸은 혹독했다. 후배는 예술인 카페 ‘포틀럭파티’에 초대받았다고 했다. 예술가 한 명을 데리고 오는 것이 조건이라며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나라고 했다. 후배가 나의 어떤 부분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예술가라는 말을 곱씹었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생각했다. 밤마다 푸조를 타고 1920년으로 돌아가 헤밍웨이를 만나고, ‘위대한 갯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를 만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내 취향과 입맛에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욕망이 피어올랐다. 

카페의 이름은 ‘지구별 여행자’다. 카페는 생각보다 북적이고 운치가 있다. 도심 속 너와집이랄까? 건축가인 주인이 공사장에서 뜯어낸 나무판자로 건물 전체를 감쌌다. 튀지 않으면서 개성있는 분위기가 묘하게 주위 건물들과 어울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모두 오래된 것들이다. 의자들이 독특했다. 통나무를 그대로 올려놓거나 폐교의 칠 벗겨진 걸상을 갖다 놓았다. 뼈대만 남은 다리에 누더기 판자를 덧대기도 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들이다. 새것은 없고 모두 재활용으로 만든 카페 안은 마치 헌책방에서 발견된 희귀본 같은 특별함이 느껴졌다. 물건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라며 물건들이 말을 걸어온다. 가장 낡고 초라하지만 왠지 정이 가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지루하던 여름을 보상받은 듯 편안해지며 나 자신에게 돌아온 기분이다. 

이곳에 온 흡사 집시 같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 했다. 이야기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이 내게는 들어왔다. 분위기를 이끄는 건 한 사람 또 한 사람. 옆에 사람이 무엇을 하던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본 사람인데 오래 알던 사람처럼 눈인사를 나누고 호들갑스럽게 반기지 않았지만, 부담이 없어서 편안하다. 내가 초대받았다는 느낌보다는 늘 드나들던 곳에 들어선 기분이다. 느슨하면서 한가로운 그러면서 자유로운 시간이 흘렀다. 무엇을 시킬 필요도 없이 각자 가지고 온 먹을거리를 풀어 놓으면, 와인이든 맥주든 커피든 눈으로 알아서 가져다주는 이는 홍대 쪽에서는 이름난 연극배우다. 처음에는 커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와인으로 바뀌어 있다. 곳곳에서 아로마 향과 함께 타오르는 촛불의 향기가 호사가 되는 곳이다. 

카페 한 켠에는 캘리그라피로 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평생 로맨스의 시작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랬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던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간 기분이다. 그렇게 와인을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잔을 부딪치고 누구 하나 파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주인공이다. 가면을 벗어버리고 민낯으로, 아니 아예 껍진껍진한 알몸으로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하루의 끝과 시작이 함께 있다. 이대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면 이 밤이 아니 이 여름이 마지막이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자꾸만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알 수 없는 열정의 밤을 앓았다.

몇 번의 ‘포틀럭 파티’가 있었다. 나는 후배처럼 누군가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 A는 체면과 권위를 앞세우는 전문예술가다. 파티에 함께 갈 수는 있지만, 그곳에 함께 가면 내가 불편해진다. 아마도 그는 아마추어 예술가를 비웃을 것이다. B는 과도한 집착의 아마추어 예술가다. 전문가의 행태를 모방하고 답습하며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려 하는 어설픔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면서 A처럼 열패감과 사소한 우월감으로 나는 너희와는 다르다며 열심히 사는 사람을 우습게 본다. 그렇다고 예술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는 C를 데려가지 못하는 구실을 찾는 나를 본다. 이 보이지 않는 카테고리로 얽힌 내 주위에 진정한 예술가는 누구인가?

오늘 밤 나는 ‘포틀럭 파티’에 간다.

 

수필가 김단혜
blog.naver.com/vipapple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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