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118호)

미식의 즐거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8. 25. 16:12

[retrospective & prospective 22]

미식의 즐거움

 

 공중파 방송사 피디였던 선배가 몇 년 전 휘몰아쳤던 방송사 사태에 연루되어 해직하고 그때 뜻을 같이 했던 동료들끼리 모여 ‘국민TV, 국민라디오’라는 협동조합형 방송사를 개국하고 운영 중이다. 한때 라디오 방송에서 9년 동안 고정출연하여 문화예술계 소식을 전한 적 있는 필자는 출연료가 적어서 부탁도 못하겠다는 선배의 부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주에 한 번 출연해서 ‘손미정의 예술 그 뒷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음식 때문에 기아로 목숨을 잃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풍족해진 음식으로 병을 키우는 사회... 지난 주 방송분으로 다루었던 에피소드가 문득 떠올라 소개하고자 한다.
 요즘 TV를 틀면 요리와 음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그래서 365일 다이어트를 신경 써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 힘든 때이기도 하다. 공연예술계에도 음식과 관련 있는 음악가들이 많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베이스인 페오도르 이바노비치 샬리아핀(1873-1938)은 1936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연주회를 가진 일이 있다. 그는 도쿄의 제국호텔에 머물렀는데 피곤해서인지 입안이 헐어 제국호텔의 식당 주방장에게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주방장은 대단한 정성을 들여서 아주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만들었고 샬리아핀은 크게 만족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쿄에 머무는 동안 내내 그 특제 스테이크만을 주문하여 먹었다. 그로부터 제국호텔은 샬리아핀에게 서브했던 특별 스테이크를 ‘샬리아핀 스테이크’라고 이름 붙였다. 
 나폴리 출신의 세계적인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는 음식 만들어 먹기를 즐겨했다. 특기는 파스타였는데, 기본적으로 고기를 다져 넣은 파스타를 즐겨 만들었다. 물론 카루소 비법의 양념도 들어갔다. 나중에 이를 ‘스파게티 카루소’ 또는 ‘스파게티 알라 카루소(카루소 타입의 스파게티)’라고 불렀다. (스파게티 카루소는 닭의 간과 버섯을 주로 사용한다.) 또한 훌륭한 수프를 ‘카루소 수프’라고도 부른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카루소는 포병으로 군대에 복무한 일이 있다. 그는 막사에서 시간만 나면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소리는 멀리까지 들렸다. 마침 장교가 카루소의 노래를 듣고 그를 불러 자기 친구에게 소개했다. 장교의 친구는 돈이 많은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그 음악가는 카루소에게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와 ‘카르멘’의 테너 아리아를 불러 달라고 했다. 카루소는 장교의 명령 및 장교 친구의 부탁으로 노래를 부르고 식사를 함께 했다. 
 다음날 장교는 다시 카루소를 불렀다. 장교의 친구가 카루소의 노래를 듣고 싶어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았다. 장교가 궁금해서 오히려 찾아왔다. 카루소는 “어제처럼 기름기가 많은 수프를 먹을 것 같으면 목소리에 지장이 있을 듯해서 오늘도 그런 수프를 줄 것이라 생각해 그걸 먹고는 노래를 부를 수 없어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튿날 저녁, 카루소를 초청한 저녁식사에는 최고급 수프가 등장했다. 그로부터 최고급 수프를 ‘카루소 수프’라고 부르게 되었다.
 1999년 뉴욕의 유명한 다니엘 레스토랑의 주방장인 다니엘 불루드(Daniel Boulud)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을 대단히 존경한 나머지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고 이를 ‘라 디바 르네’라고 이름 붙였다. 초콜릿 케이크는 몇 겹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샴페인 크림, 헤이즐넛 웨이퍼스, 아몬드 비스킷으로 장식을 한 것이다. 케이크의 위에는 르네 플레밍의 모습을 사진으로 넣은 초콜릿 웨이퍼를 얹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현지에서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문 밖에만 나가면 모든 종류의 음식들을 먹을 수 있고, 야심한 밤에도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한국의 배달시스템을 이용해서 안방에서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음식, 어머니가 직접 만드는 집 밥, 집안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조상의 음식은 점점 뒤로 밀리고 간편하고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분별없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먹는 음식으로 식이장애, 비만,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돈을 들여 음식을 탐닉하고 다시 돈 들여 그 음식으로 찐 살을 빼야하는 시대. 이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 음식에 얽힌 히스토리, 영양, 내 몸에 들어가 어떤 순기능을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려 한다면 자각 없이 영양 없는, 입에만 단 음식을 탐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미식가가 되는 첫걸음이다. 미식가는 특별한 사람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갖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그러면 삼시세끼 미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 교육사업부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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