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119호)

‘마녀체력’의 저자 ‘이영미’를 만나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9. 15. 20:07

[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마녀체력’의 저자 ‘이영미’를 만나다!!

 

 

‘저질체력’에서 ‘마녀체력’으로 나를 변화시킨 작은 동기
책상에 앉아 일하는 에디터로 쭉 나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젊었을 때야 건강했고, 어쨌든 힘든 워킹맘 생활도 잘 버텨냈으니까요. 하지만 13년차 에디터 생활을 하며 30대 후반의 저에게 남은 건, 고혈압과 스트레스, 저질체력이었습니다. 아이가 여섯 살쯤 되었을까요? 또래 부부들끼리 여름휴가를 맞춰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무려 다섯 가족이 미니버스 한 대를 대절해 2박3일 동안 지리산 근처를 돌고 오자는 데 의기투합 했지요. 도착해서 고기도 굽고, 평소처럼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가야 할 행선지를 정하면서부터 김이 새기 시작했어요. 체력 좋은 남자 몇이,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지리산을 꼭 올라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같이 온 아내들 중에도 두 명은 적극적으로 지리산 등반에 자신감을 보이는 겁니다. 당연 등산에 관심이 없고 저처럼 몸 상태가 별로인 사람들은 그 시간에 아이들과 보성 차밭이나 둘러보겠다고 했지요. 다음날, 남편을 포함한 지리산 팀은 새벽에 요란하게 짐을 챙겨 민박집을 나섰습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차밭 팀은 아이들 챙기랴 꾸물꾸물 게으름을 피우며 목적지에 도착했지요. 하지만 그만 비가 오는 바람에 넓게 펼쳐진 차 밭을 버스 안에서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스멀스멀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지리산까지 와서 부부가 따로 떨어져 뭐하는 짓인가 싶었죠. 속으로 끙끙대고 있는데 저녁이 되자 지리산 팀은 ‘하하호호’ 웃으며 돌아오더군요. 비에 홀딱 젖은 추레한 모습이었지만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마치 남극을 탐험하고 돌아온 듯 끝없는 무용담이 펼쳐졌지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저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지리산을 코앞에 두고도 올라가지 못하고 쳐다만 보는 몸뚱어리가 된 제 모습 때문이었지요. 지식을 쌓으며 머리로 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지, 사실 몸으로 움직이는 일은 가볍게 여겼거든요. 그런 제가 머리만 비대해진 채 아무 쓸모없이 변한 육체의 한계를 처음으로 절감한 셈이지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당장에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대부터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었던 수영을! 


마녀체력의 좌우명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10년
체력을 키워보려 수영을 선택했지만, 몇 년 전,감기를 심하게 앓아 일주일을 푹 쉰 후 수영장에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호흡을 하려고 머리를 물에 담근 순간, 골이 빠개지는 통증으로 내과진료를 받아야 했죠. 그 때 의사가 ‘무조건 수영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 ‘아! 나는 수영이 안 맞는 인간이구나’ 생각해, 아예 수영장엔 얼씬도 하지 않았죠.‘ 혹시 예전처럼 두통이 심하면 어쩌나’마음 졸이며 물속에 머리를 담갔는데, 웬걸 전혀 아프지 않은 겁니다. 비록 강습에 빠지는 날이 많아 진도는 느렸지만, 호흡법을 제대로 알고 난 이후 수영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죠. 그 감격이란... 특히 출근 전 이른 아침에 수영으로 진을 뺀 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맛과 수영장 문을 열고나올 때 시원한 바깥공기를 들이 마시는 개운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에디터 일을 하며 종종 밤을 꼬박 새우는 올빼미 족이었던 제가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은 제 삶의 또 다른 큰 변화였지요. 더 나아가 수영을 한 후, 철인3종이라는 경기까지 나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죠.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영화 덕분이었죠. 아들의 초등학교 운동회 날, 아버지 달리기 대회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는 굴욕적인 경험을 한 남편은 이에 자극을 받아 마라톤까지 완주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남편을 보면서도 저는 마라톤은 건강해지기보다 오히려 자기 몸을 괴롭히는 일종의 고문이라 생각했지요. 아무리 몸에 좋다고 감언이설을 해도, 결코 택하지 않을 최악의 운동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이런 제가 2005년 조승우 주연의 <말아톤>영화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비록 주인공을 통한 간접 경험이었지만, 왜 사람들이 달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달이 휘영청 뜬 밤, 300미터 정도의 공터를 천천히 한 바퀴 걷고 난 뒤, 한 바퀴를 뛰었습니다. 첫 날은 딱 거기까지. 욕심 부리지 않고 다음 날 두 바퀴, 다음날 세 바퀴에 도전해볼 작정이었죠. 대신 제가 잡은 목표는 천천히 쉬지 않고 공터 열 바퀴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저질체력인 저도 최소한 3킬로미터는 너끈히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요. 워킹맘인 저는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출근하기 전인 새벽에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늦게 집 앞 공터를 뛰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5km, 10km, 하프 마라톤을 뛰고, 끝내 2006년 3월 동아마라톤에서 42.195km를 완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달리기의 신세계에 입문한 것이죠. 
자전거는 어쩔 수 없이 타게 되었다고 할까요? 초보자들이 흔히 그러듯 다른 운동으로 갈아타 볼까 눈길을 돌리던 참이었습니다. 전단지를 보고 지하철역 근처에 요가 학원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퇴근 후, 집에서 걸어가기에는 세 정거장이라 좀 먼 거리였습니다. 남편의 해결법은 바구니가 달린 중고자전거를 구입하는 거였죠. 어릴 적 자전거에 크게 다쳐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제게, 뭔가 찝찝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가는 첫날, 사람이나 차에 부딪힐까 겁이 잔뜩 난 저는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아예 내려서 자전거 핸들을 밀고 가는 게 빠를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며칠 타다보니 한산한 골목을 택하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자전거도 넘어질 만하면 바로 땅을 디딜 수 있을 크기였기에 한 달 정도 흐르자 겁도 사라졌습니다. 드디어 출근할 때 지하철역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퇴근 후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돌아오는, 말로만 듣던 출퇴근 자전거 환승을 할 수 있게 된 거지요. 두려움에 자전거를 타지 못했던 저에게 놀라운 자전거의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동갑내기에 두 딸을 키우는 워킹맘, 철인3종 킹 코스를 완주한 그녀와의 첫 대면! 
어느새 수영, 달리기, 사이클 세 가지 종목을 고루 섭렵한 남편은 온라인에서 철인 3종 동호회를 찾아 가입하더군요. 일요일마다 미사리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곤 했는데, 초보자도 자전거 타기에 안전하니 함께 가자고 권했습니다. 머리에 헬멧을 쓰고, 민망할 정도로 몸에 착 달라붙는 자전거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날렵한 사이클에 올라 호수 주변을 돌기 시작했죠. 조정 경기장인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돌면 5킬로미터쯤 되었죠. 면 티셔츠에 펄럭이는 반바지 차림으로 엉거주춤 자전거에 올라탄 저는 눈부신 도시에 떨어진 시골 쥐처럼 보였습니다. 겨우 지하철역까지만 타본 솜씨라 한 바퀴 도는 것조차 힘에 겨웠죠. 간신히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동호회 사람들은 몇 번이고 저를 따라잡았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출발지점으로 돌아온 저는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 것처럼 자전거를 땅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체면이고 뭐고 그늘에 누워버리고 싶었죠. 기다리는 것도 지칠 즈음, 사이클 한 대가 주차장 쪽으로 들어왔습니다. 헬멧을 벗고 보니 놀랍게도 ‘여성’이었죠. 그녀는 익숙한 솜씨로 차에 사이클을 척 싣고, 사이클 신발을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었습니다. 그리곤 저를 보며 씨익 웃으며 “날도 더운데 힘들었죠? 자전거를 타고 난 다음에는 근전환 운동을 해 줘야 하거든요. 한 바퀴만 뛸 건데, 기다리기 지루하면 같이 뛸래요?”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저를 뒤로 하고 그녀는 힘차게 달려 나갔습니다. 고작 자전거로 5킬로미터 타고 나자빠진 저는 어떻게 똑같은 여자가 저럴 수 있는 건지 어이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체구도 저랑 비슷하니 자그마했지요. 달리기까지 모두 끝내고, 근처 식당에서 다 같이 모여 점심을 먹는데, 저를 놀라게 한 여성은 두 딸을 키우는 워킹맘에다 저와는 동갑내기였죠. 몇 년 전 철인3종에 입문하여 그 힘들다는 킹 코스(바다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연달아 하는 철인3종의 코스 중 하나)까지 완주한 경험자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감히 범접하지도 못할 이상한 세계를 구경한 것 같았죠. 마치 달리는 치타의 무리를 멀리 숨어서 훔쳐보는 토끼 같은 심정이랄까요! 아마 이때 받은 자극이 저에겐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요인으로 한 순간 폭발하는 것을 말함)가 된 것 같습니다. 


바구니 자전거에서 노란 사이클에 도전
당장에 그때까지 타던 중국산 자전거를 아들에게 넘기고 새로 노란 사이클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올라탔을 때는 후회막심! 이제까지 타온 자전거와는 차원이 달랐죠. 허리를 굽힌 자세는 영 불편하고, 핸들을 조작하는 게 맘처럼 쉽지 않더군요. 숱하게 넘어지고 자빠지고, 뒤늦게 자전거 바람이 들어 왜 내가 이 고생을 하나 싶었죠. 다시 바구니 자전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습니다. 남편은 자꾸 의지하려는 제가 슬슬 귀찮아졌는지, 사이클 정기모임에 가입해 보라고 하더군요. 혼자 정기모임에 참석하는 첫 날, 잠실대교 밑까지 간 게 기적일 정도로 얼마나 섰다 가다를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젊은 총각들 틈에 끼어 죽어라 페달을 돌리며 쫓아가면서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죠. 땀 줄줄, 콧물 질질, 꼴찌로 도착하자마자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초코파이와 콜라를 게걸스럽게 먹어댔습니다.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후줄근한 행동이었죠. 하지만 남편 말대로 젊은 자전거 도사들 꽁무니를 죽어라 따라다니는 동안 제 자전거 실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한 번 불이 붙은 제 욕망은(웃음) 거기서 멈추지 않았죠. 철인3종! 동갑내기 여성이 해낸 거라면 나라고 왜 못하겠냐 싶은 오기가 생겼습니다. 체력이 강해짐과 동시에, 저는 정신력 면에서도 점점 담대해져 갔습니다.


2007년 8월, 드디어 처음으로 이천에서 열리는 ‘설봉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나가다! “제발 비가 더 쏟아지게 해주세요!”
매년 여름, 이천에서 열리는 ‘설봉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특히 초보자들이 많이 참가합니다. 가장 어렵다는 게 오픈 워터인데, 파도 일렁이는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에서 수영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의욕이 앞서 덜컥 신청은 했지만, 세 종목 중 뭐 하나도 잘 할 자신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밤새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져 아침이 되어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심 아예 대회가 취소되면 좋겠다 싶었죠. ‘제발~ 비가 더 쏟아지게 해주세요!' 출발시간에 맞춰 선수들은 전신 슈트로 갈아입고 설봉 호수 근처로 모여 들었습니다. 비는 점점 더 사납게 쏟아졌죠. 선수들 틈에 껴 있었지만, 대회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잠시 후, 대회본부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비 때문에 도로가 미끄러워 넘어질 위험이 있으니 자전거 종목은 빼고 경기를 진행한다는 거였습니다. 


‘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철인3종이냐고!’ vs. ‘두려움에 져서 포기하지 말라!’
자전거를 안 한다기에 한시름 놓았는데 사실 더 무서운 복병은 따로 있었죠. 바로 수영이었습니다. 잔잔한 호수는 커녕, 폭우로 철렁대는 흙탕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여자 선수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죠. 온갖 오물들과 물에 빠져 죽은 쥐 한 마리가 코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거였습니다. 수영, 달리기, 사이클만 타면 철인3종을 할 줄 알았는데, 정작 중요한 자격은 이런 악천후를 견디는 담대함이었던 것입니다. 절망에 빠질 새도 없이 출발 신호가 울렸습니다. 남자선수들은 먼저 나이 순서대로 착착 입수를 했지요. 이제 출발선에 남아 있는 사람은 오직 저뿐이었습니다. 발이 닿지 않는 더러운 흙탕물은 수영장과는 차원이 너무 달랐죠. 안타까운 얼굴로 구조대원이 말을 걸었습니다. “그냥 포기하실 거예요?”, “네, 도저히 못하겠어요.” 그런데 얼른 그만 두라고 할 줄 알았던 남편이 다가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첫 경기는 원래 힘들어, 꼭 완주하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어. 기왕 물속에 들어간 거니까 저기 보이는 첫 번째 부표까지만 가보는 건 어때?” 그런데 신기하게도 첫 번째 부표까지 가는 동안 호흡이 안정되었습니다. 간신히 한 바퀴 돌고 나서 더러운 물을 ‘우웩~’ 뱉고 있는데, 악마 같은 남편이 다시 슬그머니 다가왔습니다. “750미터 한 바퀴를 돌았으니, 똑같이 한 번만 더 돌아봐요” 그때 멀리서 저를 응원하기 위해 지켜보고 있을 아들 녀석 얼굴이 떠오르더군요. ‘두려움에 져서 포기하지 말라’고 늘 말했던 엄마였거든요. 내가 먼저 이 공포를 이기리라 마음먹고 다시 주춤주춤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보다 덜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수영을 마쳤지만 이미 컷오프에 걸리고 말았죠. 이왕 버린 몸, 비나 흠뻑 맞으며 달려보자고 운동화로 갈아 신었습니다. 네 바퀴를 다 돌고 피니쉬 라인에 들어서니, 밥을 먹고 있던 스태프와 응원단이 마지막 선수인 저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내주었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끝까지 해낸 제게는 1등 팡파르와 같았습니다.


철인3종을 넘어 인생3종을 배우다
모범생 트랙에서 이탈해 본 적이 없는 저는 특별한 모험도, 굴곡진 고난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명문대 국문과에 무난히 합격해 비교적 평탄한 탄탄대로를 걸었지요.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대회라는 걸 나가면서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수도 없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치고, 포기하고, 그러면서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분야가 있음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되었죠. 즉 저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실패하고 난 후의 ‘회복탄력성’을 배운 겁니다. 예전엔 책상에 앉아 일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짜증이 나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다양한 운동을 해나가면서 단단해진 체력과 정신력이라는 무기가 생긴 겁니다. 같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견뎌내는 힘과, 내일 좀 더 잘 해보겠다는 마음의 맷집이 강해졌습니다. 
언제라도 손짓하며 지나가는 기회란 놈의 앞머리를 확 잡아 챌 수 있도록 저의 몸 상태를 준비해 놓아야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체력이 강해지면서 그동안 꿈도 꾸지 못했던 근사한 버킷리스트가 생겼죠. 유럽 자전거 여행, 몽블랑 트레킹, 사하라 사막 마라톤, 필리핀 스킨 스쿠버, 실크로드 도보 여행 등등. 이런 모험은 돈과 시간이 많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남들은 30대에 배운다는 배드민턴, 뒤늦게 빠져들다
요즘은 실내운동으로 배드민턴에 빠져있습니다. 게임을 할 때마다, 트라이애슬론과는 또 다른 짜릿함에 흥분되곤 합니다. 또 제 안에 숨은 승부 근성을 발견하고 놀라는 중입니다. 저에게는 별로 없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상대에게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예의나 규칙들을 배우고 순발력, 균형감 등을 훈련할 수 있어 좋습니다. 무엇이든 목표가 있어야 실력이 향상되니 대회에 나가 50대 조에서 꼭 우승을 해보고 싶습니다. 


50대, 지금이 인생의 최고 정점! 작가와 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살다! 
30여 년 해온 에디터 생활은 그만두었습니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50세에 제2의 인생으로 작가, 그리고 강사라는 직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와 팟캐스트에서 책 소개를 하고 있죠. 지금이 제 인생의 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육체를 단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한번 의자에 앉으면 잘 일어나지 않는 스타일이니 백발백중 아랫배 비만과 각종 디스크증상을 몸에 달고 살았겠죠. 마흔 살보다 쉰 살의 저는 오히려 예전보다 과감해졌습니다. 나이 들었다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이런저런 도전을 즐기고 있죠. 다 체력이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50대에 이런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스포츠를 하는 여자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실제로 94퍼센트의 여성 리더가 어릴 때 스포츠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해요. 특히 남자와 같은 필드에서 겨뤄보고 때때로 이기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여자들의 자신감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미리 받고 훈련했다면 수동적인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도 많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트라이애슬릿으로서, 에디터로서 삶의 발자국이 후배들한테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며 일에서도, 체력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고 살아가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153센티미터의 작은 체구인 50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생동감, 자신감, 여유로움이 같은 동갑내기 인터뷰어인 저에게도 강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작가 이영미 트라이애슬릿, 인생학교 강사 ( withbutton@gmail.com )

 

*학력 
·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경력 
·인생학교 대표 강사(현) 
·윌라 오디오북 고문 
·웅진 단행본 본부 대편집자, 웅진 지식하우스 대표 
·디자인하우스 편집장 
·트라이애슬론 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 
·부산~서울 440km 2박3일 국토종주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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