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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만 새해 계획을 세우기보다…

2023년 1월호(15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6. 2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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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만 새해계획을 세우기보다…

 

 일상으로 스며 든 불교 용어 중 ‘돈오’가 있다. 일순간에 깨우침을 얻는 것이라는 원 의미에서 파생되어 갑자기 깨닫는 것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일순간 깨우치기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시간의 뜸을 들였음을 알게 된다. 많은 곡을 만들어 낸 가수들이 5분 만에 썼다는 그 곡이 실은 평소 공기의 리듬을 듣고 발걸음의 박자에 귀 기울이며 생활 전체에 곡을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만들어졌고, 5분은 옮겨 적는데 걸린 시간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약속된 시간에 종을 쳐가며 일을 하지 않는 집안일은 돈오하기 딱 좋다. 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하기에 머릿속 회로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된다.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의 체력이 한풀 꺾이는 마흔 무렵, 주저앉아야 할 만큼 아프고 난 뒤 의도치 않게 진료실에서 은퇴하였고, 그렇게 뒤늦게 가정주부로 입성하였다. 어느 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둘을 건사하며 남편과 함께 꾸리는 집안일은 초보티가 나는 좌충우돌 일상이었다. 요리도, 아이들을 챙기는 일도, 초보에서 익숙해지며 주부단수를 쌓아갈 무렵, 하루 종일 드라마와 예능이 TV에서 나오는 걸 보며 그간 TV앞에 앉을 새 없어 보지 못했던 시청시간을 다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애 태우며 종종거리던 시절을 생각하니, 피곤하여 몸을 부산스레 움직이지 못하는 것 역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총량을 채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1년에 몇 개 밖에 지우지 못하는 버킷리스트들을 매년 욕심껏 기록해두고, 동분서주하는 여러 해를 보내면서, 새해 계획을 줄여나가고, 대신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모든 일을 총량의 법칙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1년을 마무리하고 다시 새 마음으로 한해를 맞이하는 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과 단둘이 하는 해외여행 이 외에, 크고 거창한 계획이 없다는 것이 올해 삶의 방향인 듯싶다.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견뎌내고 한 주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내 주변을 훈훈하게 밝히는 일을 매달 생각해내는 일.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계획은 언제든 세우고 또 어그러지며 반복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 농사를 짓는다면 24절기에 맞춰 미리 준비하고 살아가는 것이 의미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레고리력이나 율리우스력에 맞춘 사회적 약속보다는 나만의 달력에서 1년 동안 수많은 새로운 시작에 의미를 두고 살아본다면 어떨까 조심스런 제안을 해본다.

안산 안녕하세요 부부치과 부원장 양은진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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