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건국절 논란 자제해야 - 3.1운동 99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99주년, 대한민국정부수립 70주년을 맞이하며

2018년 3월호(제 10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3. 1. 00:20

본문

[조경철의 역사칼럼 6]

건국절 논란 자제해야 
3.1운동 99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99주년, 대한민국정부수립 70주년을 맞이하며 

  1948년 이후, 대한민국의 ‘건국절’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었습니다. 그러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는 건국절이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었고, 현 문재인 대통령 때는 1919년이 다시 ‘건국절’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건국절’이 대통령에 따라 1919년과 1948년으로 널뛰는 것은 학문적 차원을 떠나서 정치적 입장에서 해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국의 문제를 정치가 아닌 학문적 입장에서만 다룰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세우는 건국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


  대한민국의 건국이 1919년 혹은 1948년인지는 잠시 접어 두고 우리 역사상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에 있었던 나라들의 건국연대를 찾아볼까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고구려, 백제의 건국연대는 각각 기원전 57년, 기원전 37년, 기원전 18년입니다. 과연 이것이 삼국의 정확한 건국연대일까요? ‘신라’가 가장 먼저 나라를 세웠을까요? 비록 정확한 건국연대는 모르더라도 ‘고구려’가 신라보다 먼저 건국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연대 중 적어도 하나는 틀린 것일 겁니다. 고구려의 건국연대가 신라의 건국연대(기원전 57년)보다 더 오래되었거나, 아니면 신라의 건국연대가 고구려의 건국연대(기원전 37년)보다 더 늦다는 말이지요. 고구려 건국을 기원전 108년이라고 표기한 <제왕운기>를 참조한다면, 고구려의 건국연대가 사실 기원전 57년 이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라의 건국연대(기원전 57년)도 ‘갑자년’으로 임의로 설정한 것이어서 실제 건국연대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고구려보다 뒤쳐졌지만 신라보다 빠른 ‘백제’의 건국연대도 기원전 18년이 아닐 수도 있게 됩니다.

  삼국보다 먼저 세워진 ‘고조선’의 건국연대는 어떠할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의 건국연대가 기원전 2333년이 맞을까요? 삼국의 건국연대도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그보다 앞서 몇 천 년 전에 세워진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그대로 믿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더구나 고조선의 건국연대가 기원전 2333년이라고 정해진 것도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온 1145년보다 몇 백 년 뒤인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입니다. 기원전 2333년이 고려시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정해진 연대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발해’의 건국연대는 698년입니다. 이 연대는 중국의 <구당서>와 일본의 <유취국사>의 기록을 종합하여 얻은 연대입니다. <구당서>에는 무측천의 성력 연간(698~700)에 발해가 건국되었다고 했고, <유취국사>는 문무천황 2년(698)에 발해가 건국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반도에서의 기록은 다른 연대를 전합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인용한 최치원의 글에 발해의 건국을 678년이라고 했고,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684년이라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발해의 건국연대는 678,684,698년 세 개가 있는데, 현재 우리는 중국과 일본측 기록인 698년을 따르는 겁니다. 발해의 멸망연대도 중국측 기록을 따라 926년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측 기록인 <고려사>는 925년으로 봅니다. 

  궁예가 세운 후고려, 즉 ‘고려’의 건국연대도 901년이라고 하지만, <삼국사기>는 궁예의 건국(마진건국)을 904년으로 보면서, 궁예의 고려 건국에 대한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901년 후고려 건국은 <삼국유사>에 근거한 것이죠. 그런데 904년 마진건국이라고 한 <삼국사기>의 또 다른 기록에서 궁예가 세운 나라가 28년간 존속했다고 했는데, 이를 따르면 궁예의 건국은 901년이 아닌 891년이 됩니다.

  지금까지 고조선부터 궁예의 후고려까지 건국연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국사 교과서 건국연대가 실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점 많은 건국연대 가운데 하나인 기원전 2333년, 57년, 37년, 18년, 그리고 기원후 698년, 901년 등을 건국연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연대도 -만약 건국연대를 따진다면-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아니라, 1948년 대한민국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어떤 나라도 ‘국호’만을 칭했다고 해서 건국으로 인정한 사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세워진 대한민국의 건국연대에 대해서 가장 논란이 뜨겁습니다.

- 1919년 임시정부(둘째줄 맨 오른쪽이 김구) -


  대한민국의 건국은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여러 곳에서 나라를 되찾자는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운동의 정점이 1919년 3.1운동이었고, 비록 3.1운동이 실패했지만 그 동력은 다른 나라 땅인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켰습니다. 국민, 영토, 주권도 없는 명목상의 정부였지만,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정하고 굴곡이 있었으나 독립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습니다. 드디어 해방(1945)을 맞이하였고, 대한민국정부(1948)가 수립되었습니다. 대한민국정부는 1948년을 ‘대한민국 원년’이라 하지 않고, 1919년부터 ‘대한민국 30주년’이라고 표방하였습니다. 1948년 당시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정부의 수립을 1919년으로 파악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48년 통일국가의 이름이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이나 ‘고려’였다면 건국 원년을 1919년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948년의 나라이름이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에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국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1919년이 문제가 아니라, 그 후 세워진 나라의 형태나 국호에 연동되어 결정되어질 문제입니다.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정부의 연원을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두었다고 해서 계속 대한민국정부의 연원이 1919년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목적은 나라를 되찾는데 주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1948년에 나라를 되찾고 대한민국정부를 세웠을 때 그 연원을 1919년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948년의 대한민국정부의 목표는 민주국가 실현이고 통일한국의 완성이었습니다. 언젠가 이 둘을 이뤄냈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연대는 1948년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인정한다면 건국에 참여한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상 모든 나라들이 정당성을 갖고 있던 구성원들만으로 나라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궁예의 경우 반(反)신라를 외치고 후고려를 세웠지만, 왕건은 궁예를 죽이고 친(親) 신라적 입장의 고려를 건국하였습니다. 또한 건국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친일파는 아니었습니다. 친일파가 문제라면 친일파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서 해결하면 될 일입니다.

  다만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1919년이 건국이냐, 1948년이 건국이냐는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결정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쪽을 건국으로 정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말 그대로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일’로 기념하면 됩니다. 내년 19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고,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온 나라 사람이 마음을 한데 모은 것이 3.1운동이고, 그 100주년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1919년을 대한민국건국 100주년이라고 하여 국론을 분열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건국절은 적어도 남북이 통일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논의되어도 충분할 문제가 아닐까요? 

군포시 산본동, 명협 조경철 역사학자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1호 >에 실려 있습니다.

 

< 조경철의 역사칼럼 바로가기 >

[조경철의 역사칼럼 5]

제 99호 2018, 평창의 호랑이를 위한 변명


[조경철의 역사칼럼 4]

제 98호 문무왕, 경덕왕, 대통령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