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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의 사랑

2019년 3월호(제11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4. 2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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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고리 공동체 체험기]

촌놈의 사랑

사랑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경상북도 구미에서 상경한 이방인입니다. 서울은 특별시라서 그런가요. 밥 먹는 속도부터 걸음걸이까지 달랐습니다. 과도한 인구 밀집 때문일까요. 항상 사람에 치여 인상 찌푸리기 일쑤인 것 같습니다. 당장 옆을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이 스쳐 가네요.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하는 이들은 많지만 우린 사랑으로 이어져 있을까요. 최근 들어 ‘사랑’이라는 가치는 단순히 연인 사이에만 해당하는 개념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이미지로 만들어진 이성을 사랑하려 했을 뿐. 항상 멀리서 사랑할 대상을 찾았어요. 성별과 상관없이 주위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마음속 미움과 증오의 감정이 끓어오를 때, 그것을 억누르지 못할 때가 잦았습니다. 어떻게든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살았습니다. 도태된다고 느낄 때마다 자책해가며 상대를 제압하려 했습니다. 조롱하고 비아냥댔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보이는 것들이 달라졌어요. 산을 오르면 높이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듯. 이대로 경쟁 속에서만 살아가다간 우리 가족까지 집어삼킬 뻔했습니다. 어느새 부모님을 미워하고 있었거든요. 거울로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전환의 계기가 됐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듯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부족한 요소에 대해 부모를 증오하잖아요. 발버둥 쳐서라도 바꿔보겠다는 생각으로 공동체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봉사란 어떤 의미인가요? 수여하다. 즉, 주는 것만이 아니라 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지 8년이 지났네요. 처음으로 접했던 고등학생 시절, ‘사랑고리 공동체’를 만났습니다. ‘타임달러’ 서로에게 봉사한 시간을 화폐로 계산하는 시스템을 가진 공동체였습니다. 시간당 봉사로 얻은 타임달러를 서로 기부했어요. 그렇게 받은 타임달러를 가지고 미용실, 채소 가게, 헌책, 헌 옷, 따뜻한 한 끼 대접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수혜자 어르신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습니다. 노인 문제라는 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더군요. 300명에 달하는 어르신에게 도시락을 배달했습니다. 처음엔 어르신을 대할 줄 몰랐어요. 그저 컴퓨터와 휴대폰 속에 살아가는 청소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성격상 이미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법. 길 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칫 돌아보니 어느새 어울려있더군요. 함께 한다는 건 생존의 욕구를 뿜어내게 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했습니다. 곳곳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분들을 만났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이 작은 손가락을 움직여 연주하는 오카리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사계절 할 것 없이 꽃이 활짝 피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얼굴엔 웃음이 만개했습니다. 홀로 누워있는 장애인 여성이 전화로 지역 어르신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얼굴이나 손만 움직일 수 있는 여성이 어르신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식사하셨는지, 염색할 때가 되진 않았는지. 남부럽지 않은 자녀와 같았습니다. 대못을 가슴에 박듯 아파왔어요. 저는 기름보일러도 없는 허름한 초가집에 장작 하나조차 제대로 땔 줄 몰랐어요. 마른 장작을 쉽게 찾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처럼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로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소외된 사람을 위해 소리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또한, 저는 ‘사랑고리공동체’내에서 ‘푸른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설립했습니다. 특히, 청소년인 내가 청년이 돼서 당시 가졌던 고민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 어디서도 풀어낼 수 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캠프, 강연, 여행, 극단… 어느덧, 400~500명. 올해 큰 행사는 2월 23일 학교 내 극단 아이들이 공연하게 됐습니다. ‘위안부’를 주제로 뮤지컬 ‘운석’이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정기공연을 시작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았고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우의 꿈을 포기했던 아이들. 거절당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비밀리에 모여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지만, 십시일반 500만 원이라는 돈이 모였습니다. 조명, 음향 전문가들이 봉사해주겠다고 찾아오셨어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청소년을 믿어주리라 생각지 못했지만, 그 반대였습니다. ‘앞으로 위기가 찾아온다면 어떻게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우린 서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쉼터가 생겼습니다.

공동체를 통해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매번 공동체는 불가능한 것인지, 왜 이 일을 하는지 되묻곤 합니다. 전 가방끈이 긴 것도 아닐뿐더러 상처 많은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따뜻한 밥을 대접한다거나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 장점은 무엇일까. 사랑은 그 자체를 바라볼 줄 알고 인정하는 것.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장 악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왜 그런 행위를 했을까.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그 사람의 역사를 생각했어요. 현대 사회는 ‘코끼리의 코만 만지고 코끼리를 안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코끼리가 되었는지 과정은 무시한 채 사건의 결과만 판단하고 모두 돌을 들고 죽이려고 하잖아요. 현실과 이상. 선택과 방향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살아왔습니다만, 공동체 덕분에 현실을 알아가고 이상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가 공존한다면 조금 느리지만 묵묵하게 걸어가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전 오늘도 공동체를 생각하고 행동하려 합니다


서울특별시 김성식 
dlfemdaos@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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