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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탄자니아 촬영기(1) 아이들에게 희망을

2020년 6월호(12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8. 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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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탄자니아 촬영기(1)
아이들에게 희망을

 

 

출발 그리고 도착  ―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선한 일이지만 그 대상이 먼 타국의 사람들이라면 더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월드비전이 후원하는 아이들을 촬영하기 위해 지난 겨울 아프리카 행 비행기에 올랐다. 탄자니아는 몇 차례 다녀왔지만 가는 길은 늘 멀고 험하다. 최근 방문은 작년에 이루어졌다. 이코노미석의 빡빡한 공간에서 밤 비행에 시달리며 10시간 넘게 날아 중동에 도착했지만, 대기를 거쳐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또 다시 몇 시간을 하늘에서 보내고 나서야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했다. 안도와 피로가 교차하는 순간 동북부에 위치한 카라투까지는 차로 꼬박 하룻길이란 것을 인지한다. 바로 목적지를 향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새벽에 이동하기로 한다. 호텔에 도착해서 샤워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는 순간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 허물어졌다. 심연의 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은 몸뚱이를 포근한 침대의 매트가 감싸 주었다.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칠흑 같은 아프리카의 밤이 깊은 꿈결로 인도해 주었다.    
 
다시 출발  ―
다음 날 새벽, 가도 가도 지평선인 초록의 대지와 뭉게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도심에 찌든 나를 황홀함으로 이끈다. 촬영 본능이 발동하여 광활한 자연을 향해 연방 셔터를 눌러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다. 카메라를 통해서 담아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의 두 눈과 호흡으로 그냥 느끼고 기억할 뿐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촬영할 대상 가정이 대략 추려져 있지만 그중에서 방송에 적합한 가정을 정해야 했다. 각 가정을 방문해서 환경을 살피고 인터뷰를 나누었는데, 하나같이 안타깝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한 가정만을 정해서 영상에 담아내야 하니 탈락시켜야 하는 가정이 눈에 밟혀서 마음이 무거웠다. ‘누구의 가난과 불우함을 선택해서 구제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마음의 냉철함을 유지하고자 했다. 한 가정이 그 대표성을 띄고 TV에 나오는 것이고, 나머지 가정에도 그 도움의 온정이 흘러가도록 영상물을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마치고 스텝들과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프리카의 난민캠프와 피그미의 토굴에 이르는 기가 막힌 가난을 많이 보아왔던 터라 웬만한 빈곤이 가슴 아프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발 2000미터의 높이에 얼기설기 나무를 엮어 흙으로 벽을 발라놓은 나지막한 집들을 보면 말문이 턱 막혀 버린다. 지금이 원시시대도 아닌데 마른풀에 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만들고 매운 눈을 닦아 가며 입으로 불씨를 불며 살려내는 모습엔 가슴이 메인다. 그렇게 피어난 매캐한 연기가 집에 그득 차서 송송 뚫린 벽 틈이 외부와의 공기를 순환시켜 줄 뿐이다. 그 벽 틈이 신선한 공기를 주입해 주지만 밤이면 바로 차가운 공기로 가족들을 추위에 떨게 만드는 구멍이 된다. 
        
어구스티노와의 만남  ―
5남매 중 맏이인 15세 어구스티노가 동생 둘을 데리고 물을 길러 가는 곳은 10여 리 넘게 떨어져 있다. 폐타이어를 재활용해서 만든 허름한 샌들일망정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황량한 광야와 같이 마른 길을 걸어 정글 숲을 지나니 너른 사막과 같은 모랫길을 만났다. 언젠가 경비행기를 타고 케냐의 상공을 낮게 날며 보았던 말라 버린 강줄기의 흔적이었다. 물이 마르자 인위적으로 강바닥을 파서 만들어 놓은 웅덩이가 보였다. 맑은 옹달샘을 기대했던 나의 희망은 이내 허물어졌다. 보기에도 누렇고 탁한 오염된 웅덩이였다. 이것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이 솟구치는 순간 어구스티노와 동생들은 서슴없이 물을 휘저어 통에 담기 시작했다. 주변 물가의 모래 위에는 소와 염소의 배설물로 뒤범벅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갈증을 채워야 하니 이곳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멀리서 온 김에 온몸의 찌꺼기를 배설해서 최대한 많은 물을 섭취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아프리카에서도 산속이나 땅속 깊이 파낸 웅덩이에서 물을 어렵게 구하는 것은 보았지만, 이번 풍경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한 시간을 걸어서 얻는 물이, 강바닥을 파서 모아 두었다는 물이, 한눈에 봐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누런 똥물이라니… 그냥 말문이 막혔다. 자신들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조심하고, 휘청거리며 머리에 이고 걷는 아이들. 그들도 이 물을 바로 먹을 수 없어서 거르고 끓여서 사용하고 되도록 설거지와 빨랫물로 활용한다지만 말문이 막히는 아픔이 몰려 왔다.
오늘 촬영을 마치면 우리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 깨끗한 온수로 샤워를 할 것이며 안전한 생수로 실컷 목을 축일 것이다. 시간이 된다면 호텔 내의 야외 풀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어구스티노의 또 다른 목마름  ―
어구스티노는 초등학교 7년을 마치고 지금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두 동생의 초등학교 등굣길에 어구스티노도 함께 집을 나섰다. 동생들을 교실에 보내고 한 동안 시선을 고정해서 수업 중인 동생들과 선생님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교실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다. 교과서 구입이 버거운 아이들은 책을 가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서넛이서 함께 책을 본다. 탄자니아 국기 모양의 교복을 마련한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이 뒤섞여 있다. 집에서는 거렁뱅이 복장이라도 교복을 입으면 그래도 봐줄 만한 아이들인데 예전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새로 바뀐 교복을 여전히 사 입지 못한 아이들이 섞여 있다. 이 학교는 도심의 학교가 아니어서 가난하다. 학부모들이 급식비를 낼 여유가 없어 학교에서는 점심을 제공하지 못한다. 저학년은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별 문제가 안 된다 하더라도 고학년은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 가까우면 모를까 몇 키로를 걸어온 아이들이 집에 가면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곤 한다. 집에 점심 먹거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침도 끼니를 거르고 간 아이들이 겨우 집에 와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힘이 없는 것이다. 물도 기르러 다니고, 장작도 구해 와야 하고, 해야 할 일도 많으니 중학 시험에 통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7월호에 2편이 연재됩니다.

 

 

기획자 프로듀서 이준구

brunch.co.kr/@ejungu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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