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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다리(Ghost Bridge), 서울의 가치를 두 배로

2020년 10월호(13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1. 2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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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1]

도깨비다리(Ghost Bridge), 
서울의 가치를 두 배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습니다. 다리 이름은 올림픽을 기념한다는 취지에서 ‘올림픽대교’라고 했지요. 88서울올림픽은 올해로 벌써 32년이 지났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우리에게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사랑으로 남으리 ~ 오우 오우’란 노래 가사로 남아 있지만 세계 사람들의 기억 속엔 오래전에 잊혀졌지요.

올림픽은 전 세계인이 모여 겨루는 운동경기입니다. 그 근본 취지는 인종, 종교, 사상, 이념이 다른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올림픽을 기념하는 다리나 홍보물도 올림픽을 직접 내세우기보다는 소통을 통한 감동을 주어야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대교’란 다리의 이름은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하면 ‘가우디’ 등이 떠오르겠지만 우리나라엔 ‘비형(鼻荊)’이란 건축가가 있었습니다. 비형의 아버지는 신라 진지왕이지요. 진지왕은 복숭아꽃처럼 아름다운 ‘도화녀(桃花女)’를 궁중에 불러들여 차지하려고 하였어요. 하지만 도화녀는 남편이 있다고 거절했습니다. “남편이 없다면 괜찮은가?”라고 묻자 도화녀는 “그렇습니다”라고 했지요. 모두들 진지왕이 남편을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진지왕은 남편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뜻밖이지요. 하지만 야속하게 왕이 먼저 죽었고 몇 년 뒤 도화녀의 남편도 죽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지왕이 다시 도화녀를 찾아왔어요. 귀신이 되어 돌아온 진지왕은 예전에 약속한 대로 도화녀와 사랑을 나누었지요. 귀신과 인간이 만나 사랑을 나누었고 둘 사이엔 ‘비형’이란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정식 기록에는 진지왕이 왕위에서 쫓겨났고 성골의 지위도 박탈당했다고 합니다. 왕의 신분으로 여염집 여인과 사랑을 나눈 죄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지요.

아버지가 왕이면서 귀신이고, 신라 제일의 미인을 어머니로 둔 비형은 재주가 남달랐습니다. 특히 건축에 뛰어났고 그 중에서도 다리를 만드는 솜씨는 말 그대로 귀신같았지요. 그래서 그가 만든 다리를 ‘귀신다리, 귀교(鬼橋)’라고 하였습니다. 비형은 왜 다리를 만드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였을까요?
다리는 연결할 수 없는 두 곳을 연결시켜 줍니다. 비형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이어주고 싶었던 거지요. 고귀한 신분인 왕과 평범한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귀신과 인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연결해 주고 싶었던 겁니다. 올림픽도 그렇습니다. 연결할 수 없는 나라, 연결할 수 없는 사람을 스포츠로 연결해 주는 게 바로 올림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을 기념하는 다리 이름으로 귀교, 즉 고스트 브리지(Ghost Bridge)가 제격이지요.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나 관광객은 한국 사람을 붙잡고 물어볼 겁니다. “Why? Ghost Bridge? (귀신이 나와서 그런가요?)”

그때 우리는 그들에게 천 년 전 신라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면 됩니다. 인간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귀신이 되어 이룬 신라왕과 도화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둘 사이에서 비형이 태어났고 그가 만든 다리가 Ghost Bridge라고.
만약 그랬다면 서울올림픽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전 세계인이 그때 걸었던 Ghost Bridge를 다시 걷고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사는 그 누구라도 헤어진 사랑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 사랑을 다시 되찾고 싶고, 사랑을 언젠가는 꼭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사랑하고 있어서죠. 바로 서울 Ghost Bridge에서 말입니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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