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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사랑을 꽃피웠습니다!

2023년 2월호(16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8. 1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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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사랑을 꽃피웠습니다!

 

 첫 만남의 그날 따스했던 가을 햇살과 향긋했던 바람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첫 순간을 추억할 때마다 영화 속 한 장면같이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개구진 미소와 조잘거림이 떠오르며 아릿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1999년 추석을 얼마 앞둔 가을이었습니다. 그 날 그 장면에 등장하는 서너 살 무렵의 꼬맹이들은 이제 서른을 앞두고 있고, 그곳에서 지낼 마지막 겨울을 앞두고 있던 큰 형과 누나들은 어느 덧 마흔을 훌쩍 넘겨 장년이 되어 한 가정을 이루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하며 같이 늙어가고 있는 2023년 1월이 되었습니다. 그 날 짧은 첫 만남 이후, 저는 그냥 아무런 맥락도 의심도 없이 한 순간 인생 최대의 결정을 내려버린 채 신원리 산53번지 이 곳에서 알록달록한 사연과 아픔을 지닌 아이들을 품고 있습니다. 바로 그날 만났던 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요하겠다 싶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아버님의 친구였던 신망원을 운영하는 분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어 지금까지 엄마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는 밝았지만 해결되지 못한 여러 난제들을 품고 넘어온 탓에 그 어느 해보다 막막하고 의기소침한 ‘나’를 극복하기 위해 두 돌을 앞둔 막둥이들과 이제 막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딜 스무 살의 청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습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미소를 가진 아이도 있고, 장난기와 호기심 넘치는 눈빛을 지닌 아이도 있고, 늘상 큰 목소리로 떠들어대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이도 있고, 새초롬한 표정으로 밀당을 하는 아이도 있고, 뭔가 못마땅해 잔뜩 찌푸린 아이도 있고, 악기를 잘 다루는 아이도 있고, 레고나 퍼즐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자기만을 바라봐 달라며 보채는 아이도 있고, 축구를 좋아해 학교 갈 때도 축구복만 입고 가려는 아이도 있고, 입이 짧아 잘 먹지 않으니 맘이 쓰이는 아이도 있고, 예쁜 그림을 그리고 정성껏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는 아이도 있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유독 좋아해 주목받는 아이도 있고, 사춘기라 뭘 물어보거나 방문 여는 것조차 눈치 보이게 하는 아이도 있고… 이렇게 아이들 저마다의 색과 톤이 있는데 여건상 여럿을 함께 돌보다 보니, 보다 세심하게 알아봐 주고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하루하루 몸도 마음도 성장하고, 저마다 바라는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가운데 보여주는 가능성과 희망이 저희 어른들을 다잡아 주는 에너지가 되기도 합니다. 살다 보니 아이들만 우리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과의 신뢰와 소통에 의지하며 버텨간다는 것이 상호 간의 라포(rapport)이자 치유라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늘 사랑이 고픈 아이들도,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 무던히 애쓰는 어른들도 언젠가 때가 되면 신망원이라는 둥지를 떠나겠지만 함께하는 동안 매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해봅니다.



사소한 눈빛과 말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심까지도
아이들은 다 느끼고 기억하고 체화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

경기도 양평 신망원 박명희원장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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