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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4000km 유럽 출장기(3)

2023년 2월호(16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8. 1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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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4000km 유럽 출장기(3)

 

 

스위스가 유럽(EU)이 아니라고?
 빌링앤 슈베닝엔은 두 도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하나의 지역이었습니다. 숙소로 묵었던 곳은 옛 성채가 그대로 있어 옛 도시의 느낌이 살아있는 지역이었죠. 아무래도 이탈리아와 가까운 독일남부라 그런지 로마 카톨릭 성당이 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골이 자동차 부품으로 유명한 동네라고 합니다. 업체명만 말하면 모두가 아는 그런 업체들의 지사가 있고요. 그래서 연간 몇 번씩 자동차 엔진 부품, 전장 부품 등에 관한 전시회가 열리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저희 독일 엔지니어가 자동차 분야 일도 겸하고 있다 보니 이런 시골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죠.
 
 시내를 둘러볼 시간도 없이 바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가기 위해 독일 엔지니어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거의 650km 정도를 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의 사무실 쪽으로 달리다 보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산지로 들어가는데 마치 한국의 강원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이어서 이질적이지 않았죠. 오늘은 며칠 동안 고생한 사장님과 저를 대신해 독일 엔지니어가 우선 베네치아까지 운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뒷좌석에서 편안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달려 스위스 국경지역으로 들어갔는데 유럽에 와서 국경이라는 것은 처음 겪어 보았습니다. 유럽전체가 몇 백 년간 치고 박고 싸우던 독일과도 국경이 없는 가운데 살고 있는데, 유럽 한가운데 자리 잡은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인 스위스에 국경이라니… 하지만 스위스는 EU에 속한 나라가 아니고 영세중립국이기에 국경검문소가 따로 있더군요. 물론 국경검문소 또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죠. 보통 다른 나라를 가려면 우리는 비행기로 가기 때문에 공항이 곧 국경검문소가 되고 출입국 관리소가 됩니다. 하지만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은 이런 검문소가 있었습니다. 국경 통과 시 간혹 본보기로 여권과 짐 검사를 한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저희는 검사를 당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마침 우리 독일 엔지니어가 운전을 하고 있어, 커다란 덩치의 독일인을 그냥 통과시켜준 느낌이었습니다. 동양인인 저나 사장님이 운전을 했다면 본보기로 걸릴 확률이 높았을 수도 있었겠죠. 이 독일-스위스 국경 검문소는 산악지역에 있습니다. 높은 산과 좁은 길로 이뤄져 있지요. 그리고 반대 차선은 스위스 쪽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곳인데,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하고 수 킬로미터의 정체 행렬이 보였습니다. 독일 엔지니어가 하는 말이 올 때는 이곳으로 오면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돌아올 때가 걱정이 되긴 하였지만 막상 돌아오는 날에는 저는 잠에 취해서 막혔는지 국경을 통과했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스위스 루체른 마라톤 경기


 아! 그리고 차량으로 스위스로 들어갈 때는 책임보험 같은 것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스티커 같은 것을 구매해서 차량 유리에 부착을 해야 스위스에서 운전이 가능했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차량등록을 하고, 사고 시 해당국에 맞는 보험을 가입해야 운행이 가능한 것이죠. 그런데 이 스티커가 주유소나 휴게소에서 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공서나 아니면 고속도로 인포메이션 같은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국경을 통과하며 휴게소나 주유소가 나오면 스티커를 산다는 것을 계속해서, 몇 번이고 그냥 통과 해버렸습니다. 잘못하면 우리의 고속도로 과속 단속 같은 카메라에 걸려 벌금을 낼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밀린 업무 이야기와 기술적 토론, 그리고 이탈리아 업체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대화하다 보니 그만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취리히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고속도로로 그냥 통과해서 지나쳐야 하는 곳인데 유럽 출장 내내 그 말썽 많은 그 네비게이션 때문에 시내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주유소를 만나 취리히까지 와서야 그 스티커를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독일 엔지니어는 덩치가 산만한 거구인데 스위스 주유소에서 스티커와 함께 스위스 초콜릿을 잔뜩 사왔습니다. 재밌기도 하면서 귀엽기도 하더라고요. 스위스에 오면 꼭 이 초콜릿을 먹어야 한다나요? 아무튼 이제 운전을 바꿔서 사장님이 하게 되었는데, 또 말썽인 네비로 인해 빙글빙글 취리히를 돌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차 창밖으로 취리히를 관광하게 되었죠.

 저희는 4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서쪽으로 달렸습니다. 남쪽 이탈리아로 가는 2번 고속도로를 타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점심시간이 되었고 눈앞에 나타난 도시가 바로 루체른이었습니다. 루체른은 스위스의 중심부에 있으며 인구 8만의 작은 도시였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주차를 하고 번화가로 나오니 마침 시내 중심부에서 루체른 호수 주변을 달리는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허리를 다친 후 마라톤을 못하고 있는데 이런 아름다운 루체른 호수의 풍광에서 마라톤을 하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마라톤 경기를 하면 농악대가 나와 신명나게 꽹과리와 장구를 울리며 응원을 해주었을 텐데, 이곳 스위스에서는 긴 파이프의 알파인 호른을 연주하며 응원을 해주더군요. 멋진 연주에 감사하는 시간이었죠.
 점심 식사는 호수앞에‘로시니’라는 이탈리안 피자집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작곡가인 안토니오 로시니 이름을 딴 식당이었습니다. 식당안에는 로시니의 초상화부터 여러 음악적 장식들이 있었습니다. 작곡가 로시니 하면 유명한 곡으로 빌헬름텔(독) 서곡이 있죠. 영어식으로 하면 윌리엄 텔이 되겠죠. 신나는 이 곡은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곡일 겁니다. 이 곡이 특이하게 로시니가 프랑스에 있을 때 작곡되어, 원제목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기욤텔 됩니다. 그리고 또 로시니의 유명한 곡으로는 세비야의 이발사가 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니, 영화 레옹의 게리올드만처럼 생긴 이탈리안 사장님이 안내를 했습니다. 멋진 이탈리아 사람이라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이 때 이후 저희는 이탈리아와 인연이 되려는지, 삼시세끼를 계속해서 이태리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어야만 했습니다.

알파인 호른을 불며 마라톤 응원


멋진 알프스 산길을 넘을 줄 알았는데… 
 스위스의 2번 고속도로를 타고 이탈리아 밀라노쪽으로 달렸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한 가지 로망이 있다면 이 알프스 산맥을 자전거로 넘어보는 것이고, 스위스의 골짜기, 골짜기 사이를 자전거로 달려보는 것이죠. 그래서 저도 내심 자전거는 아니지만 자동차로 그런 멋진 알프스 산길을 넘을 줄 알았는데… 그냥 산과 산 사이의 평야길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멋진 곳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막상 찍을 여유는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거대한 장관의 알프스 산맥도 잘 볼 수 없었고 말이죠. 특이한 것은 골짜기, 골짜기의 평지가 있는데 이곳에 작은 공항이 많았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환자를 수송하거나 급한 일을 보기 위해서는 공항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옛날에는 도로가 덜 발달하여 그렇기도 했을 것입니다. 물론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겠죠? 그러다 보니 살짝, 살짝 지나는 알프스의 멋진 광경을 드론으로 촬영하고 싶었으나 공항이 있는 관계로 드론 비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이탈리아 업체와 좋은 관계가 된다면, 다시 방문?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포기를 했습니다.
 스위스 남부의 루가노를 지나며 멋진 호수와 절경이 있어 이쯤에서 휴식하며 알프스와 호수를 보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네비가 직진을 시키는 바람에 스위스 알프스 사진하고는 인연이 없게 되었습니다. 루가노에서 조금 더 달리면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 도시인 코모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이탈리아입니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패션의 도시 밀라노가 자리 잡고 있죠. 물론 저희는 들르지는 않습니다. 갈 길이 멀기에 그냥 고속도로로 지나가는 거죠. 여행이 아닌, 출장이잖습니까?ㅜㅜ 이탈리아에 들어오니 약간 한국과 비슷한 휴게소들이 있었습니다. 반도국가라 성향이 비슷한 걸까요? 꽤 규모가 있는 휴게소에 식당과 편의점, 화장실까지 편안하게 완비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화장실에서 돈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팁 수준의 동전이었지 독일이나 네덜란드처럼 기계로 사람을 가로막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팁을 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갈 길이 멀기에 피자로 대충 때우게 되었죠. 마땅히 먹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한쪽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더니, 떼 창을 하고 있었습니다. 휴게소 밖에는 커다란 버스가 몇 대 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신들의 축구팀 응원가였나 봅니다. 한껏 흥을 돋아 힘차게 부르는데 계속 반복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휴게소가 떠나가라 응원가를 부르는데, 부르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동조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휴게소의 위치를 확인해보니 예전에 우리나라 이승우 선수가 뛰었던 베로나 지역 근처였습니다. 
 한참을 달려 밤중에 도착한 숙소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베네치아 섬 북쪽의 마르게라라는 지역입니다. 방문하기로 한 이탈리아 업체가 추천한 숙박업소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이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군요. 물론 숙소 컨디션은 좀 좋지 않았지만, 베네치아를 단체 관광하는 사람들을 맞는 그런 곳이던 것 같았습니다.


돌고 돌아 이탈리아에 도착했지만, 너무나도 짧은 일정
 다음 날 아침, 네비가 또 속을 썩이는 바람에 돌고 돌아 이탈리아 업체를 방문했습니다. 회의내용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너무 먼 거리를 돌고 돌아 달려왔는데 막상 회의는 2~3시간에 끝나버렸죠,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었고, 시간이 되면 베네치아에 들려 점심을 먹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네치아로 향했지만 도보 또는 대중교통만 가능했고 차량이 섬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는 구조에다, 길까지 잘못 들어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야 했습니다. 단순하게 그냥 둘러볼 정도의 지역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사전 정보를 검색했던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아쉬움을 달래며 베네치아! 베네치아! 하는데 독일 엔지니어는 독일식 발음으로 베네틱트라고 하네요. 영어로 하면 베니스죠. 게다가 벌써 오후 1시가 넘어가는데 밤까지 다시 650km를 달려 빌링엔-슈베닝엔에 가야하고 아침에 전략회의를 마치고 다시 프랑크푸르트까지(300km) 가야하는 빡빡한 일정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현지의 골목식당에서 현지인들이 점심으로 먹는 진짜 스파게티도 맛보았습니다. 뭐~ 스파게티가 어딘들 다 비슷한 맛이겠지만요. 아무튼 스파게티와 이탈리아 커피를 맛본 후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운전은 제가 했는데, 어제 하루 종일 걸려 베네치아까지 오는 바람에 여독이 쌓인 두 사람은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이탈리아 북부 E70번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려 260여 km를 한 번에 주파하여 밀라노까지 갔습니다. 이때가 거의 오후 5시 정도 되었는데 이 때부터는 말 그대로 밤길과 산길 그리고 네비와의 사투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저녁을 먹기 위해 들렀던 스위스 휴게소는 마치 2010년대 서울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느꼈던 고급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가격도 엄청 비쌌죠. 
 
 이로서 4000km 출장의 대장정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만났던 업체들과는 지금도 좋은 거래와 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유럽에 교두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론 4000km의 일등공신은 바로 유럽형 네비게이션이었습니다. 한국 기술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너무나 엉뚱하게 알려줘서요. 한국은 너무 정확해 문제일 정도인데 말이죠. 무엇보다 한국 땅과 한국식 사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자동차 출장 여행의 경험은, 좁아터진 사고의 답답함에서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린휠 최승호
ceo@greenwheel.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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