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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업에 이렇게 실패 했다

농업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 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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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실패스토리]

나는 농업에 이렇게 실패 했다


  부산에 사는 김모(34)씨는 “친환경 마크를 믿고 계란을 사 먹었는데 다 속은 것 아니냐”며, “국민 세금으로 직불금 받고, 소비자에게 부당하게 바가지까지 씌웠다니 정말 양심 불량인 사람들”이라고 한탄했다.


 지난 8월 모 일간신문을 뜨겁게 달궜던 기사입니다. 더욱이 살충제를 쓸 수 없게 되어있는 ‘친환경 산란계 농장’이 살충제 검출 사례의 90%를 차지하면서 친환경에 대한 불신이 심화된 계기가 되었죠. 친환경 농장주들은 ‘살충제를 쓰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어 농식품부에서도 흙이나 농장의 주변 논 등에서 살충제 성분이 유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한 친환경 농장 주인들이 “산란계를 방목으로 키워오고 있었는데, 땅이 오염된 것을 알게 되어 계속 농장을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소연할 때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무안에서의 무농약 농사를 해왔던 부끄럽고 낯 뜨거웠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관행 농법과의 싸움

  전남 무안에서 무농약 양파농사를 2년 동안 지었으나 지속하지 못하고 접었습니다. 농과대학 낙농과를 졸업한 한참 후에야, 농업의 길을 선택하고 후배의 친정인 무안에서 밭 1300평을 임대하여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무안의 운남면은 양파의 주산지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곳입니다. 넓은 밭에 양파들이 심어져 있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죠. 그렇지만 관행적(농약 사용하는) 농업방식이 깊이 배어 있는 이곳에 무농약으로 양파를 해보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것도 초보이면서 말이죠.


  2013년 봄은 유난히 안개가 많이 끼었지요. 기온이 습해지면서 ‘노균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농사 초보인 저는 ‘팔랑귀’가 되어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렇게 해야 할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렇게 해야 할 것 같아 결정내리는 것이 여간 고민스럽지 않았습니다. 친환경 농자재상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노균병 치료약을 대주겠다며 써보길 권유했죠. 저보다 농사의 경험도 많으리라 생각하니 ‘한 번 써 볼까?’하는 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되어 잠도 자지 않고 약을 만지던 중 약이 손에 묻었는데 손바닥이 하얗게 변하는 것이었어요. 깜짝 놀라 다음 날, 농자재상을 찾아가 약을 되돌려주고 돌아왔습니다. 소독을 해야 한다면 바닷물을 가져와 양파 밭에 뿌려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 목초액과 EM을 최대한 희석하여 힘겹게 퍼온 바닷물과 함께 뿌려 주었습니다.


 관건은 병들지 않은 양파는 잘 자라게 하고 병든 양파는 최대한 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방제하는 것이었죠. 다행히 병이 더 확산되지 않아 그 해 양파를 수확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양파 재배법이나 병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여 허둥대기도 했고, 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작물과 밭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친환경 약제만으로는 친환경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과 함께 땅심을 키우기 위해 직접 퇴비를 만들고 녹비작물로 충분히 땅을 회복시키는 친환경농법이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으름 때문에 피눈물 흘리다

  무농약으로 작물을 키워보려는 초보 농사꾼의 위기는 여기서 멈추질 않았죠. 후배 부모님은 오랫동안 관행농법으로 양파를 재배하고 계셨는데 이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언덕배기 700평 밭도 이 분들에게서 임대해서 양파를 수확한 후 메주콩을 600평에 심고 이미 100평에 고추를 심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밭둑가 빈터에라도 작물을 심으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어머님이 밭둑에 팥을 심으신 거였어요. 어르신들은 한 뼘의 땅이라도 공간이 있으면 그냥 내버려두시는 법이 없었죠. 

  그런데 밭둑의 풀을 뽑아주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콩 밭을 살피러 언덕 밭에 올라가 보니, 콩 밭 주변의 밭둑에 있는 풀들이 누렇게 변해 죽어있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부모님이 여기에...’하는 마음에 아버님 집으로 단숨에 달려갔죠.  아!뿔!싸!  


  “팥이 풀들 때문에 안자란다고 엄마가 제초제 뿌려 달라고 해서 내가 뿌렸다~” 


  아버님의 말씀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서운함에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죠.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좌충우돌 하며 밤낮으로 고민하고 지었던 밭이었는데 바로 그 밭둑에 제초제를 뿌리셨던 겁니다. 이때 농사가 힘들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죠. 몸도 힘들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부딪히면 마음이 힘들다는 것을 말이죠.


  무농약으로 농사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밭둑에 뿌린 것이 작물과 땅에 크게 영향을 줄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정성스럽게 메주콩과 고추를 심은 것인데 이것을 갈아엎을 것인가?’하는 수많은 생각이 오고갔습니다. 그러나 밭을 갈아엎기로 결정하고 난 후, 한동안 무안으로 가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풀이 자라도록 방치한 나의 게으름으로 생긴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이기심으로 땅과 동료를 잃다

  지금도 농촌에 가면 부부가 농업을 같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안에서 저와 저의 친구인 두 여자가 농업을 한다고 했을 때 모두 의아해했습니다. ‘남편들은 왜 같이 안하느냐, 여자 둘이 하기에는 힘든 일이다’라면서 모두 반신반의 했죠. 제 친구는 저와 무안에서 농업을 같이 하기 전에 괴산에서 농사를 1년간 해 왔던 1년 후배입니다. 농촌에서 자라 눈썰미도 있고 농촌이 어떤 곳인지를 아는 동료였죠. 우리는 무안에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점차로 친환경 유기농업을 하는 마을을 만들고 새로운 농촌문화를 세우는 꿈을 꾸면서 시작하였지요. 그러나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은 견딜 수 있었지만, 점차로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을 먼저 내세우는 이기심이 튀어 나왔고, 동료를 판단하면서 상처를 주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감정이 쌓이면서 여자들의 좁은 마음으로 다투기도 많이 했죠. 결국 저희는 여러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농사를 접게 되었습니다. 잡초를 못 잡아서도 아니고 집이 없어서도 아니라 나의 이기심이 동료를 잃어버리고 농지를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쓰디 쓴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농업은 이렇게 실패하였죠. 


  지금 돌이켜보면, 농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잃어버린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저가 바로 어리석은 사람의 하나이겠지요.


땅을 살리는 농업에 다시 도전하다

  무안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내가 농업하기에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포기할까를 많이 고민하였죠. 어려운 상황이 오면 그것에 직면하기보다 피하고 돌파하려는 자세가 없었던 저였으니까요. 이런 제가 새로운 마음을 먹고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완주하면서 인내를 배우는 계기를 삼았습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가다보면 골인지점이 있는 것처럼 농사에 다시 도전해 보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기적인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환경으로 몰아가면서까지라도 말이죠.



  지금은 ‘서산 친환경농업법인’ 농장을 오가며 농장 일도 도우고 농업을 밑바닥부터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농장의 황 대표님도 처음에는 과수농사를 관행으로 하시다가 농약때문에 본인이 쓰러진 경험을 한 후에 10년 넘도록 ‘친환경농업’을 철저하게 고집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땅을 살리는 길이고 농부 자신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는 소신을 갖고 꿋꿋하게 친환경 유기농업을 하고 계신 거죠. 무엇보다 황 대표님께 인상적으로 배우는 것은 농사가 잘 될 때도 있지만, 안 될 때도 흔들리지 않고 겸손함으로 농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 농장에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 주시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교훈입니다. 


  저는 농부가 되기에 부적합하지만, 땅을 회복하며 사람들이 농촌으로 다시 몰려오는 것을 꿈꾸며 다시 도전하려고 합니다. ‘땅이 오염되어 더 이상 농장을 운영할 수 없다’는 친환경 산란계 농장주의 하소연을 다음의 농업세대들이 하지 않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땅(농지) 갖고 계신 분 연락 주십시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농사에 재도전하는

군포시 나경희

010-6312-7770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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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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