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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표현해내는 건강한 연기자 ‘강성연’!

예술/방송 & 미디어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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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이야기]

삶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표현해내는 건강한 연기자 ‘강성연’!

 

  올해로 9년째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를 발행하며 영화인이자 연기자를 인터뷰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부인, ~엄마가 아닌 독립적인 배우 ‘강성연’을 인터뷰하고자 한다며 먼저 이야기를 꺼내니 작품을 한지 꽤 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쑥스러워 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하자 또록또록한 목소리로 이야기 보따리를 바로 풀어내는 강성연님! 마치 솔직하고 군더더기 없는 ‘천일야화’를 듣는 듯 했습니다.

 


| 연기의 시작

  음악과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성악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고, 마침 제가 가고 싶은 대학에 낙방하면서 중간에 길을 잃었죠. 그때 어머니께서 연기로도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며 서울예대에 시험보라 하시더군요. 그 제안이 생뚱맞고 당황스러웠지만, 눈치도 보이고 너무 죄송해서 원서를 냈는데 운좋게 합격했지요. 하지만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인 제게 항상 복닥거리고 외향적인 예대의 대학생활이 힘들어 휴학을 생각하던 중, 교수님께서 MBC탈렌트 공채시험을 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웬걸, 1차 서류시험에 패스하고, 2차 면접과 3차 카메라 테스트까지 통과하면서, 공채에 거뜬하게 합격했지 뭡니까. 스무 살의 물러서고 싶지 않은 오기와 ‘이 길이 내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어색했지만, 연기에 몰입했습니다. 첫 작품으로는 ‘내가 사는 이유’(노희경 작)를 오디션 통해 출연하게 되었어요. 동기 중에서 큰 행운이었죠. ‘명화’라는 캐릭터로 70년대 술집 작부 역할이었는데, 담당PD분이 딱 제 역할이라고 말하더군요. 윤여정, 나문희 선생님을 만나 연기 수업을 받으며 ‘연기는 이런 것이구나’알게 되었고, 이영애, 손창민 선배와도 호흡을 같이 했지요.
 
| 연기에 푹 빠지다 보면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현실 속의 나’와‘극 중의 나’를 어떻게 구분하나요?
  어느 PD분의 말이 생각납니다. ‘좋은 연기자는 캐릭터와 자아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말이죠.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지요. 6~7개월 장편 드라마를 하다보면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 것이 드라마 식구들입니다. 그 공간에서 그 캐릭터로 사는 것인데 거기에 삶이 깃들지 않겠어요? 이렇게 집중적으로 몰입하다 보면 작품이 끝난 후, 제 자신은 껍질만 남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영혼이 없어진 것처럼 말이죠. 한 10년 정도 그랬습니다. 다른 연기자들도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운동이나 여행, 종교 등으로 해소하거나 조절하고 있죠. 하지만 유독 저는 심하게 고민한 것 같아요.

 

  29세에 첫 슬럼프가 왔는데, 새로운 캐릭터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나만 덩그러니 남은 것 같았어요. 이때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나는 누구지? 좋은 연기자란 뭐지? 뿌리가 없는데 줄기, 가지가 있을 수 있을까?’

 

  연기라는 것이 나를 덮어둔 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저를 돌아보고 극복할 수 있었죠. 나 자신이 먼저 서고나서 연기라는 애인을 만나야 되는 것이지, 나를 잃어버린 채 캐릭터로 덮어씌운 연기는 건강한 연기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지요. 앞만 보고 달려온 제가 서른 살 쯤 깨닫게 되었습니다. 캐릭터 속에 빠져 열연을 하되 또 다시 나를 찾아 나와야 하는 것이죠. 유연하게~ 한 작품이 끝나면, 스텝들과 회식을 하는데 저는 그 자리에서 실컷 울어요. 한바탕 확 터져 주어야 그 캐릭터와 헤어질 수 있고 빠져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서요.
 
| 연기의 생명력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첫째도, 둘째도 ‘진실성’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연기할 때에는 발음, 소리, 발성 등이 중요했지만, 뭔가 짜여진 느낌이었죠. 그러나 요즘 후배들은 실제 본인이 나오는 것처럼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드라마 시청자들이 바라는 것도 솔직함, 진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라고 해서 슬픈 척 우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해서 상황을 진심으로 표현할 때 발음이 꼬이고 얼굴이 못생긴 배우라도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막장 드라마 같은 대사를 할 때는 사실 괴롭습니다. 하지만 대사에 감정을 실어 집중력을 가지고 진실성을 담고자 할 때 대사 자체는 이상해도 제가 연기한 그 장면에서 감동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연기의 생명은 역시 진실성이란 생각이 듭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카이스트’(송진아 작)작품에서 ‘민경진’이란 캐릭터입니다. 외동딸이자 천재 물리학도로 외로운 여대생 역이었어요. 송진아 작가가 주인공으로 저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었죠. 말투나 성격, 스타일 등을 보면 저도 깜짝 깜짝 놀랐는데, 정말 저와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자유로운 영혼의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나 작품을 하는 동안 내내 행복했죠. 무엇보다 제가 20대라야만 소화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고, 인기도 많았던 작품이라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연기할 때 가장 힘든 점은?
  앞서 말했듯이 연속극을 하다 보면 연기자들과 6~7개월씩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요. 그런 공동체 생활이 쉽지 않더군요. 캐릭터 연기가 힘들 때는 저 혼자 음악을 듣거나 시를 보면서 풀면 되는데, 작품의 해석이 서로 다르게 될 때가 참 힘듭니다. 저의 해석만을 관철시킬 수도 없어서, 계속 대화하고 연구하지만 싸울 때도 있어요. 캐릭터를 처음 만나게 해 주는 것은 작가이지만, 거기에 살을 붙이고 근육을 붙이는 것은 저희 배우들의 몫이지요. 그리고 그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깨지고 불협화음이 일어나면, 작품이 잘 되지도 않고 감동도 주지 못하더군요. 
 
|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은?
  사실 캐릭터나 역할이 제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젊었을 때는 ‘나 이런 역할 할꺼야!’하며 튕기고 제가 하고 싶은 역할만 찾았는데, 지금은 복수하거나 독한 역할은 피하고, 40대 결혼한 여자의 삶을 현실감 있고 정감있게 표현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작품은 시청률이 나오지 않기에 잘 만들지 않더군요. 요즘 고민하는 점이예요. 
 
| 앞으로 가야 할 한국영화의 미래
  14년 전, 제가 출연했었던 ‘왕의 남자’가 한국영화의 중요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화는 스타배우가 없고 투자를 많이 받지 않고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았어도, 대본 하나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영화였어요. 부풀려진 높은 배우들의 몸값으로 다른 곳에 투자를 못하는 영화계의 거품이 빠진 계기가 되었고, 무엇보다 숨은 배우들도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폭력 없고, 불륜 없는 영화를 어른이나 아이들 세대가 같이 보는 건강한 영화가 사랑받는 한국 영화시장이면 좋겠습니다. 
 
| 연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얼마 전에도 작품을 같이 했던 후배가 만나고 싶어해서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만났지요. 힘들어하는 후배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네가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 이 순간도 연기를 하려는 너 자신에게 훗날 에너지가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연기생활을 계속할 것이라면 삶의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요. 처절하게 힘들고, 화가 나며, 너무 큰 것을 잃었다 하더라도, 인생으로서는 힘들지만 배우로서는 좋은 연기 재료가 될 것이라고 말이죠.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 드라마인데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
  제가 음악을 좋아해요. 그래서 젊었을 때는 ‘보보’라는 이름으로 정규 음반도 냈었지요. 재즈와 시를 무척 좋아해서, 시와 음악을 사랑하는 시인들과 재즈 뮤지션들이 함께 하는 작은 콘서트도 열었었죠. 지금은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터라, 재즈피아니스트인 남편 연주회도 갈 여유가 없어요. 여유가 생긴다면 싱글 앨범을 내고 음악활동도 하고 싶고, 앞으로 따뜻한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 두 아들을 키우며 이렇게 육아가 힘든 줄 몰랐다면서 이 시대의 워킹 맘과 육아로 몇 십 년 커리어를 쌓아 온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여성분들을 존경한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성심성의껏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는 강성연님의 진심이 느껴져 제가 감동이 되더군요. 음악을 좋아하는 강성연님이 다시 음반도 내고 본인이 원하는 드라마, 영화를 만나게 되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8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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