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 뇌과학 스토리 11]
인간이란 무엇인가?
머리 크기 = 뇌의 크기 = 지능?
제가 어릴 적에는 뒤통수가 심하게 튀어나오거나 두상의 크기가 크면 똑똑할 것이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흔히 하셨습니다. 실제로 1900년대 초 만 해도 두상의 크기가 크면 더 큰 뇌가 담길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똑똑할 것이라는 통계학적 이론이 어느 정도 지배적이었지만, 머지않아 두상은 작지만 천재인 사람들로 인해 이 주장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뇌가 주름이 많다고?
이런 얘기도 들어보셨나요?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도 죽기까지 자기 뇌의 15% 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했고, 보통 인간에 비해 주름이 많다. ’뇌에 있는 주름은 두개골 내의 뇌의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흔히 고등동물일수록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뇌가 주름을 특별히 더 많이 가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15% 뇌사용률의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두개골을 직접 열어보지 않고 현대의 뇌과학 기술인 fMRI(기능성 핵자기공명영상)나 PET(양전자 방출 촬영)를 사용해서 뇌의 활동 영역을 촬영한다 하더라도, 뇌의 활성화 정도를 평생동안 기록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뇌가 활성화되는 부위는 우리가 직면한 과제에 따라 달라집니다. 뇌의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닌 서로 다른 부분이 동시 다발적으로 활성화될 뿐 아니라, 이렇게 활성화되는 것도 시간적으로 불규칙적 연속성으로 진행됩니다. 또한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뇌는 쉬지 않고 활성화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이 ‘활성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눈으로 보이는 외적인 기준인 뇌의 주름이나 사용률 정도는 뇌에 대한 진정한 판단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뉴런의 수가 문화를 창조하다
우리 뇌에는 1.4kg의 무게 속에 약 천억 개의, 모양도 천차만별인 뉴런들이 있습니다. 뇌 속에 포함된 뉴런의 수를 카운트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를 아주 얇은 슬라이스 형태로 자릅니다. 이어서 그 부위 내에 포함된 면적당 뉴런의 수를 계산하고 다시 이를 부피로 환산하여 전체 개수를 추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의 한계는 뇌의 부위와 기관별로 포함된 뉴런의 숫자가 다르며, 또 뉴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주변 세포들을 정확하게 계산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에 뇌과학자 허큘라노 휴젤(Herculano Houzel)은 뇌 속에 있는 뉴런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너무도 간단한 Brain Puree(뇌수프)방법을 고안하였습니다.<기사 바로가기>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은 ‘뉴런의 숫자’이므로, 전통적 접근법을 일단 배제하여 먼저 뇌를 으깨었습니다. 이어서 다른 조직들은 약물로 용해시키고 뉴런의 핵만 남은 수프로 만들어서 그 수를 계산한 거지요. 이렇게 해서 얻은 결과는 놀랍게도 기존 뇌과학 교과서에서 말하던 1,000억 개가 아니라 860억 개 정도가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뉴런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뇌에 포함된 뉴런의 수로 본다면 아프리카 코끼리는 인간의 3배에 가까운 2,570억 개의 뉴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인간만큼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결국 관건이 되는 것은 뇌 전체에 포함된 뉴런이 아니라 ‘대뇌피질에 포함된 뉴런’의 수인데, 이 점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대뇌피질에 인간은 160억, 오랑우탄과 고릴라는 90억, 침팬지는 60억, 코끼리는 56억, 쥐는 2억 개의 뉴런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지요. 그리고 현대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유인원의 뉴런은 총 300억 개로 추정됩니다. 단지 진화론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영장류가 유인원으로 진화하기까지 5천만년이 소요된 반면, 뉴런의 수만 본다면 유인원(300억)에서 현세인류(860억)로 진화하는데 불과 150만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혁명적 진화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몇몇 학자들은 문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뇌는 인간 몸무게의 불과 2%에 해당하지만 하루 에너지의 20%를 소모하는 놀라운 현상을 보입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영양공급이 필요했는데, 불을 사용하여 요리하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가능했다고 설명하곤 하지요. 실제로 인간문화를 접한 앵무새나 돌고래의 뉴런의 수를 확인해보니 인간문화를 접하지 않은 동종의 개체에 비해 많았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뉴런의 수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게 하며, 인간만의 가지고 있는 문화의 발전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나’를 결정하는 것은 뉴런간의 연결
「CONNECTOME」의 저자인 MIT 신경과학자 세바스찬 승(Sebastian Seung)은 동일한 뉴런의 수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뉴런과 뉴런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You are more than your genes. You are your connectome). 같은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조차도 전혀 다른 사고와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나’의 뇌 속에 형성된 뉴런 간의 네트워크가 ‘나’의 기억과 반응과 판단과 행동을 좌우하기 때문에 ‘나’란 존재는 결국 뉴런 연결의 결과물(You are the activity of your neurons)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 뉴런간의 연결의 비밀만 밝혀낸다면 인간에 대한 신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합니다.
< TED - 세바스챤 승 : 나는 나의 코넥텀이다 >
이제는 회복이 필요한 때
이런 뉴런간의 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할지라도 관건이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과학의 발전과는 정반대로 인간과 인간의 뇌는 자신이 개발한 인터넷과 디지털문화에 의해 퇴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IT전문가이자 칼럼리스트인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는 자신의 저서「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인간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스스로를 디지털 기기에 종속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인간이 문자를 읽고 쓰고 또 사고하는 방식을 아주 얇고 천박하게 변화시켰다.” 우리가 무작위로 인터넷을 서핑하며 자료를 조사, 생략, 복사해대는 동안 이런 과정을 관장하는 신경회로는 강화되지만 정반대로 깊이 사고하고, 분석하고, 통찰하는 능력이 감소한다는 것이 문제인 겁니다. 또한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의 사용으로 정보나 의사소통 자체를 단순화 혹은 분절화 함으로써 깊이 생각하는 방법 자체를 잃어버렸습니다. 또 맥락과 상관없는 정보들을 재빨리 주워모아서 사용하다보니, 사고하는 방식은 아주 경박해졌으며 뇌의 구조(뉴런의 연결) 자체도 이에 맞게 물리적으로 변화되는 무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현대인들이 건망증과 집중력 장애를 호소하는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 SBS Seoul Digital Forum - 니콜라스 카 : The Shallows - The Mind in the Net >
그러나 문제는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 자체에 있다기보다 인간이 그것을 얼마나 지혜롭게 주도적으로 조절하면서 사용하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었던 찬란했던 문화들의 핵심은 언제든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온 것 같은데, 이것에 다시 돌아가는 길만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종교적 심성을 가진 존재라는 겁니다. 둘째는 우주와 사물과 사건을 총체적이고 전체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셋째는 거기서 얻은 조망을 깊이 사고하고 서서히 행동으로 옮기면서 새 시대에 새롭고 창조적으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돌아왔습니다.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또 다른 위협, 혹은 도전, 혹은 기회 앞에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능적 영역들을 하나씩 하나씩 월등한 성능으로 정복해 나가며 인간의 노력과 행동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도전들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역사의 교훈을 받아볼까요?
20세기 초에 인간은, 적어도 서구적 인간은 이성에 대한 절대적 확신으로 자신만만했지만 그 결과 스스로가 제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재앙을 초래하였습니다. 그 후 스스로를 돌아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중하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긴 했습니다만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지금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하고 있는 유명한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인 ‘걸어가는 인간’(Walking Man)에서 그 고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풍성하고 영원한 가치를 지닌 영혼이란 것을 담기에는 너무나 빈약하여 금세라도 부서질 것 같은 존재이면서도 무언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는 존재, 즉 삶의 허무가 처절하게 작품 속에 배어있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인간은 과학과 기술 개발에 몰입하면서 엉뚱하게도 질문의 방향을 인간 내부가 아닌 바깥인 과학의 발전으로 돌렸습니다. 그로 인해 눈부신 외적 결과를 이룬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가운데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일 수 있고 또 인간 자체의 종말을 초래할 지도 모르는 인공지능(로봇) 개발에 또 다시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의 현인들처럼 질문의 방향을 인간 자신에게로 돌릴 때입니다. 인간이 그 어떤 외적인 업적을 쌓았더라도 죽을 때까지 인간이 누구이며, 그런 업적을 이룬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 정말 대답하기 힘든 질문 - 앞에 늘 정직하게 서야하는 겁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새 시대에 새로운 혹은 영속적인 가치를 가진 문화를 다시 꽃피울 수 있으며, 인간다움을 회복하여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잊어버릴수록 정반대로 점점 더 동물적 본능만 충실한 가운데 살면서 인간 정체성의 치매로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과 인공지능로봇 사이를 방황하면서 두려움에 벌벌 떠는 존재로 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NYTimes: To Unlock the Brain’s Mysteries, Puree It> 2017.12.14. 뉴욕타임즈
<Connectome> 세바스찬 승(Sebastian Seung)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1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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