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혜 에세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12층에 새로 이사 왔어요! 저를 소개합니다. 힘세고 멋진 아빠랑, 예쁜 엄마와, 착하고 깜찍한 준희, 귀여운 여동생 지민, 저희는 12월 16일 날 이사 왔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206호 사는 준희 올림”
충청도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7살 난 꼬마의 글씨로 쓰여진 알록달록 색칠한 벽보가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글을 본 주민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포스트잇에 손 글씨로 준희 가족의 이사를 반겼다. “반갑다 준희야! 환영한다. 즐거운 성탄 보내렴”, “준희야! 이사 와서 반가워! 앞으로 보면 웃으면서 인사하고 지내자”, “우리 동에 산타할아버지께서 큰 선물을 주셨구나!” 오랜만에 정성 들여 쓴 편지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졌다. 갓 부화한 병아리를 처음 만진 기분이었다. ‘만일 내가 보았다면 준희에게 뭐라고 썼을까? 준희네 현관문에 직접 그린 카드를 붙여 주었을까? 동생과 읽으라고, ‘백희나’의「구름빵」을 선물하면 어떨까?’ 자꾸 준희의 얼굴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아마 아빠 엄마도 멋진 사람일 거야. 예쁘다는 여동생은 얼마나 귀여울까?’ 오랜만에 연말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풍요롭고 사람 사는 냄새를 맡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따스한 인사가 나누고 싶어졌다. 준희는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 엘리베이터에도 “준희네 이사 가요”라면서 이사 갈 집 주소와 그동안 같이 있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벽보를 붙이고 왔다고 한다. 준희 아빠는 “우리 준희가 댓글을 보고 무척 좋아해요. 우리가 따뜻한 동네로 이사 온 것 같아서 행복해요”라는 답장도 잊지 않았다.
신도시 분당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다. 아이를 유치원에 배웅하기 위해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과 멀쑥하게 서 있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다. 인사성이 밝은 아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배꼽 인사를 하며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를 외친다. 엘리베이터 타는 게 멀쑥했던 나에 비해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유치원에 가는 것처럼 씩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내 보았다. 엘리베이터에 매주 ‘이 주일의 詩’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무엇인가를 붙이려면 관리사무소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면서 아들처럼 엘리베이터를 타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내 마음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386 컴퓨터로 워드 작업을 해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남들이 잠든 시간에 몰래 스카치테이프를 챙겨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어떤 시로 시작할 것인가가 숙제였지만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로 출발해 보았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 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처음 시를 붙이고는 짝사랑하던 사내에게 마음을 들킨 처녀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내려갈 일이 없는데도 자꾸 엘리베이터를 타고 괜히 아래층까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냥 떼어버릴까?’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날이면 마치 자작시를 붙인 것처럼 혼자 가슴 졸였다. 어느 날 퇴근해서 들어오던 남편이 내가 붙인 시에 누가 댓글을 썼다고 알려주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남자 글씨체였다. “종일 이 시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따스한 하루를 선물해서 고마워요.” 나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글씨체를 바꾸어 가며 본격적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백에 시에 대한 해설과 나의 감상문까지 써서 붙였다. 가을이면 <당신 곁에서>를 붙였다.
당신 곁에서
국화가 만발한 꽃가게를 지나다가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잎 때문이 아니라
향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신기하게 남자들의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온통 가을을 느낍니다” 등등. 또 날씨가 추워지면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생각하라고 ‘대낮의 풍설은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정처 없다.’로 시작하는 이근배의 <겨울행>을 붙였다. 그러다보니 시보다 내가 더 뜨거워졌다. 그렇게 일 년을 붙이면서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달리는 댓글로 위로를 받으며 시를 향한 사랑은 겨울밤처럼 깊어졌다.
그해 크리스마스 언저리였다. 바로 위층인 9층 아저씨가 시를 잘 읽었다고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눈이 소복하게 내린 날, 우리는 분당 동네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커다란 구상나무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한 ‘벨뷔’카페에 들어섰다. 핀란드에서 온 루돌프가 이끄는 마차를 변형한 예약석으로 안내했다. 9층 아저씨는 화가가 꿈이었다고 한다. 부모의 반대로 미대에 진학을 포기하고 지금은 건설회사 사장으로 근무하며 꿈을 접고 있었는데 내가 붙인 시를 읽고 다시 붓을 잡을 용기를 냈다고 했다.
대단한 것도 아닌 삶이 늘 대단한 것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꾹꾹 누르며 참고 산다. 힘들어도 말로 하지 않고 나만 그런 건 아니니까 하면서 속으로 삭인다. 좋은 일이 생겨도 선뜻 말하지 못한다. 올해는 준희처럼 살면 어떨까?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생각으로 말이다. 우리는 한 해가 가면 한 해만큼 늙어가지만 사실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니까.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1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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