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그리스 고대철학의 두(과학적 vs. 신비적) 전통

2019년 10월호(12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12. 16:20

본문

[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27]

그리스 고대철학의 두(과학적 vs. 신비적) 전통

 

현재 한국의 미디어들의 제작 기준은 중학교 졸업생이지만 ‘행복한 동네문화이야기’는 조금 높여 고등학교 졸업생으로 기준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 문화의 황혼에서과 새 문화의 여명으로]는 더 높여 한국에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졸업생으로 삼았습니다. 이 분들이 조금만 끈질기고 사려깊게 읽어주시고, 또 만나는 분들과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사회에 건강한 여론을 형성하는 주역이 되시기를 바라는 칼럼입니다.


21세기의 현실적인 두 가지 기사를 소개함으로 문화(명)에 대한, 어떤 면에서 딱딱할 수 있는 철학적, 원리적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첫째는 “스웨덴 사람들의 비행기 타는 숫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는 취지의 Bloomberg 통신의 최근(2019-04-14) 도표입니다.  1)   
비행기를 타면 쉽고 빠르고 안락하게 목적지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많으며 따라서 환경에 해가는 행동을 많이 한다는 것을 스웨덴 사람들이 2017년부터 철저히 자각하여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경탄을 자아내는 보고입니다. 

 

둘째는 최근에 번역된 ≪FactFulness≫(사실을 직시하자!)라는 책의 저자가 고안한 ‘물방울 도표’의 내용입니다. 소득수준과 기대수명의 좁은 관점에서 한국이 거의 최선진국의 반열에 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 독일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거의 영국, 프랑스, 이태리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의 시골에서는 비행기 한 번 타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노인들이나 아이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보다는 생활수준에서 조금 앞서 있는 최선진국인 스웨덴의 국민들이 비행기 타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초 응급 상태이거나 가장 중요한 일 외에는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을 작정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을 한국인들은 언제나 할 수 있을까요?


지구 전체가 진정으로 행복한 동네가 되기를 바라는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는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스웨덴 사람들처럼 비행기 (잘)타지 않기 등의 작은 행동을 할 뿐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즉 이런 환경문제의 본질이 바로 문화(명)를 이해하는 서양인들이 주도하는 종교적, 철학적, 윤리적 세계관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는 겁니다. 최근(2019년 9월)에 나온 또 다른 끔찍한 환경 보고서는 일 인당 일 년 간 신용카드 한 장에 해당하는 미세 플라스틱 조각을 음식을 통해 먹는 셈이라고 고발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단지 ‘플라스틱 재활용에 동참하자’, 더 나아가 20세기 석유화학의 총아였던 ‘플라스틱과 비닐을 아예 만들지도 사용하지도 말고 생산/소비 윤리 자체를 바꾸자’는 정도가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지금의 환경문제가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환경문제 이외에 서양문화(명)가 세계를 주도하던 지난 6백여 년 동안, 그들이 만들고, 어질러 놓고, 쌓아놓아 썩어가는 전 지구적 문제들(영성과 정신성의 부재와 철저한 물질문명 지향성, SNS의 발전과 역설적 인간소외, 국가/민족들 사이의 항구적 전쟁상태, AI/BigData의 발달과 상호 불신의 증가, 살벌하고 잔인한 서양식 정치제도(독재, 나치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낳은 엄청난 폐해 등은 단순히 과학/기술이 진보하거나 윤리적 행동을 바꾸면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20세기에 그렇게 환영받던 석유화학과 같은 과학이나, 21세기에 그토록 열광하는 기술을 만들어낸, 서양문화(명)의 근본을 뒤집어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즉 서양이 자신만만하게 가졌고 널리 퍼트렸던 기술, 과학, 그리고 그것이 근거한 철학, 윤리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종교적 신념체계를 허물고 전혀 새로운 가치관, 문화(명)관, 세계관을 창조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지난 3월부터 서양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의 출발이라고 여기는 그리스 문화(명), 그리고 그 본질인 그리스철학을 ‘동양(인)의 관점’(제2의 관점)이나 ‘서양(인)의 관점’(제3의 관점)도 아닌, 세상의 배꼽(제1의 관점)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이번 10월 호부터 세 가지를 살피려고 합니다 :    

  
I. 소크라테스 이전에 형성된 그리스 철학의 두(과학적 vs. 신비적) 전통 
II. 상반된 두 지역(동과 서)에서 상반된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형성한 지리적, 
   역사적 상황, 사건들 
III. 그리스철학이 근현대 서양철학에 남긴 근본적으로 악한 습관들(예: 부친 살해 죄) 

I. 소크라테스 이전에 형성된 그리스 철학의 두(과학적 vs. 신비적) 전통
먼저 우리는 지난 2천 년 동안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었던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의 기초를 마련한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되었다고 여긴 그리스철학 전통을 분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속에 뚜렷이 구별되는 두 전통을 구별하려고 합니다.

첫째 전통(과학적 전통)은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지금의 터키 쪽 해안, 즉 그리스 동쪽의 식민지들(밀레토스, 클라조메나이, 사모스, 압데라)이 있던 이오니아 지방으로 팽창하는 것을 저항하면서 동방에 대한 심각한 반발심을 가진 철학자들(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아낙사고라스, 레우키포스, 데모크리토스)이 이룬 것입니다. 이후 작은 도시 폴리스에 제한된 삶으로 철학을 하였던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한계를 넘어가도록 세계를 확장시킨 사건이 알렉산더의 세계제패와 바로 이어진 그의 죽음이었습니다. 또 전혀 새롭게 형성된 헬레니즘이나 로마 사회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가운데 이전의 과학적 철학 전통을 이어가며 철학을 한 사람들(에피큐러스, 류크레티우스)이 생겨난 것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과학적 전통’에 대해서 다음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종교, 신화를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해버리고 그것을 점점 멀리하다가 버리며 기계적, 무목적적 사고를 하는 전통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고대 원자론의 핵심 인물이며 그리스의 이오니아 지방의 식민지인 압데라 출신인 데모크리토스는 그 당시의 유학인 셈인 동방 여행(이집트,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는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기초로 아테네에 돌아와서 자신의 학교와 학파를 이루어 기본적으로 신화적, 종교적 요소를 철저히 거부하는 무신론적 전통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가 여행하던 당시 세상의 배꼽에서의 종교와 문화(명)는 매우 비틀거리는 단계였습니다. 즉 당시 이스라엘의 절대 종교와 그 문화는 5백여 년 간의 말기, 파멸이라는 셋째 단계(BC 539~0)를 지나는 중이었기 때문에 정말 별 볼일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그는 단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다신교와 정치를 보좌하는 기능을 가진, 이미 왜곡되었던 종교만 경험했지, 세계관을 포괄하는 종교, 문화 즉 다윗과 솔로몬 당시의 종교와 문화의 총체적 조화를 경험하지는 못한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과학적 전통을 따르는 철학자들은 대부분 무신론을 주장하는 편이며, 삶, 문화, 역사에는 그 어떤 의미, 목적도 없다는 무목적적인 관점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들은 약아빠질 정도로 지혜롭게도 이럴 때에 발생하는 무질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예상해서 윤리에 대한 저작을 조금씩 남기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주장 자체에 의해서 바로 뒤집어지는 성격의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좌파, 진보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 담긴 철학적 본질은 진리란 없으며 ‘나와 우리가 곧 진리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역사란 상호 불신, 편 가르기, 투쟁을 거쳐 사회의 전적 파멸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매우 유물론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신비한 본성과 영적, 정신적 능력을 무시하고 기계적 인간관을 만들기에, 21세기에서는 AI와 로봇의 등장을 매우 두려워하는 문화(명)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인간의 본질은 뇌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되고 심장사보다 뇌사를 사망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뇌사된 남편을 정성을 다해 섬겨 몇 년 만에 살려낸 어떤 중국 부인을 비웃는 매우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겁니다.2)


둘째 전통(신비적 전통)은 그리스 서쪽의 식민지들(엘레아, 크로톤)로 개척된 이태리 남부에서 일어난 철학자들(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제논)이 만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이후로 이들의 영향을 잘 간직하면서도 신비적 차원을 조금씩 줄여나간 철학자들(플라톤과 그의 학교인 아카데미아 출신,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학교인 뤼케이온 출신)입니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이 헬레니즘 사회의 등장과 때를 같이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전의 신비적 전통을 조금이라도 유지하면서 세계를 긍정하는 가운데 로마가 지배한 사회를 이끌어갈 철학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스토아철학입니다.     


‘신비적 전통’이란, 다음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인간이 아무리 탁월한 경험을 하고 놀라운 깨달음을 얻어도 인간을 능가하는 어떤 근본적인 존재나 진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철학적 경향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중학교 때에 피타고라스 정리로 잘 알려진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는 수학을 매우 중시했지만, 수학을 신비한 진리에 이르는 하나의 도구로 여겼을 뿐입니다. 그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매우 절제된, 서로 죽음과 삶을 나누는 영적, 공동체적 삶을 살았으며, 신비한 진리를 구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학파에게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정수를 주장하던 피타고라스학파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리수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알고, 수학에서 물리학으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인 기하학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학교 정문에는 ‘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격언을 써놓을 정도로 기하학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 있어 기하학은, 논리를 다듬는 훈련을 하게 해서 가장 초월적 진리인 이데아와 현상의 구분이라는 신비한 진리에 이르는 도구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플라톤은 변화무쌍한 현상세계와 변화가 없는 본질의 세계를 구분하는, 그 이전의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그래서 결국 변하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를 추구하는, 서양철학과 서양 신학이 발전시킨 이원론의 전통을 세웠습니다. 특히 그가 죽고 난 뒤에 벌어진 새로운 헬레니즘 세계에서 플라톤의 이원론은 신플라톤주의로 발전되었습니다. 뒤이어 유럽으로 진출한 세상의 배꼽의 종교인 기독교는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신플라톤주의를 이용한 신학체계인 중세의 로마교 신학을 만들어서 가장 핵심적 전통이 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 속에서 이런 이원론이 세계관의 결정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적인 것(이데아)과 세상적인 것(현상)을 구분하는 플라톤적 전통을 기독교가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서 자신이 해체될 정도로 섬기는 예수의 기본정신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즉 자기 마음으로는 자신이 구원을 받았고 천국 시민권을 가진(즉 이데아를 성취한) 존재로 여기지만, 현실 역사 속에서는 그 어떤 것 하나 변화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로 타락하고만 겁니다. 그렇지만 원래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된 ‘신비적 전통’은 인간의 경험, 관찰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초월하는 원래적인 것, 즉 종교, 신화에 더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그리스 고대철학의 하나는 과학적 전통을 발전시켰지만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신비적 전통을 이루었습니다. 바다의 사람, 뱃사람인 그리스인들이 그리스 본토에서 동쪽과 서쪽의 정반대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전혀 색다른 철학적 전통을 만들어나간 겁니다. 결국 서양철학의 근원은 그 근원에서부터 보편적인 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처한 지역적, 정치적, 역사적 환경의 산물’인 셈입니다. 
그런데 철학의 역사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미친 서양문화(명)에서의 영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철학자들을 한 묶음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라고 버무려버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즉 이들을 하나의 괄호처럼 묶어서 철학사의 서론처럼 간략하게 다루고 지나쳐버리는 겁니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상 이전 철학 전통들의 한 줄기인 ‘신비적 전통’을 이어간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근대 서양철학이 따라간 이런 경향에 반기를 들기라도 하듯이, 또 하나의 그리스 전통인 ‘과학적 전통’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이 칼 마르크스 이후에 나타난 유물론적 경향의 철학입니다. 마르크스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고대 그리스의 과학적 전통을 이룬 데모크리토스를 이어받아 우리에게 쾌락주의로 피상적으로 알려진 에피큐러스를 그리스적 계몽을 이룬 가장 위대한 대표자로 소개합니다. 그 이후 근현대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자, 좌파, 진보들은 그리스철학의 좌파적 경향(‘과학적 전통’)을 이어가며, 우파적 경향(‘신비적 전통’)을 가진 것에 대항하는 체제를 형성해서, 21세기의 정치, 사회에서 좌우파로 나누어 싸우는 전통을 만든 셈입니다. 


먼저 서구 철학을 구분한 20세기의 연구 역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신비적 전통’과 ‘과학적 전통’을 선명하게 나누는 지혜는 한 세기 전의 케임브리지의 고전학자인 F.M.Conford ([종교에서 철학으로] 1912)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단정적이고, 직관적 단문장이 많았기 때문에, 거칠고 철학적 논증이 빈약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정통한 그리스 고전을 천착하고 읽어나가면서 발견한 논증이기 때문에, 문서적 근거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이전에 유명한 J.Burnet ([초기 그리스 철학] 1892)이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관점인, 그리스 철학이 창조적이었다는 주장을 반대했습니다. Cambridge에서 배우고 가르쳤던 콘포드와는 달리,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졌으며 경쟁적 관계에 있는 Oxford와 Scotland에서 활동했던 버넷은, 그리스철학이 세계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하게 창조적이었다는, 서구인들이 정말 듣고 싶은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것에 비해서 콘포드는 그리스 철학은 그 기원이 완전히 새롭고 창조적이지 않고, 이미 있었던 그리스 신화의 재료를 다시 철학화해서 사용한 것 밖에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철학자가 아닌 고전학자인 콘포드가 젊은 시절에 발간했던 책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서 학문화하지 않는 가운데 다른 일을 하다가, 40년이 지난 그의 만년에 가서야 다시 이 관점에 돌아와서 작업했습니다([Principium Sapientiae 근본 지혜] 1952), 그 당시 신학/종교학에서 종교와 역사를 연결해서 설명하려던, 유행하던‘신화와 제의학파’Myth&Ritual School의 연구 경향을 따라갔으나, 철학의 본질을 규명하는 점에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제자이며 Cambridge에서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W.K.C.Guthrie([그리스 철학자들 -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1960)는 고대철학을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스승의 기본 입장을 따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거스리Guthrie는 스승이 비록 좀 거칠게 하기는 했지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을‘신비적 전통’과‘과학적 전통’으로 가장 중요한 구분을 계속 이어나가지는 않았으며, 그런 구분을 단지 스승이 젊은 혈기에 성급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승이 그리스 철학이 근본적으로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자료를 사용해서 철학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매우 놀라운 직관을 계속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평범한 철학사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양인보다 거의 일천년 뒤늦게 정신이 깨어서 출발한 서양인들과 서양문화(명)는, 매우 일찍 동방으로 이동해서 드넓은 북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지나 심지어 오세아니아와 북 중남미까지 진출한 동양인들과 동양문화(명)에 대해 가진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소위 ‘문화심리적 기전’을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서양인들이 조상으로 모시기로 작정하고 신줏단지처럼 붙들고 있는 그리스철학, 문화(명)를 일군 자들 특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근본적으로 동서로 아주 넓게 퍼진 그리스 식민지의 지역적, 역사적 특성을 따라서, ‘빛은 동방에서 온다’(Ex Orient Lux)는 당시 경향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본토의 서쪽에서는 신비적 전통과 그리스 본토의 동쪽의 과학적 전통을 만든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더더구나 종교적, 신비적 전통이 아니라 무신론으로 발전되는 과학적 전통의 정점을 이룬 철학자(데모크리토스)조차도, 그 당시까지 미미하게 전승되었던 그리스 신화, 종교의 전통을 사용한 것임이 분명하였는데, 거스리Guthrie는 이것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프랑스의 버몽(J.-P.Vermont [Mythe et pensée ches les Grecs 그리스인의 신화와 사유] 1965)은 콘포드의 기조를 이어받아서, 그리스 철학이 신화와 가진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한국학자(남경희)도 콘포드의 책에 깊은 인상을 받아 번역까지 했지만(1992), 자신의 학문적 업적 속에서 이런 지혜를 살리지 못하고 여전히 고답적이고 추상적, 사변적 철학 작업에만 생애를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서양 철학자들이 가는, 소위 학문적이라고 여기는,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만족하는 길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이런 작업은 학자들이 겉으로 말하지 않는 ‘뒤를 캐는 일’이기 때문에 증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철학자들이 드러나게 한 말과 선명하게 썼지만 매우 추상적, 사변적 글들만 분석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것 같지만(그리스 원전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그것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의외로 쉽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정직하지 않고, 남들이 받아들여질 것만 말하고 쓰는 편이어서, 꼭꼭 감추어진 자신의 속과 가장 깊은 전제는 철저한 뒷조사(어릴 적 부모의 영향, 심리적 경향, 만났던 스승, 자랐던 도시의 문화, 역사, 지리적 환경 등)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21세기 초, 전 지구적인 위기의 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서양과 서양문화(명)와 서양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서양인들이 부끄러워하면서도 비밀스럽게 간직했던, 문화심리적 열등감과 거기서 만들어진 거짓 우월감과 그 결과에 예속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1)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9-04-14/as-flying-shame-grips-sweden-sas-ups-stakes-in-climate-battle
2) https://soda.donga.com/Main/3/all/37/1829661/1

3) 자기의 초기의 철학 작품을 비웃듯이 쓰레기통에 던져야 할 것이라 여긴 가운데, 그것을 신줏단지처럼 보며 자신을 신처럼 모시는 비엔나의 학파가 초대한 자리에 가서 그들을 비웃고 타고르의 시를 낭송한 가장 정직한 철학자의 한 명인 비트겐스타인조차도 유대인 특유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서 안달복달해야 하며, 어떤 영역에서나 최고처럼 거의 메시야처럼 행동하려는 심리적 경향 같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최고 중의 최고가 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 살았기 때문에 보통 민족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심리적 경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비엔나의 심리학 제1학파(성))를 필두로, 아들러(비엔나의 심리학 제2학파(의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빅터 프랭클(비엔나의 심리학 제3학파(의미)) 모두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습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0>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