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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의 분수령, BTS

2019년 10월호(12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1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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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 역사칼럼 15]

한국역사의 분수령, BTS

 

BTS, 월드투어 시작…LA 밤하늘 수놓은 한국어 `떼창`(매일경제)

우리는 언제부턴가 우리 자신의 평가에 대해 인색했다. 우리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나 자신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중국을 기준으로 평가해왔다. 중국보다 앞서지는 못하지만 중국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것이 우리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다른 주변 나라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이었다. 중국이 아닌 나를 기준으로 절대평가를 하면 민족주의라고 비난을 받고, 중국과 다른 우리 역사를 얘기하면 ‘국뽕’(‘국’가+히로‘뽕’이 합쳐진 말, 국수주의, 민족주의가 심하며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로 여기는 행위나 사람)이라고 몰매를 맞는다.


신라 이차돈의 순교는 중국 달마의 박해 연도와 맞아야 했고, 백제의 3년 상은 중국의 27개월에 일치해야 했고, 단군은 기자로 대체되었다. 우리 역사가 우리 것이기 때문에 위대한 게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발맞추었기 때문에 위대한 게 되어버렸다. 감히 중국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발맞춤의 역사, 아니 정확하게 항상 몇 걸음 뒤쳐서 따라가는 그런 역사가 지독히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신라 최치원에 의하면 이차돈의 순교 연대는 528년이다. 그러다가 신라 말, 고려 초 중국 선종이 전래 수용 발전하면서 중국에 선종을 전한 달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달마도 교종 불교의 박해를 받고 순교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공교롭게 달마가 중국 양나라에 선종을 전한 연대가 527년이었다. 이차돈의 순교 연대와 1년 차이밖에 안 난다. 점차 이차돈의 순교 연대는 달마의 순교 연대에 맞춰져 갔고 현재 527년이 돼버렸다. 신라 불교의 기념비적 출발이 중국 불교에 맞춰진 것이다.


백제 무령왕릉은 중국 영향 그 자체였다. 그런데 맞지 않는 하나가 왕과 왕비의 3년 상이다. 중국의 3년 상은 27개월인데 무령왕과 왕비는 28개월이었다. 왕비의 경우 중국의 27개월에 맞추기 위해 죽은 달을 11월이 아닌 12월로 잘못 판독한 경우도 있었다. 아니면 28개월이라고 하지 않고 만 27개월이나 27개월을 지나서라고 표현하면서 어떻게든‘27’이라는 숫자를 드러나게 하였다. 무령왕의 우수성을 백제적 특징에서 찾기보다 중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였다는 데서 찾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단군이 세운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단군 이후 기자와 위만에 의해 계승되었다. 통치자는 바뀌었지만 나라 이름이 그대로 ‘조선’이었다. 기자와 위만의 국적이 무엇이든 단군과 조선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고조선이 멸망하고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가 멸망함으로써 고조선의 정체성은 서서히 단군에서 기자로 교체되었다. 고려시대 유교정치이념의 확산에 따라 그 속도는 더 빨라졌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도 중국 요임금이 나라를 세운지 몇 십 년 뒤가 되었다. 그러나 한쪽에선 적어도 요임금과 같은 때라고 하는 자존감은 남아있었다.


분수령은 이성계의 조선이었다. 이성계는 명나라 에 ‘조선’과 ‘화령’두 국호 가운데 하나를 정해달라고 하였다. 명나라는 ‘조선’으로 정했다. 정도전은 이 ‘조선’의 의미를 단군의 조선이 아닌 기자의 조선으로 풀었다. 마치 옛날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에 봉했듯이 명나라가 이성계를 조선에 봉했다고 하였다. 기자가 단군을 대체했고 나중에 조선은 자신을 ‘소중화(小中華)’라고 하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한 가지 위안을 삼는다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다. 기자의 문자인 ‘한자’를 수 천 년 동안 사용하다가 우리의 문자를 갖게 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기자 추종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자를 만든 세종의 업적은 한국 사상사의 일대 전환이었다. 물론 그 전환의 물줄기는 미미했다.

그때만 해도 한글이 한자를 앞지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기자의 나라가 한글을 배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더욱 세계 사람이 한글을 배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팝송을 배우며 자란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다. 감히 미국과 유럽이 한국말로 우리 노래를 부르리라는 걸 꿈에라도 생각했겠는가?
그걸 BTS가 해냈다. BTS를 보고 자란 젊은 세대의 시대가 역사 속에서 다가오고 있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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