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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돌솥밥을 만든 42년, 반야 돌솥밥 임복주 명인을 만나다

2021년 12월호(14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2. 2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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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대한민국 최초 돌솥밥을 만든 42년,

반야 돌솥밥 임복주 명인을 만나다

 

 

바람 든 무도 맛있게 조려내는 친정어머니 손맛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 초등학교 시절에는 먹을 게 귀했잖아요. 요새는 설탕이지만 그때는 사카린 넣은 단물로 밀가루를 반죽해 세모 네모 모양을 만들어 검정 솥에 쫘악 깔고 불에 구우면 아주 맛있었어요. 요새로 말하면 비스켓인데, 이걸 만들어 먹다가 혼나기도 많이 했죠. 맛의 고장 전라도 전주에서 태어나 무엇보다 친정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았어요. 어머니는 바람 든 무 하나라도 맛있게 조려낼 줄 아는 손맛을 가진 분이셨죠. 종종거리며 잔심부름을 하면서 반찬마다 뭐가 들어가야 잡내가 사라지고, 또 뭘 넣지 않아야 풍미가 사는지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죠. 이건 글로 배워서 되는 게 아니에요. 평생 삼시 세끼 내 손으로 담아내야 터득되는 것이죠.


친정엄마의 ‘양은냄비 밥’이 아이디어
24살에 결혼한 저는 시댁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내가 나서서 집안을 일으켜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음식 장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식당을 차렸죠. 어떤 메뉴를 할까 고민하다, 지금 내가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어요. 그때 딱 떠오르는 것이 할머니께서 입맛이 없다고 하시면 엄마가 쌀을 한 줌 씻어 양은냄비에 담가놓아 불린 쌀로 연탄불에 했던 밥이었어요. 양은냄비 밥은 뜸이 잘 들면 밥알이 모조리 다 서요. 학교 다녀온 저에게 할머니가 주시는 누룽지는 맛이 기가 막혔죠. 나이 칠십이 넘었지만, 지금도 그 맛이 생각나요. 그래서 한 사람에게 오롯이 해주는 양은냄비 밥으로 결정했어요.

나이 서른 새댁 ‘반야돌솥밥’ 간판을 걸다
이런 저를 위해 남편이 ‘반야돌솥밥’이란 이름의 간판을 떡하니 걸어주었어요. ‘반야’는 ‘밥 반(飯)’에 ‘들 야(野)’로 돌솥에 한 밥과 들에서 자란 야채를 반찬으로 먹는다는 의미죠. 하지만 돌솥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죠. 당시에 1인용 양은냄비는 있었지만, 여기에 밥을 하는 건 상업성이 부족했어요. 금방 타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질그릇인 뚝배기에 밥을 해보았는데, 밥은 잘 되지만 돌솥이 아니다 보니 손님들의 만족도가 떨어졌어요. 그러던 중 장수 돌산에서 돌그릇 만든다는 말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갔죠. 마침내 돌그릇 사장을 만나 돌솥을 만들어 달라 하니 난감해하더군요. 없는 솥을 만들어 달라했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돌솥20개를 만들어 처음으로 돌솥밥을 시작했습니다

 

눈과 입을 만족시키는 돌솥밥 만들기
그런데 참 이상하죠. 돌솥에 하얀 밥 짓기는 싫더라고요. 그래서 밤과 은행을 넣어 함께 밥을 지었어요. 지금이야 밤, 은행이 흔하지만, 그 시절엔 밤도 귀했죠. 음식을 내놓으면 처음에는 눈으로 먹고, 다음에 입으로 먹잖아요. 영양학적으로뿐 아니라 미학적으로 밥을 만들고 싶어 검정콩을 넣어보고, 색깔을 맞추기 위해 완두콩, 주황색 당근, 몸에 좋은 표고버섯 등등 점점 넣는 가짓수가 늘어났죠. 메뉴도 처음에는 일반 반야돌솥밥으로 10년을 했는데, 손님들이 송이, 인삼, 소고기를 넣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해 주셨죠. 대접할 손님들을 모시고 오는데 일반 반야돌솥밥만 내놓는 것보다 여러 종류의 돌솥밥을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이런 관심에 힘입어 지금의 메뉴들이 탄생한 것이죠. 요즘은 워낙 다양한 식재료들이 많다보니 이것저것 사용하며 맛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그래서 몸에 좋다는 산삼배양근과 동충하초를 가지고 연구했는데 맛이 너무 밋밋해 대추를 채 썰어 넣어봤지요. 그랬더니 달달하니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짠의 맛이더라고요. 그래서 15년 만에 ‘특돌솥밥’이라고 메뉴판에 올렸습니다.

 

반야돌솥밥 상차림


손님이 손님을 몰고 오다 
‘반야돌솥밥’으로 간판을 걸어놓으니 돌솥밥이 뭐냐며 사람들이 궁금해했어요. 한 사람에 돌솥 하나의 따끈하고 별미인 밥을 먹어보니 맛있다며 광고 한번 없이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손님들을 몰고 왔죠. 4개월째 되자 홀보다 밖에 있는 손님들이 더 많았어요. 1980년 즈음 15평에 주방 3평으로 시작했는데, 몰려드는 손님으로 2층의 집까지 사용하게 되고, 그곳에서 10년을 운영하다 바로 옆 150평 정도에 지하 2층의 주차장을 갖춘 8층 건물까지 짓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장소인 이곳으로 온 지도 10년이 되었네요. (아! 그런데 10년 된 건물 같지 않게 깨끗하네요) 남편이 매일 건물 주위를 청소하고 관리합니다. 그래야 들어오는 직원, 손님들도 기분이 좋다고 하면서요.

궁하면 통한다
알다시피 돌솥밥이 금방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밥해서 뜸 들여 나오는 시간이 20분 정도 걸려요. 그런데 밖에 손님들은 기다리지, 3평 주방은 너무 좁고, 늘리자니 공간도 없고, 불도 여러 개가 더 있어야 하는데 고민이 여간 아니었어요. 그러던 중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가스 불을 2층으로 만드는 것이었죠. 처음에 가스 설치하는 분에게 제 아이디어를 말하니, “가스 불을 어떻게 그렇게 설치해요, 큰일 납니다.”하더라고요. 그럼 호스를 닿지 않게 멀찌감치 빼서 해 달라 부탁해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 설치했더니, 1층 불에서 밥을 끓여, 바로 2층 불에 뜸을 들이니 시간이 단축되어 돌솥밥 20개가 한 번에 만들어졌죠. 

돌솥의 장벽
지금은 돌솥밥 하는 음식점들이 많아졌지만, 돌솥을 식당에서 다루기에는 여러 가지로 장벽이 많습니다. 첫째는 무게, 돌솥이 워낙 무거우니 들고 나르기가 어려워요. 둘째는 관리, 씻고 닦고 말리기도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에요. 지금보다 세제가 좋지도 않았지만, 우리는 어릴 때 이런 그릇은 쌀뜨물로 씻으라고 배웠거든요. 뜨물 받아뒀다가 그 무거운 그릇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다뤄가면서 씻고, 어슷하게 겹쳐서 말리다 보면 손에서 놓치기 다반사죠. 그러다 보면 금 가고 깨지고, 어휴~. 그리고 셋째가 가격인데 어디 냄비에 비교할 가격이겠어요? 그 비싼 걸 하나라도 손에서 미끄러뜨려 깨기라도 해봐요. 가슴에 금이 갑니다. (웃음)

 

반야돌솥밥


365일 매일 김치를 담그다
전주비빔밥은 고추장으로 비비는데, 저희는 ‘반야특제 양념간장’으로 손님들 식성에 맞추어 비비도록 했어요, 그리고 따뜻한 밥과 잘 어울리게 기본적으로 시원한 동치미가 있어야 했죠. 무엇보다 이 돌솥밥에 궁합이 맞는 반찬으로, 친정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매일 생 겉절이를 해드리면 밥을 잘 드셨던 것이 기억나 365일 날마다 김치를 담가요. 생김치를 손님들 상에 항상 새롭게 내놓는 거죠. 그리고 지금은 하우스 농사로 상추가 아주 흔하지만, 예전에는 노지에서 키운 상추를 뜯어 부추와 겉절이를 하면 아주 맛있었죠. 반야의 의미에 맞게 계절에 맞는 야채 반찬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끔 음식 맛이 달라졌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기후와 농사방법이 달라져 그렇다고 봐요. 낮에 손님들이 무엇을 맛있게 드시나 잘 관찰했다가 밤에 누워 손님들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반찬을 개선해 나갔죠. 이런 열정으로 공부했으면 판검사는 따 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말이죠. (웃음)

 

임복주 명인의 주특기인 미나리 김치


나를 장사꾼으로 안 보더라고~
손님 중에는 ‘반야돌솥밥’을 친정이라 생각하고 오는 분들이 있어요. 손님들이 돈을 내고 식사를 하고 가니 사실 내가 감사해야 하는데, 도리어 나에게 고맙다고 해요. 새하얀 내 머리를 보며 “건강관리 잘하셔야 제가 여기에 와서 항상 맛있게 먹고 가죠.”라고 이야기도 합니다. 밥 한 그릇 그냥 나눠 먹을 수도 있는 것인데 얼마나 마음에 남으면 나에게 이리 이야기를 할까 싶어 내 마음이 저리더라고요. 나를 장사꾼으로 보지 않고 진심으로 우러나와 하는 말이구나 생각해요. 제가 살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마음은 항상 열어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마음으로 직원도 들어오고, 손님도 들어오거든요.

진입장벽 높은, 맛의 고장 전주에서 성공한 이유 
돌솥밥이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인기를 끄니 같은 품목으로 식당을 개업하는 분들이 당연히 늘어났죠. 하지만 대부분이 한결같은 맛과 정성을 유지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저는 처음 반한 돌솥밥 맛만큼은 계속 고수해 나갔죠. 같은 재료를 가지고 크게 연구하지 않아도 뚝딱뚝딱 맛있게 만들어 낼 줄 알고, 무엇보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되니, 주방장이 교체되어도 맛이 달라지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거기에 제가 손이 커서 재료비 생각하지 않고 풍성한 양념에 반찬을 아끼지 않고 거의 퍼주다시피 했죠. 맛있는 음식이란 입에만 맛있는 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의 마음도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첫 가게가 전주 남부시장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예전 전주 남부시장은 호남 최대의 시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온갖 산물들이 집결하는 곳이었죠. 아침 일찍 가면 근처 시군에서 새벽에 수확해온 갖가지 작물들이 다 있으니, 가장 저렴하게 신선한 재료들을 공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든든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다행히 저는 아주 튼튼했어요. 매일 돌솥밥 수십 킬로의 쟁반을 2단, 3단으로 머리에 이고서도 뛰어다녔으니까요.

주방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생업의 밥상이 아닌 보은의 밥상’이다 생각하고 반야돌솥밥을 운영하며 지금 72세가 되었지만, 주방을 못 떠나요. 직원들도 많은데 왜 못 떠나냐고요? 가령 내가 1주일 가게를 비웠을 때, 그 음식 맛은 내 맛이 아니라 직원의 맛이죠. 항상 아침 7시경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밑반찬, 밑양념을 다 해놓고, 음식의 간도 내가 먼저 본 후, 손님상에 올려요. 이렇게 맨 처음 내가 먹는 것인데 음식으로 장난을 치면 안 되죠. 시래기국을 끓인다 해도 나와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끓여야 해요. 매운맛을 내려 할 때 요즘은 ‘캡사이신’이라는 물질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제 생각에는 음식은 음식으로 맛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양고추를 사용해 매콤한 맛을 내야 건강하죠. 작은 것이라도 이런 걸 지키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않습니다.

‘명인’상 받는 날, 순간 남편에 대해 새롭게 깨닫다
2005년 명인 상 받는 날, 전주시장님께 상을 받고 딱 돌아서 사진을 찍는 순간, 앞에 서 있는 남편을 보며 ‘아! 이 상은 남편이 받아야 할 상이네’라고 깨달았어요. 젊어서는 나만 일하는 것 같아, 남편에게 이러네 저러네 하며 불평도 했는데, 남편이 저를 이 자리까지 올려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남편이 항상 나를 먼저 앞에 내세워주고 자기는 뒤로 빠지며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지지 해주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했어요. 그 이후 말다툼 한 번 안 했어요. (이런 마음을 남편에게 이야기하셨나요?) (잠시 동그란 눈을 깜빡깜빡하며 그 연세에 정말 수줍은 표정으로 툭 내뱉는 말씀) “안 했어!”(큰 웃음과 함께 어휴! 하셔야죠~ 그래야 남편분도 아시죠)


나는 만인을 상대하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온통 음식에 몰입하느라, 나를 가꿀 시간과 여유도 없었어요. 도리어 직원들이 화장하며 더 깔끔하게 있었죠. 이 모습을 보며 어떤 손님은 “여긴 거꾸로 됐어요.”하더군요. 처음에 무슨 말인가 했더니, 주인과 직원이 바뀌었다는 말이었죠.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면서 생각을 바꾸었어요. 60세가 되면서‘나는 하루에도 몇백 명씩, 만인을 상대하는 사람이다. 누구 눈에라도 누추하게 보여서는 안 되겠다.’라고요. 사람들이 주인이 나이를 먹으니 음식도 바뀐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 이후 매일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며 나 자신을 항상 곧추세웁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롭게 만날 손님들을 기대하죠. 사람들은 어떻게 날마다 이렇게 하느냐며 대단하다고 하는데, 내 마음가짐과 정신력이죠. 나는 나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

‘반야돌솥밥’을 이어갈 딸(자칭 무수리)에게 보석도 돌과 함께 있으면 돌멩이가 될 수 있다며, 이렇게까지 키워놓은 음식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서 더 좋은 보석으로 만들고, 나보다 더 잘해야 한다며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엄마의 손맛이지만, 딸의 세대에 맞는 맛을 찾도록 격려도 하고요. 특히 이미 10년 전에 돌솥밥을 오토바이 퀵을 이용해 배달하면서 코로나 시대에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해요. 돌솥은 배달해도 잘 식지 않은 장점까지 있으니까요. 임복주 명인의 후덕한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묻어나와서인지 인터뷰 내내 표정 하나하나가 빛나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글을 써 내려가며 임복주 명인의 구수한 전주 사투리가 친정엄마의 목소리처럼 귀에 쟁쟁거리더군요. 모쪼록 한류로 한식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는 시대에 반야돌솥밥이 세대를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의 응원을 한껏 보냅니다. 

 

주요활동 사항
1980년 우리나라 최초 반야돌솥밥 개발
1985년 전주시‘전통음식 전승요리경진대회’참가
1998년 일본 후쿠오카‘코리아 페스티발’참가
2012년 한국국제요리경연대회 금상
2016년 농림축산부, 동아일보주관 
        ‘米’s korea(밥맛이 남다른 집) 선정
2020년 한국문화예술명인회 김치명인인증
2020년 대한민국 한식포럼 한식대가인증
2021년 대한민국 장류 발효대전 대상 수상
2021년 대한민국 한식포럼 명장수여 

 

반야돌솥밥
전북 전주시 완산구 홍산1길 6
063-288-3174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6>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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