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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쁨, ‘라파엘’드디어, 칠레에서 3대를 이루다!

2022년 2월호(14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1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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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쁨, ‘라파엘’
드디어, 칠레에서 3대를 이루다!

 

작년 12월 28일 딸 다연이가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손자가 태어나든, 손녀가 태어나든 성별에 상관없이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젊은 시절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둘을 키우면서 느낀 점은 딸 키우기가 아들 키우기보다 쉬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딸의 즐거운 육아생활을 위해서는 손녀이길 바랬는데 손자가 태어난 것이다. 우려와는 달리 태어난 손자‘Rafael’은 무척 순하여 안심이 되었다. 그렇다. 신생아 손자 라파엘은 아빠가 칠레사람이다.

 

손자 라파엘 생후 2일째

1992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생활을 할 당시 한국교포들의 상당수가 간호사였다. 간호사들의 대부분은 남편이 독일 사람이었는데 한국 출신 간호사들이 신부감 1위라는 말을 들었었다. 이 한국 출신 간호사들이 동생이나 친지를 독일로 불러들여 독일유학을 시켰다고 한다. 공부를 마친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분명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본다면 마땅히 훈장을 드려야 할 분들이 파독 간호사이다. 상황은 이러했지만 국제결혼이기에 애잔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잣대도 없었고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내 아들, 딸은 절대 국제결혼만큼은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더랬다.


훨씬 더 이전인 1984년도에 한 기사를 읽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영국 사람과 결혼한다는 기사였다. 내 나이가 적은 것을 탓해야 했을까…‘아니, 그토록 많은 한국 남정네들은 뭐하고 있단 말인가!’하며 분개했다. 세계 최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외국 사람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분명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간단하게 풀고 말았다. 자기가 좋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지간에 아쉬움이 있던 차에 몇 년이 지난 뒤 한 TV대담쇼에 정경화씨가 나왔다. 정경화씨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감동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음악의 심오함을 제치고 육아에 전념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실제로 한동안 연주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세를 풍미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말하는 생명 탄생의 환희는 이미 수많은 엄마들이 말해왔다. 그렇지만 예술세계에서 최고가 된 사람은 좀 다를 거라 예상했기에 충격을 먹었더랬다. 

그토록 소중한 생명의 탄생. 과연 딸이 낳은 손주 라파엘은 나에게 어떤 기쁨을 안겨주었을까. 나도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대부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손녀의 재롱에 폭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기에.
딸이 임신하고 몇 개월 지나면서부터 손주를 위해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교민 알뜰방에 동화책이 나올 때마다 기웃거린 후 80권쯤 사놓았고, 행상들이 털실로 뜨개질하여 만든 신발하며 바비인형과 역시 털실로 짠 바비인형 옷들을 샀다. 물론, 딸은 내가 좋아해서 산거 아니냐고 키득거렸지만 이상하게도 뿌듯했다. 나중에 초음파로 태아가 남아인 것으로 밝혀져 남자 인형을 사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보여지는 행위를 한 것은 딸에게 점수를 따고 싶었기 때문이지 손주가 탄생할 것에 대한 기대감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십여 일 앞서 손주가 탄생한 것이다. 신비스러웠다. 뿌듯했다. 신기했다. 아내가 자식을 낳았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감흥이 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 자랑에 재롱에 미친다는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별 수 없겠구나 싶다.

아내는 손자 라파엘이 제왕절개 출산 후 산모에게 안기며 울고 있는 1분 31초짜리 동영상을 수 십 번도 더 보았다. 너무나도 좋아 웃으면서 틈만 나면 보았다. 라파엘이 우는 동영상인데도 왜 웃게 되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도 몇 번을 보면서 웃게 된다. 암환자인 아내에게 라파엘의 탄생은 큰 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신기하게도 한국에 있는 여동생이 귀뜸해 주었는데 손자의 이름 라파엘의 뜻이 ‘치료자’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머나먼 이국 칠레에서 3대를 이룬 감흥이랄까? 알 수 없는 것들이 마음속에서 올라온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내 마음 한구석은 항상 한국을 향해 있지만, 현실의 삶을 살아 내야하는 곳은 바로 이곳 칠레이니, 개인의 이민 역사가 손주 라파엘로 인해 이어가는 것 같아, 기쁨과 함께 기분 좋은 찐한 책임감도 나의 마음을 두드린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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