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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요트 여행기(1)

2022년 2월호(14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1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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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문법이야기 16] 

겨울 요트 여행기(1)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요트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요트를 가진 사람들은 갑작스런 재난에 요트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요트가 없는 사람들은 집을 팔고 요트에 들어간 탓이다. 함께 쓸만한 요트를 찾아보려 유럽 쪽 딜러들에게 연락을 하던 지인의 전언으로는 유럽 쪽 중개인들도 쓸만한 중고 요트가 없다며 이전보다 1.5배씩 중고 요트 값이 올랐다 한다. 그리고 그나마 국내에 있는 작은 요트 중고 사이트에도 내가 찾는 35~40피트급의 요트들은 씨가 말랐다. 아쉬움에 일본, 미국, 유럽 중고 요트 사이트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네이버 검색에 문득 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참고로 기점으로 삼고 있는 김포의 아라마리나는 배 길이 40피트 이상의 마스트 높이를 가진 배들이 들어오기 힘들다. 인천을 향하는 두 번째 다리인 아라대교의 높이가 낮아 42피트급 배들이 들어오다가 나침반이 깨지고 마스트가 긁혔다는 이야기들을 다른 선장님들로부터 여럿 들었었다. 

 


지난 가을에 모아나호와 아리엘호를 몰고 상륙정을 배에 싣고 섬에 상륙해 8명의 인원이 캠핑까지 진행했던 대모험에서 크루들을 데리고 아름다운 인천, 경기 지역의 섬 군락에 다니려면 좀 더 큰 배가 있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쓸만한 배를 찾았다. 인천의 아름다운 덕적군도를 세일링하며 다닐 세일 요트들은 서해의 특수한 지리적 영향들 때문에 몇 가지 요인들을 갖추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서해의 뻘밭에 드나들기 쉽기 때문에 킬 길이는 2미터를 넘으면 안 된다. 또 높은 조석간만의 차로 때로 2노트의 속도가 넘는 조류의 영향으로 엔진은 가급적 강하고 튼튼하면 좋다. 또 섬에 드나들 배이기 때문에 세일링과 안전한 무어링, 앵커링을 위해 닻과 돛의 컨디션은 늘 중요한 체크 대상이다. 


네이버의 어느 작은 블로그에 올라와 있던 요트는 인천 섬들을 다닐 수 있는 적당한 크기와 엔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36피트의 프랑스 자뉴에서 만든 모델로 사이즈가 좀 더 크면 좋겠다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외국 기동이 어렵고 요트 기근 현상을 겪고 있는 요즘엔 한편으로 이 정도 배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꽤 깔끔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손님들과 수영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바다에 들어가 즐길 수 있도록 뒤쪽이 완전히 개방되는 구조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베네토 오셔니스 클리퍼 393모델인 강릉 헤밍웨이호를 약간씩 줄여놓은 듯한 디자인에 내부 구조가 예쁘게 빠진 것이 마음에 들어, 바로 선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사진을 더 받았다. 


클럽의 두 크루들과 날을 잡아 배를 보러 갔다. 서울에서 배가 있는 격포항까지의 거리는 약 300킬로미터. 리아스식 해안 구조를 가진 서해라 항까지 닿는 길이 다소 복잡한 느낌이다. 어머니의 고향이 있는 익산 근처라 내려가는 길에 펼쳐진 겨울 평야들에 오랜만에 마음을 누이며 반쯤은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염려가 됐지만 항에 도착하니 다행히 날이 갰다. 격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배가 있는 위도에 들어갔다. 구름 사이에 비치는 햇살이 아름답고 거대한 윤슬들이 바다에 반사되어 또 아름답다. 연신 카메라를 들고 크루들과 사진을 찍어댔다. 위도항에 도착하니 멀리 어선들 끝으로 높이 솟은 마스트가 하나 보인다. 그리고 배 위에서 선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무언가 가슴이 두근두근. 

 


하지만 여객선에서 내려 배가 고파 가까이에 있는 중국집에 먼저 들러 선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음식을 주문할 때 함께 식사하자고 말씀을 드리고 탕수육에 자장면을 시켜 든든히 먹었다. 식사를 하며 선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의 경계심들이 누그러진다. 선장님은 점잖고 좋으신 분으로 보이셨다. 식사를 마치고 요트에 가 본격적으로 배를 꼼꼼히 살핀다. 배는 주인을 닮는다. 배 내외부를 세팅한 느낌이 눈에 살짝 거슬리는 아재 감성들이 여럿 보인다. 배의 내력을 들어보니 전기 등은 잘 못 다루셔서 이런 저런 고장들을 그대로 두셨지만 큰 문제가 아니다. 하나하나씩 내 성향대로, 다 바꾸고 고쳐서 쓰면 된다. 배의 전반적인 하드웨어가 나쁘지 않다. 엔진은 작년에 오버홀을 하셨고 마스트도 깨끗하고 헐에도 찍힘이나 부딪힘의 흔적이 없다. 배를 볼 때는 마스트, 헐, 엔진 이 셋이 중심이다. 이 셋만 깨끗하고 큰 문제가 없으면 나머지는 선주의 취향에 따라 모조리 새롭게 디자인하고 꾸미고 바꿀 수 있다. 


내친 김에 엔진에 시동을 걸고 위도 앞 바다에 나가보았다. 크루들이 이제 이력이 좀 생겼는지, 알아서 집시트(앞 세일을 다루는 로프)를 옮기고 세일을 밀고 당기며 이런 저런 역할을 한다. 네 명의 사람들이 펄링 방식의 메인세일을 펴고 집세일을 주고받고 하면서 위도 앞바다에 나가 즐겁게 겨울 세일링을 즐겼다. 

 

임대균 (세일링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keaton7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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