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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통일되면 어떤 나라 이름이 좋을까?

역사/조경철의 역사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9. 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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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역사칼럼 2]

남북이 통일되면 어떤 나라 이름이 좋을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과거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에서 유래했으며‘대한’도 고대 삼한의‘한’(韓)에서 유래했습니다. 북한의 정식 이름인 ‘조선’도 과거 이성계의 ‘조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 기자, 위만의 ‘조선’까지 올라갑니다. 이렇듯 남북한의 현재 나라 이름은 모두 몇 천 년 전 사용하였던 이름을 다시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라 이름을 새로 짓지 않고 옛날에 있었던 이름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오늘의 역사가 과거의 역사와 계승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나라 이름을 계승하여 역사계승을 강조하는 것을 ‘국호계승의식’(國號繼承意識)이라고 합니다. 중국이 원나라 이후 나라이름을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는 것에 비교하여서, 우리의 국호계승의식은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호계승의식의 출발은 ‘부여’였습니다.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한 후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했지요. 사실 성왕은 부여라고 했지만 후대 사가들이 494년에 멸망당한 북쪽의 부여와 비교하여 남쪽에 위치한 부여라는 의미에서 ‘남’자를 붙였습니다. 그러나 성왕이 변경한 부여란 나라 이름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다시 위덕왕 때부터 백제란 나라 이름으로 환원되었습니다. 진정한 국호계승의식의 출발은 ‘후삼국’시대였지요. 견훤은 망한 백제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나라 이름을‘백제’라 하였고 궁예도 망한 고려를 다시 계승한다는 의미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습니다. 흔히 견훤의 백제를 ‘후백제’라고 하는 것도 후대에 온조의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구려’라 부르지만, 이는 잘못된 나라 이름입니다. ‘후고려’라고 해야 옳습니다. 고구려가 평양천도를 전후하여 나라 이름을 ‘고려’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구려가 고려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없어서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평양천도 이후에는 고구려보다 고려란 나라 이름을 압도적으로 많이 썼습니다. 따라서 궁예가 세운 나라 이름도 고구려가 아니라 고려였습니다.

 

삼국유사왕력 '후고려' 

<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구려'라고 하지않고 '후고려'라고 함 >

 

삼국유사왕력 '고려' 

< 고구려의 주몽을 '삼국유사 왕력'에는 '고려 동명왕'이라함 >

 

  고려시대 기록에 궁예가 세운 나라를 고구려라고 한 것은 없습니다. 궁예가 다시 사용한 고려란 나라이름을 태조 왕건이 다시 사용했는데, 고려란 나라 이름은 현재 우리나라의 영문국호 ‘KOREA’로 사용되고 있지요. 이렇듯 ‘고려’란 나라 이름은 5세기 고구려가 나라 이름을 고려로 바꾼 이후 현재까지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궁예 이후 여러 나라들이 세워졌지만 그들이 세운 나라도 모두 옛 나라 이름을 다시 사용했지요. 이성계의 조선이나, 고종의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이나, 대한민국의 대한이나, 김일성의 조선이나 모두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국호를 통한 역사계승의식의 강조 즉 국호계승의식을 유독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궁예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궁예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양하지만, 궁예가 세운 국호계승의식의 전통은 우리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현재 남북은 서로 다른 나라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장차 통일이 된다면 통일한국의 나라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나라 이름 짓는 선례를 참조한다면 아마도 예전 나라 이름 가운데 하나를 다시 사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가운데 많이 사용한 ‘조선’, ‘한’, ‘고려’가 유력하죠. 부여, 백제, 발해도 있지만 통일국가가 아니었고 신라의 경우 불완전통일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남북 통일정부의 나라 이름으로 적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과 ‘조선’의 경우 남북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호이므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이 된다면 어느 한쪽으로 정하는데 반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은 ‘고려’가 유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란 나라 이름의 역사성은 앞에서 충분히 알려졌고, 영문 국호인 ‘코리아’와도 잘 호응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려란 나라이름은 예전 북한에서 남북 통일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고려연방제’가 있어 일부 반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역사적 전통’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창조’ 또한 중요합니다. 21세기 남북통일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한다면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동안 남북의 골을 깊게 파이게 한 이념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남북통일국가의 나라 이름은 예전 나라 이름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기존의 나라 이름을 조합하여 한국+조선의 ‘한조’나, 조선+한국의 ‘조한’보다는 아예 새롭게 짓는 것을 고려해 보는 거지요. 왜냐하면 ‘한조’와 ‘조한’은 서로 앞 글자를 어느 자로 하느냐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예 새롭게 나라 이름을 짓는다면 그 나라 이름은 5천년의 우리역사와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한글’로 나라이름을 짓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죠. 그 나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자기 나라의 말과 글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영문국호를 우리말로 쓴 ‘코리아’도 좋겠지만 기왕이면 한자어도 아닌 순수 우리말, 예를 들어 ‘아리랑’과 같은 나라 이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통일한국의 ‘영문국호’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Korea인가 Corea인가의 논쟁이죠. 원래 Corea였는데 일제강점기 일본이 자신의 영문국호인 Japan의 J보다 뒤에 놓기 위해 Korea로 바꾸었다고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코리아가 주로 유럽에 알려졌을 때 Corea로 알려졌고, 19세기 이후 미국에 Korea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코리아를 알파벳으로 옮길 때 서로 다르게 표기해서 발생한 일이죠. 따라서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은 C든, K든 어느 쪽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Corea가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K코리아는 South Korea나 North Korea처럼 분단되었을 때 사용된 영문국호지만, Corea는 통일국가의 영문국호로만 쓰였기 때문이죠. 외국에서도 Korea가 Corea라고 바꾼 것을 보고 남북이 통일된 것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남북관계가 어렵다는 건 누구나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 통일한국의 나라 이름을 왈가왈부하는 게 김칫국부터 먼저 마시는 것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문제를 거창하게 접근하기보다 역사 속의 나라 이름을 통해 우리역사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해보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 둘 넓혀간다면, 점점 멀어지는 통일에 대한 담론을 일깨워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름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조경철(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사학과 외래교수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5호 >에 실려 있습니다.

 

< 조경철의 역사칼럼 바로가기 >

[조경철의 역사칼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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