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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가 지켜가는가?

역사/조경철의 역사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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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역사칼럼 1]

역사는 누가 지켜가는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서는 2017년 8월호부터 독자들에게 역사칼럼을 선물하려 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비평적 시각들로 되짚어보며 우리의 현재를 직시하고 균형있는 역사의식과 분별력을 가지기 위함입니다.

 

  대학에서 ‘한국의 문화유산’이란 강의를 하며 첫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문화유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대답을 합니다. “한글이요”, “직지심경이요”, “불국사요”, “고려대장경이요.” 여러 문화유산 가운데 제가 듣고 싶은 답은 ‘고려대장경’이었습니다. 첫째는 아니더라도 항상 다섯째 안에 대장경은 꼭 들어갑니다. 그 다음 질문은 “우리나라 왕들 가운데 가장 자랑하고 싶은 왕은 누구입니까?” 물으면 항상 첫째는 세종대왕이고 그 뒤를 이어 광개토왕, 왕건, 정조 등이 언급됩니다. 전 개인적으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지만, 그 이유는 다음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 고려대장경 >


  ‘고려대장경’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대장경이 우리나라에서 없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 몇 번 있었지요. 고려시대에 대장경은 강화도 판당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왜구들이 판당 주변까지 들어와서 쌀 등을 약탈해 간 적이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이때 대장경도 없어질 뻔 했는데, 이것이 첫째 위기였습니다.


  둘째는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조선에 대장경 인쇄본을 자주 요구했는데, 이때는 인쇄본이 아니라 해인사 대장경판 자체까지 요구하고 나섰지요.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단식까지 불사하면서 압박했습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이때 세종대왕은 대장경을 쓸모없는 물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 하면서 일본에 주자고 했지만 신하들이 반대했지요. 조선시대에 유교가 득세했기 때문에 그들도 대장경은 무용지물이라는 데는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면 그 요구가 끝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나중에 논의해보자는 식으로 거절할 것을 세종에게 건의하였지요. 세종도 이를 받아들인 결과, 대장경은 다행히 해인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문화군주로 알려진 세종이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고려대장경’을 무용지물이라고 말한 것은 믿기 어렵겠지만, 세종도 성리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불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적 한계에 갇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는 6.25 때였지요.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북으로 진군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북한군들 일부가 미처 북한으로 후퇴하지 못하자 산 속으로 숨어들었고, 산에 있는 절을 근거지로 게릴라전을 수행했지요. 그러자 미군은 절에 숨어있는 북한군들을 몰아내고자 절에 폭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가야산 해인사도 폭격대상에 포함되었죠. 폭탄을 실은 전투편대가 해인사 상공까지 날아왔고, 폭탄 한 방이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편대장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해인사에 폭탄을 투하하지 말라” 그러자 비행기들은 폭탄을 해인사가 아니라 그 주변에 터트렸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고려대장경’이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 편대장의 이름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실 ‘김영환’대령입니다.

 

< 조선왕조실록 >


  이런 고려대장경 못지않게 사라질 위기를 겪은 문화유산 중에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양의 춘추관을 포함하여 성주, 충주, 전주 등 4곳에 사고를 두고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와중에 춘추관, 성주, 충주 사고가 다 불타버렸고, 마지막 남은 전주 사고마저 언제 왜군에 의해 불태워버려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지요. 당시 전주에는 전주 이씨의 본향인 경기전(慶基殿)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전라도 관찰사는 사실 이성계의 어진을 어떻게 보존할까 경황이 없었던 터라 미처 전주 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전주 주변 마을의 유생 ‘안의’와 ‘손홍록’이 나서서 노비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전주사고의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긴 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실록을 지켜내었습니다. 전쟁 와중에 국가의 녹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한 몸 피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안의’와 ‘손홍록’은 자원하여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것입니다. 만약 ‘안의’와 ‘손홍록’이 없었다면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역사기록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뻔했습니다.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많은 전란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해 왔습니다. 그 수많은 문화유산을 지켜 낸 사람들 가운데는 여러분이 교과서에 배웠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려대장경’을 지켜낸 인물은 조선조의 세종대왕이 아니라, 현대의 ‘김영환’대령이었고, ‘조선왕조실록’도 ‘안의’와 ‘손홍록’이란 보통 사람들이 지켜내었다는 사실을 이제 이 글을 통해 아셨겠지요. 저도 계속 공부해 가면서 ‘김영환’, ‘안의’, ‘손홍록’같은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분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역사(기록)에 대한 저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지요.

  역사는 누가 지켜가는가?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는 여러분과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져 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역사칼럼’을 통해 ‘김영환’, ‘안의’, ‘손홍록’같은 숨은 영웅들을 저와 함께 만나보지 않으실래요?

 

조경철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사학과 외래교수)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4호 >에 실려 있습니다.

 

< 조경철의 역사칼럼 바로가기 >

[조경철의 역사칼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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