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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의 호랑이를 위한 변명

역사/조경철의 역사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 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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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 역사칼럼 5]

2018, 평창의 호랑이를 위한 변명


  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면 평창올림픽입니다. 평창의 마스코트가 ‘수호랑’과 그의 다정한 친구 ‘반다비’라는 사실을 아세요? 그래서 이번 1월호에서는 ‘호랑이’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호랑이는 5천 년 전 고조선, 아니 그 이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와 함께 해온 동물입니다. 호랑이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는데, 바로 김홍도가 그린 ‘맹호도’입니다. 호랑이 수염 하나하나 다 세어서 그린 것처럼 사실적이죠. 그래서 호랑이가 바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기세입니다. 그런데 이런 ‘호랑이를 위한 변명’같은 것이 있는데 대체 여기에 무슨 곡절이 있는지 들어보실래요?


  가장 오래된 호랑이 이야기는 일연이 쓴「삼국유사」의 단군신화 속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 이야기’입니다.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죠. 환웅은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쑥과 마늘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견디지 못해 뛰쳐 나갔지만, 곰은 견뎌 21일 만에 사람이 되어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듯이, 호랑이도 좋은 면만 있지는 않겠지만,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에 대한 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곰은 놔둔 채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 참을성 없는 놈,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놈 등등이지요. 반면 곰은 참을성이 있고 목표가 뚜렷하며 끈기가 있다는 식이죠. 단군신화에는 곰에 대한 좋은 얘기를 다룬 글 뿐 아니라, 호랑이에 대한 나쁜 얘기도 다 들어있습니다. 이러니 호랑이의 입장에서는 여간 억울하지 않는 겁니다.


  호랑이가 나쁜 놈이라고 몰아부칠 때 사실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환웅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제시했던, 햇빛을 보지 말고 쑥과 마늘을 먹으라는, 조건은 사실 호랑이보고 사람이 되지 말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이건 호랑이가 아무리 참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데 성질 급하고 사나운 호랑이가 꼬리를 내리고, “네에~~~~~”했을까요? 당연히 “이의 있습니다! 불공평합니다. 이건 곰에게 너무 유리합니다”했겠지요. 또는 “아니 처음부터 21일이라고 하지 왜 100일이라고 했습니까? 이건 무효입니다! 21일이라고 했다면 저도 죽기 살기로 버텼을 겁니다. 이건 아닙니다!”했을 텐데 사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김홍도의 '맹호도'


  단군신화의 처음은 곰과 호랑이가 같은 동굴에서 살았다고 하면서 시작합니다. 원문은 ‘동혈이거’(同穴而居). ‘혈’은 ‘동굴’을, 그렇지만 ‘무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덤을 같이 쓰는 친구, 즉 ‘동혈지우’(同穴之友)란 말이 있습니다. ‘동혈지우’는「삼국유사」의 다른 곳에서 ‘부부’라는 뜻으로 쓰이지요. 백년을 해로하고도 모자라 같은 무덤에서까지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뜻이니 참 마음이 애틋해지지요. ‘호랑이를 위한 변명’의 실마리는 바로 이 ‘동혈’에서 시작됩니다. 곰과 호랑이는 먹는 것과 사는 곳이 다른데, 왜 한동안 같은 동굴에서 살았을까요? 둘은 어떤 계기로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을까요? 이런 것들은 잘 알 수 없지만, 하여간에 둘은 ‘동혈’했던 영원한 사랑을 사람이 되어서도 이루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환웅이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쑥과 마늘을 먹으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인 겁니다. 곰이 먼저 말했습니다. “어쩌나 너한테 너무 안 좋은 조건이다.” 호랑이가 대답했지요. “아니야. 너만 좋으면 됐어. 나도 할 수 있어. 사랑의 힘이 있잖아.”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듯이, 호랑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지요. 마음은 곰 옆에 있지만 벌써 급한 성격의 호랑이의 몸은 이미 밖으로 나가버린 걸 어쩝니까! 물론 곰은 뜻한 바가 있어 계속 견디어서 드디어 21일 만에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호랑이와 사람이 된 웅녀 사이에 놓인 길은 너무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웅녀는 환웅을 찾아가 단군을 낳았지요. 동굴 밖 호랑이는 이 모든 일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려심이 없고 이기주의자라는 등의 온갖 욕을 먹으면서 말이죠. 동굴 밖을 나간 호랑이는 이제 우리 옆에서도 조용히 사라져갑니다. 심지어 멸종위기에까지 처해있지요. 호랑이에게 죄가 있다면 곰을 사랑한 것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죄가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여러분에게도 첫사랑이 있겠지요? 첫사랑은 눈을 감을 때도 잊지 못한다고 하지요. 호랑이의 첫사랑은 곰이고, 곰의 첫사랑은 호랑이가 아닐까요? 한국 여성이 ‘백호’때 사내애를 낳고 싶어 하는 이유가 첫사랑 호랑이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믿어주실 건가요? 첫사랑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옛사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조선시대에 전하는 또 다른 단군신화에는 환웅의 ‘웅’이 곰 ‘웅’자로 표현되었습니다(환웅桓熊). 곰과 호랑이가 서로 혼인해서 단군을 낳았다고 하지요.


  이런 호랑이가 2018년에 ‘평창의 호랑이’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네요. 사실 가만히 보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바치는 순수한 놈이죠. 올해는 그동안 못 나눴던 곰과의 사랑을 평창에서 나눠볼까요? 꼭 이뤄지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조경철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사학과외래교수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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