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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와 [엑설런스]의 저자 도리스 메르틴의 평가그 근거인 부르디외, 다시 그 근거인 막스 베버그리고 인간의 세 욕망과 그 목적인‘삶의 의미’

2023년 3월호(16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1. 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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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와 [엑설런스]의 저자 도리스 메르틴의 평가
그 근거인 부르디외, 다시 그 근거인 막스 베버
그리고 인간의 세 욕망과 그 목적인‘삶의 의미’

 

서구문화(명)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동양인들의 어려움 
 서구사회와 서구문화(명), 동양사회와 동양문화(명)의 차이는 전자는 연속적이었지만 후자는 불연속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서구문화(명)는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채 2500년을 이어왔다면, 동양문화(명)는 서구의 팽창기인 18~20세기 동안에 결정적으로 꺾여서 갑자기 그것을 버리고 삶의 모든 차원에서 서구화되어갔으며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우리는 어떤 문화(명)를 세웠다가 다 포기하고 서양문화(명)를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지를 질문하지도 않고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한 민족에 속했던 한 사람들이 이민을 가서 가장 크게 고통을 겪는 문제가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롭게 세우기 위해서 첫 세대와 둘째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 최소한 3세대에 필요한 것임이 이제는 자명해져갑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와 문화(명) 전체, 그것도 아시아 전체가 서양사회의 문화(명)로 전환을 이루는 과정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럽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로, 이는 늘 같은 문화(명)를 유지해왔던 서양인들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차원의 것입니다.

 그런 서양인의 문화(명) 중에서도 최고계층이 향유하고 유지해왔던 고급문화(명)에 동양인들도 다가가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고, 지금 오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에서 장수하게 된 한국인들은 일제시대를 경험한 제1세대, 한국동란을 직접 경험한 제2세대, 박정희 세대와 세계를 누비며 건설하여 돈 벌었던 제3세대, 민주화를 이루던 제4세대, 공산진영의 붕괴와 IMF를 경험한 제5세대와 21세기에 자라난 제6세대까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의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렇게 따라쟁이가 되어 따라잡으려고 했던 서구문화(명)의 반열에서 자기를 제대로 돌아보며 과연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자세히 실험하고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새마을운동을 하며‘잘 살아보세’라고 외치던 기억은 아직 역사적인 과거가 아닌 첫 세대들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가운데, 최고 부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으니 민족 개개인이 정신이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또 불과 몇 세대 앞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영양탕(개고기)을 맛있게 먹는 데서 지금은 애완용 강아지를 국민 4명 중에 1명이 기르게 된 이런 사회의식의 변화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개고기를 먹어 소유욕을 만족시키던 데서, 애견대상으로서 개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욕구로 변화하는 가운데, 신생아 출산률은 OECD국가 중에 최하위를 기록했으니, 이런 우리 사회의 변화는 정상적일까요?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명품 소비 1위국으로 등극했다는 것이 온 세계에 알려져 창피를 당한 경험은 얼마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자극을 줄 수 있을까요? 명품물건을 구입하고 소유하고 자랑하려는 욕구는 생존과 편리추구를 넘어서 전형적으로 서구문화(명)가 고발하고 있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소비의 전형일 뿐입니다. 안 그래도 중국에서 건너온 외국종교인 유교를 극단적으로 섬기다보니 조선시대의 예송논쟁을 거치면서 우리 속에 뿌리 깊게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관심이 극단적으로 커져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비슷해서 비교하고 비교해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정의되기도 합니다.


 이런 개개인의 의식의 동양적 밑바닥에 이미 역사적으로 견고하게 형성된 무의식적 가치관의 바탕 위에, 서구문화(명)를 그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즉 서구문화(명)의 자기정체성화를 지금의 한국인들은 시도하고 있는 셈입니다. 무엇보다도 피상적인 명품의 소비와 향유와 과시를 바로 명품문화(명)로의 진입으로 착각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렇지만 유럽사회는, 적어도 유럽사회와 역사를 주도했던 서유럽 3개국, 영국,프랑스,독일은, 그 중단되지 않았던 문화(명) 속에서 일정한 계층의 문화, 즉 귀족문화-중산층문화-하층문화를 뚜렷하게 구분지어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인의 가슴 안에서 결코 빼어낼 수 없는 동양인과 그 중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귀족문화(명)를 형성해 왔던 유럽인의 정체성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억눌려 놓았던 동양인, 적어도 한국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유럽귀족문화인의 정체성의 자의식은 결코 쉽게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명백합니다. 또 유럽문화(명) 중에서도 칼처럼 운전하여 지켜야 할 신호등이 많으면서도 또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여 속도제한이 없어 사고가 많이 나는 독일문화(명)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빨리 가지는 않게 보이지만 서로의 인간적 눈치를 보면서 빠져나가야 하는 라운드어바웃(로타리)이 많이 설치된 영국문화(명)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최소 이민1세대에서 이민 3세대에까지 이르는 정체성의 혼돈보다 훨씬 큰 어려움을 한국인 전체가 지금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 한국에 소개된 도리스 메르틴의 두 책인《아비투스》(2020)와《엑설런스》(2021), 그리고 그것의 어느 정도의 이론적 근거가 되어주었던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구별짓기》(2006)에서 말한‘자본들’1), 다시 부르디외가 부분적으로 의존하였던 막스 베버의《자본주의정신과 기독교윤리》(1905)를 서로 연관 지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서구문화(명)의 최상위층이 이룩한 자본들을 통해 형성한, 후대에 전수해주기를 원하는 고급문화(명)의 근원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이어서 종교를 무시하고 무조건 거부하며 매우 잔인한 세속화시대를 이루었던 20세기를 지나 탈세속화시대, 진정한 종교로의 회귀로 전환할 21세기에 어떻게 삼위일체 신을 모방하여, 새로운 최상위 계층을 형성해, 매우 독자적인 아비투스를 이루어, 예수처럼 성령처럼 세상과 역사를 섬길 것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도리스 메르틴의 부르디외 이용, 오해 및 왜곡
 그녀는 첫째, 부르디외를 실용적으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부르디외는 계층속에서 사회적,문화적 관습인 ‘아비투스’를 형성할 네 자본개념인, 경제자본(financial capital), 문화자본, 사회자본, 상징자본을 말했습니다. 여기에 도리스 메리틴은 ‘심리자본’,‘신체자본’,‘지식자본’을 새롭게 추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 평준화되는 추세에 있는 ‘지식자본’은 누구나 대학을 가기 때문에(특히 한국은) 계층 간의 별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 부르디외 자신도 현대의 후기 산업사회의 지식추구는 오히려 최상급사회가 자신을 사회적으로 차별화,구별짓기하는 것과는 반대일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지식보다도 더 차원 높은 그 인간성의 고귀한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거지요. 또 심리적 안정성(심리자본)과 건강한 신체(신체자본)를 유지하는 능력을 체득하는 것은 실용적으로는 매우 중요하지만, 부르디외라면 이런 일차적인 것을 자본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것을 거부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최상계층이 자신을 다른 계층과 구별짓기에 근본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녀가 부드리외를 변형하여, 일상인들이 파악하기 어렵지만 사실상 가장 중요한 부르디외의 개념인 ‘상징자본’을 좀 더 쉬운 ‘언어자본’으로 축소시켰습니다. ‘상징자본’은 부르디외가 이미 설정한 세 가지 자본이 근본적으로 인정한 존재형식인 위신,존망,명예,명성을 가진 존재로 의식하면서 말하고 행동하고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도리스 메르틴은 이것을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게 하기위해 단순히 어떤 언어를 쓸 것인가에만 축소시켰습니다.  
 셋째, 그녀는 사실 학창시절에 부르디외의 글을 읽을 때 큰 감명을 받은 것이 사실이며 자신의 출신 가정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부르디외의 분석을 결과적으로만 혹은 외적으로만 이용했을 뿐입니다. 부르디외의 철학을 결코 수납하거나 다른 철학적 원리를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경영컨설턴트라는 직업을 수행하면서 유럽의 최고계층에서 발견한 행동현상을 《아비투스》에서 소개했고, 그런 최고위계층에 도달할 자질을 함양하는 자기계발서적인 의미를 지닌《엑설런스》를 저술했을 뿐입니다. 물론 그녀의 두 작품 속의 개별적 사항들 중에서 정확하고 좋은 것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현실적 목적을 위해 고귀한(?) 학문을 피상적으로 활용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궁극적 과제인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할 최상위 계층을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위해 그녀가 의지했고, 매우 중요한 인물인 부르디외를 다룰 차례가 왔습니다.

부르디외의 문제 
 첫째, 부르디외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는 사회적,문화적으로 얻었던 최상급의 지위를 재생산하며 영속화하려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변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 점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일군 자산과 사회적 지위를 관습화시킨 행동화인 ‘아비투스’를 형성하여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주려고 한다는 겁니다. 즉 물질적 성취(물질욕)를, 가족 속에서 대물림하여(관계욕), 사회 속에서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게 하려는(지배욕) 총체적 인간을 고려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과 함께, 인간은 이성적,합리적으로 자유로운 결정을 행사하는 존재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문화적 지배권자가 휘두르는 ‘상징폭력’ symbolic violence을 통한 사회문화적 환경의 산물일 뿐이라는 인간에 대한 ‘비관적 전망’ pessimism 때문에, 인간은 궁극적으로 탈출구가 없는 어두운 사회를 형성할 뿐임을 나타낸다는 근본적 약점을 보입니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매우 가지고 싶었던 탁월함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상징폭력을 통하여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게 됨으로 일종의 지배욕 혹은 숭배(받을)욕구를 누리려는 겁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 프랑스 사회학자 / 출처-위키피디아

 

 둘째, 한 (최상층 지배)계층의 사회적,문화적 취향을 나타내는 매우 물질주의적,감각적 용어인 ‘taste’(‘맛’)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의 사회학은 ‘맛의 사회학’(sociology of taste)로 불릴 정도입니다. 감각적 용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 맛이란 혀로 감각하는 맛이라기보다, 문화에 대한 맛, ‘문화적 취향’, 문화적으로 선호하는 행동, 물품, 태도, 자세 등을 의미합니다.  
 셋째, 문화의 힘을 그는 또 다시 물질주의적 용어인 ‘자본’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물론 그가 사회학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관심은, 한 인간에서 실제로 드러나는 현상이지 생각하고 결심한 이데올로기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관념론적 전통’(idealist tradition)에 반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넷째, 위의 두 가지 점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결국 명령권자는 돈을 가진 자라는 막시스트적 분석에 동조하여, 근본적으로 정신에 대한 물질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것과 연관됩니다. 이어서 이렇게 이룩한 자산을 세대를 걸쳐가며 확대재생산하려는 의지를 인간과 사회가 가지는 현상, 즉 ‘위계사회적 재생산문화’ social hierarchy reproduction culture에 주목합니다. 그렇지만 외적 사회적 구조와 그 변혁(혁명)을 외치는 마르크스와는 다르게, 행동의 주체인 인간은 자기가 주도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이 만들고 주도하는 문화적 행동패턴과 상징시스템을 요구합니다. 이 상징시스템을 통하여 최상계층이 휘두르는 행위를 ‘상징폭력’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어떤 것이든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을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이런 문화주동자들이 상징폭력을 휘둘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기준들을 다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간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동적 존재라기보다 (상징)폭력적으로 형성되어 주어진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는 수동적 존재일 뿐입니다. 즉 인간은 자유를 누리는 존재라기보다 주어진 문화적 환경에 예속되는 결과물이라는 인간에 대한 부정적,수동적 시각을 보여줍니다. 이 점에서도 그는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내면의 변혁 가능성을 부정하고, 단지 제도와 시스템의 혁명을 시도하여 인간에게 강요하려는 막시스트적 혁명의 전통에 여전히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르디외는 그 전시대의 사상가들과 사회학자들인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에밀 듈게임, 에드문드 후설, 비트겐슈타인 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유럽의 최고급명품문화(명)에 대한 우리의 과제에 가장 관계있는 인물은 막스 베버입니다. 그는 막스 베버가 ‘사회생활에서 상징체계의 지배’를 강조한 사실을 받아들여 ‘상징폭력’symbolic violence으로 변형시켰습니다. 그는 또 막스 베버의 유명한 ‘종교사회학’sociology of religion을 ‘장이론’ field theory으로 변환시킵니다. 즉 베버는, 인간이란 종교적 확신이라는 내적 가치를 성취하려고 기본 욕망을 통제,활용하고 그 사회적,문화적 결과인 자본주의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한 것입니다. 좀 더 살펴보자면 1)내면의 확신(종교)에서, 2)윤리적 결단(개신교윤리)을 거쳐, 3)외적인 행동(자본주의정신과 사회)을 해 나가는 존재로서 종교사회학적 삶을 사는 인간이라고 규정한 겁니다.
 그렇지만 독단적이 되기 쉬운 이념주의자(idealist)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부르디외는, 인간은 자신이 관심을 쏟으며 장악하려는 ‘놀이터,장’(객관적 구조)에서 놀이하는 존재라는 ‘장이론’ field theory으로 변형하였습니다. 그 놀이터를 장악하는 인간의 후손을 통하여 재생산되는 관습적 행위가 ‘아비투스’(habitus 주관적 행위)이며, 각자가 자신 안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자본’capital으로 표현했습니다. 참여하려는 놀이터인‘장’안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자본을 축적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그 장 안에서의 각 개인 속에 자명한 ‘사회적 교조,교리’ doxa, 하나의 종교적 신념체계처럼 굳건하게 내면화됩니다.2) 이렇게 해서 부르디외는 자신의 핵심 삼중개념(장, 아비투스, 자본)으로 ‘객관성’과 ‘주관성’을 동시에 확보했다고 간주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베버는 종교→윤리→정신→사회구조로 나간다면, 부르디외는 외적 환경(장)에 반응해 나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조금 받아들이기 평이한 체제를 완성한 겁니다.     

자, 다시 막스 베버로 돌아가서! (Back to Max Weber!) 
 그런데 베버의 주장은, 그의 사후 세속화,관료화 되어가며 혼돈의 양차대전 전후로 서구문화(명)에 대한 어떠한 총체적 반성을 할 정신적 여지가 없었던, 무심하게 흘러갔던 20세기 내내, 또 그가 양차대전을 일으킨 전범국 독일의 학자라는 사실과 함께, 곧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무반성과 주관성의 과잉으로 폭력적, 폭압적이 되어버린 세속화 시대를 되돌려  탈세속화 사회로 돌아가려는 징후가 21세기에 다행스럽게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인간 행동의 종교적 기원에 대해 정직하게 질문할 수 있을 정도로 세월이 성숙해진 겁니다. 21세기는 9.11사태 이후 종교적 확신으로 인한 문명의 충돌(사무엘 헌팅턴)이 주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아니더라도, 종교문제는 언제든지 인류에게 중요한 사안입니다. 

1920년 6월 14일 막스 베버는 문화과학자이자 사회과학자로서 한참 원숙한 지적 경지에 이른 쉰여섯의 나이에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 출처-《막스베버, 이사람을 보라》김덕영지음 2008

 

 그래서 인간의 외적 행동의 종교적 동인을 끝까지 추적하였던 막스 베버로 돌아가서 그의 방대한 연구와 거대한 주장의 핵심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항속적,영속적 의미를 만족시키거나 창출하려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건강한 기초가 되었다는 겁니다. 더 설명하자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되려는 충분조건’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생존에 필요조건인 세 욕구(소유욕,관계욕(성욕),지배욕)’를 기본적으로 채우는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그는 학문적,실천적 안목을 지니는 과정에서 잘 보여주었습니다. 
 베버는 그가 젊은 시절(1904) 방문하였던 신생국가 아메리카에서 이중적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시끌벅적하며 인간의 욕망들이 분출 충돌하는 현장(창녀촌, 마피아 등)도 보았지만, 동시에 평화 속에서 누리는 자유가운데 형성해, 미국사회와 문화를 건강하게 이끌고 있는 자본주의 정신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건강한 윤리와 종교적 열정도 발견했습니다. 평화가운데 누리는 개인의 자유가, 한편에서는 사회를 혼돈,무질서,파괴로 이끌고 가는 면도 있지만, 정반대로 건강한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는 기초를 이루는데, 이 둘을 동시에 보며 그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다시 인간의 자유에 달렸습니다. 그럴 때에 누구나 죽음의 길인 전자를 따르지 않고 생명의 길인 후자를 따르려고 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여기서 인간이 생명의 길인 후자를 택하는 것은 당위,당연이 되어서는 안 되고, 중립적 선택 중의 하나일 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의 건강한 생존을 유지하려는 본능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말일 뿐입니다. 베버는 건강한 후자의 삶이 결국 미국자본주의를 형성하는 기초라는 사실을 보면서, 그것에 건강한 윤리적 기초를 제공하는 미국의 칼빈주의적 청교도적 개신교라는 종교에 집중하여《자본주의 정신과 개신교 윤리》(1905)라는 그의 핵심 저술을 비교적 젊을 때에 만들었던 겁니다. 또 베버는 ‘시민’, ‘부르지아지’라는 개념은 근대 서구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음을 밝힙니다. 3) 바로 이런 시민, 부르지아지가 사실상 유럽의 최상계층을 형성하였으며, 결국 서구문화(명)의 길을 이끄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막스 베버는 외조부가 지었던 하이델베르그의 대저택 2층에 살면서 3층에 살았던 교회역사학 교수였던 E.트뢸취(1885~1923)와 함께, 그리고 그의 집을 학문적 살롱으로 삼아 주기적으로 방문하였던 많은 학자들과 함께 동일한 독일적 학문경향을 나타내었습니다. 물론 베버 자신은, ‘일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칼빈주의의 전통을 따라 경건하면서도 활동적인 외조모와 그 영향을 그대로 이어받은 어머니로부터 큰 영향을 받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신학에서 받은 영향이 있는데, 첫째, 구약(율법)과 신약(복음)을 철처히 구분하는 독일의 루터교회의 ‘이원론의 세계관’을 그대로 따라, 구약을 단지 유대인의 책으로 간주하였는데,《고대유대교》Das Antike Judentum(1920~1921)에 이런 관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둘째,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 19세기 말의 독일 루터교적 관점인 자유주의적인 J.벨하우젠의 역사적문학적 비평을 따릅니다. 즉 구약 전체를 모세 이후로 다윗과 솔로몬을 거쳐서 왕국의 파멸과 귀환을 경험한 역사적 산물이라기보다, 단지 매우 후대에 창작된 문헌적 작품으로만 여기는 신학자들의 길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보니 3층에 살았던 신학자 트뢸치를 따라, 신약성경과 그때의 기독교도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로 오해한 겁니다.4)
 그렇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그의 종교사회학에서 칼빈주의적, 청교도적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의 정신을 일관된 일원론적 과정속에 산출해내는 출발점임을 말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이 가진 신약교회와 기독교의 이원론적 이해가 어떻게 해서 자본주의 정신을 산출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를 매끄럽게 연결시킬 수 없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은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기 위해 기를 쓰고 세상에서의 성공을 거두려고 했으며’, ‘그 성공을 거둘 때에 비로소 자신의 종교적 구원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하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정식 언약관계를 체결함으로 하나님의 자녀(왕자)가 되는 신분을 획득하는 복음입니다. 이것이 정당하게 이루어졌다면 남은 생애에서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려고 하는 열정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즉 종교란(적어도 구약의 종교나 신약의 기독교나) 첫째, 신의 자비를 통해 종교적 관계(왕자, 황태자)를 맺어 신으로부터 놀랍도록 고귀한 지위를 얻은 후에, 둘째, 그의 법을 열정적, 자발적으로 따르는 종교적 의무를 행하게 되는 것이지, 그 반대인 종교적 의무를 다할 때에 신과의 관계를 맺거나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닌 겁니다. 만약에 그 반대를 주장한다면 이는 다른 상대종교, 특히 불교의 원리와 기독교의 교리는 동일할 뿐입니다.  

건강한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종교적 기초와 한국사회에 주는 도전  
 1) 20세기(세속화 시대), 21세기(탈세속화시대)
 20세기가 종교를 철저히 배격하며 세속화를 외치는 세속화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 역으로 사회가 다시 탈세속화를 찾아 종교가 제자리를 찾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먼저 종교를 쓰레기통에 던지며 세속화를 부르짖었던 주장 자체가 또 하나의 종교가 된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된 점입니다. 이어서 서구문화가 개인주체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발생한 치명적 결과가 세상을 종말로 이끌 뻔했던 1,2차대전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타락한 기독교 때문에 기독교의 근본이었던 예수 자체도 덩달아 부인되었지만, 종교 없는 세상에서 개개인의 독단성이 분출하여 사회와 역사를 폐허로 만드는 것을 한 세기를 걸쳐 충분히 경험한 후에, 인간들 속에 조용한 자각이 일어나 ‘교단(정치), 교리(이데올로기)의 기독교’가 아니라 종교의 본질인 예수의 종교에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겁니다. 이어서 세속철학에서조차 예수에게서 더 나아가 그 출발이 되는 삼위일체 자체까지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즉 2차대전 이후 인간상호관계와 소통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모든 관계의 출발이지만 단순한 유일신교로 오해받던 기독교가 사실상 삼위일체론의 종교라는 매우 중요한 준거점으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입니다. 2천년이나 다 되어가는 매우 오래된 진리가 아주 새롭게 부상한 겁니다. 신학의 세계를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현대의 세속철학의 세계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대표적 프랑스 세속철학자의 한 사람인 들뢰즈가 말하는 ‘흐름의 철학’은 상호간의 관계의 흐름과 생성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 핵심은 삼위일체 신들 사이의 ‘상호내주’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임이 드러났으며, 그 역사적 실천이 바로 아들 된 예수의 아버지에 대한 절대복종의 표현으로서 인간으로 하강함과 죽음에 자신을 내어맡김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2) 예수가 겪고 극복했던 세 시험(물질욕,관계욕,지배욕)
 도리스 메리틴의 근원이었던 부르디외를 지나서 더 근본적인 막스 웨버에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일관된 문제는, 유럽의 최상층부 속에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진행되었던 기본적 세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존재로서의 인간입니다. 만약 이 욕구 자체를 죄악시한다면, 물질세계와 보이는 문(명)화와 심지어 그것을 허용하고 격려하는 신 자체를 부인하는 꼴이 됩니다.
 그런데 이제 탈세속화시대에 인간이 바라볼 관계형성의 근거가 되는 본질적인 내용은, 바로 그런 세 욕망을 지닌 인간이 되어서 인간계로 하강한 신인 예수가 마귀에게서 시험을 받은 이유입니다. 즉 욕망을 채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살라고 유혹하는 마귀를, 예수가 이겨낸 사건입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마귀의 유혹에 대해,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태복음 4:4)라는 예수의 대답 속에, 인생의 수단과 목적과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보여줍니다. 이런 예수를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예민한 촉각을 가진 세속 철학자 들뢰즈조차 이렇게 요약,소개합니다 :
“그 (그리스도)가 가져온 ‘기쁜 소식’은, 1) 죄에서의 해방선언(죄라는 개념 억누르기 sic), 2) 모든 분노 그리고 모든 종류의 복수의 정신 없애기, 3) 그에 따른 모든 전쟁의 거부, 4) 땅 위에서 인의 왕국이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 5)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가르침의 증거로 죽음을 수용하기, 등이다.”
즉 예수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 바로 나가서 한 일은 기적과 같은 어떤 화려한 외적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우선적으로, 원인류였던 아담이 실패하였고(‘먹음직하고(소유욕), 보암직하고(관계욕),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배욕)’ 창세기 3:6), 모든 인류가 늘 직면하는(‘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요한1서 2:16), 인간 존재의 도구인 세 욕망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즉 도구인 욕망을 목적으로 바꾸어 궁극적으로는 창조주인 신의 자리를 탐내는 마귀를 닮은 존재가 되려는 유혹을 거부하고, 대신 하나님의 법(말씀)에 철저히 의지해 자신을 통제하며 궁극적 목적인 섬기는 삶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겁니다.    
  
3) 한국사회에서 사회와 역사를 섬길 최상층을 형성할 아비투스
 첫째, 막스 베버가 칭찬했던 개신교조차도, 특히 한국개신교가 신플라톤주의를 결국 버리지 못한 어거스틴을 따라, 이원론적 경향을 버리지 못하여, 희생하면서 세상을 섬기며 침투해 들어가는 일원론적 종교를 만들지 못한다면, 예수의 종교가 아닌 타락한 종교일 뿐입니다. 결국 이원론에 빠졌던 로마교와 동방정교와 함께 포기되어져야 합니다. 대신 현대 세속철학자들 조차 인정하는 예수의 종교, 왕으로 통치하지만 종으로 섬겼던 예수의 종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필수적입니다(‘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끝이 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9:37). 
 둘째, 예수의 종교에서 새롭게 첫 출발을 다시 했다면, 삼위일체의 종교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종교에 대해 마르크스적 대적감으로 대하는 중국이 일으킨 코로나19, 결코 러시아적 어리석음과 부패와 정복욕을 버리지 못한 러시아가 일으킨 우-러전쟁으로 막심한 혼란을 경험하는 21세기 세상은, 막스 베버가 관찰했던 20세기 미국의 능력의 시효가 다하여, 이제는 철저히 마귀적 속성을 가진 전체주의적,사회주의적 체계나, 매우 이기적이 되어가 시효가 소멸되어가는 미국적,유럽적 자본주의체계를 극복할 새로운 사회,경제체제가 요구되는 때입니다. 이럴 때에 세 신이 한 신이 되는 지상 최고의 신비인 삼위일체는 새로운 대안이 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여 새창조 역사의 기초를 놓은 첫 번째 하나님인 예수가 있고, 그 분의 역사가 끝난 후 50일 만에, 역사 가운데 등장하여, 현재의 우주의 역사를 이끌지만 숨어서 예수를 드러내는 겸손한 둘째 신이 성령이 있습니다. 이 신은 역사와 세상을 초월하고 계시나 예수처럼 세상 속에 내재하면서 역사를 추동하며, 우주의 거대역사와 쥐구멍의 미시역사 모두를 통괄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넓게는 자유진영이 2차대전에서와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 결국 승리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중공에 대한 승리도 이어지게 할 것입니다. 또 좁게는 한반도에서 미국무장관 에치슨이 미국의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다고 어리석게 선언해 그것을 오판하여 북한, 중공, 소련이 합쳐 남한을 침공해 한국동란이 일어났지만, 아슬아슬하게 남한만 살아남은 궁극적 기적이 연출되었습니다. 크고 작은, 길고 짧은, 넓고 좁은 역사, 사건, 민족, 국가, 대륙,환경, 기술 모두를 통치하고 관장하고 계시지만, 매우 특이하게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시는 겸손한 하나님인 성령을 존중하는 무리들이 일어나서 최상층에서 성령의 신비한 지혜로 인간과 역사와 우주를 섬기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이어서 미래에 등장하실 셋째의 하나님인 성부의 사역에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정작 아버지로 불러지는 최고의 위격을 가지지만, 가장 나중에 역사에 등장하여 쉽게 뒷방 할아버지 신세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미래전망도 없이 늘 반복되는 현재에만 사는 존재라면, 그 덧없는 반복이라는 지겨움에 압살당할 것입니다. 이 성부가 하실 미래의 심판을 기다리는 궁극적 종말론은, 개인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개인과 사회와 역사의 모든 행동이 궁극적 잣대 아래서 정의와 공정으로 판정받는 날을 고대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이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삼위일체의 참여를 학수고대하는 세상과 역사위에 삼위일체와 함께 동참하여 역사를 추동할 최상층의 인간들이 한국에 나타날 때입니다. 만약 그런 계층이 예수처럼, 자기의 욕망을 목적으로 변질시키지 않으며, 날마다 세상과 역사를 섬기며 신의 뜻을 행하는 목적으로 회귀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베네치아,네델란드,영국과 미국을 거쳐 다섯 번째의 패권국이 될 나라로 인구가 가장 많고 땅덩어리가 크다고 자랑하는 중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 지고 있습니다. 대신 한국동란에서 기적적으로 겨우 보존되어, 좁은 땅덩어리에 반토막까지난 곳에서 살아남았으며, 세계의 최강대국들을 사면에서 마주하고 있으며, 또 비록 인구절벽으로 신음하고 있는 한국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최상계층의 시민을 형성한다면 백억의 인구가 될 세계와 그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순진한 생각일까요? 좁은 한반도에서 오천만이라는 인구로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4백여 년 전에 만주족 한명이 한족 3백명(1:300)을 통치하기 위해 전부 산해관을 넘어 중국에 들어가기로 결행하고 268년의 중단 없는 통치(1644~1912)를 이룬 것을 기억한다면8), 결코 황당한 소리는 아닐 것입니다. 오천만 인구로 세계인구 백억을 섬기면서 통치할 것을 결심하며, 최상층의 아비투스를 각‘장’field에서 일구려고 한다고 할 때의 비율(1:200)은 만주족이 한족을 통치한 비율에 한참을 못 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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