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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원서 읽기를 끝내고

2023년 3월호(16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1. 1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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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원서 읽기를 끝내고

 

출처-Simon & Schuster

 

3년 전 단둘이 같은 교무실을 공유한 인연으로 알게 된 국어 선생님과 1년에 걸쳐《대지》원서 읽기를 끝냈다. 우리는 하루에 한 페이지씩 같이 읽기로 했다. 먼저 전화를 건다. 소리 내어 영어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말로 해석도 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날은 없기로 했다. 명절이나 여행을 가서 못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그런 날이 예상되면 그 전에 미리 두 페이지씩 읽기도 했다. 책 선정은 그렇게 많이 고민하지 않았다. 영어 원어로 읽고 싶은 책이 너무도 많았고 어떤 책도 다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만났다. 마지막 페이지는 얼굴을 보고 같이 읽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매우 행복했다. 국어 선생님은 자주 나에게 고맙다고 하신다. 내가 아무래도 영어 전공자라 문장의 해석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설명을 할 수 있어서인 것 같다. 아니라고. 고마운 건 나라고, 책을 같이 읽으며 너무 행복하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그러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생각해 보았다. 학교 수업과 가정 살림 및 육아에 바쁜 일상을 쪼개고 쪼개 전화를 드는 하루 20분이 왜 그렇게 한결같이 일 년 동안 행복했었는지를 말이다. 

어쩌면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읽어서는 그냥 쓱 읽고 넘어갈 텐데, 같이 읽으면 정말 온전히 음미하게 된다. 문화의 이해 부족 또는 사전에서도 검색이 안 되는 표현이 나올 때면 여러 다른 사전 및 구글 검색 등을 통해 의미를 찾아보았다. 교과서로 배운 단어와 문법 지식이 문맥 속에서 쓰이는 활용을 보며 ‘아, 이거구나!’하고 가슴을 쳤던 순간이 너무나 많다. 해석을 해 놓고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고민할 때 국어 선생님은 바로 적절한 예와 고사성어를 들어“이런 의미는 아닐까?” 하신다! 작가가 여러 권의 책을 쓰겠지만 그걸 다 읽는다고 해도 한 권을 이렇게 읽으면 그 작가와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나는 단언해 본다. 모든 작가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다르고, 문장의 구성과 어휘의 선택 및 수사의 형태가 다르다. 고전 명작을 남기는 작가들에게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필력의 위대함이 있는데, 그 매력이 모두 다르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그 매력들을 만끽하는 즐거움은 혼자가 아니라 같이 읽을 때 두 배가 아닌 열 배, 스무 배가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닮고 싶은 삶의 선배이자, 동료이자, 언니인 국어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그저 매일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 그녀가 필리핀에서 교환 교사를 할 때 원어민 동료 교사가 붙여준 별명이 ‘Never Stop Gloria’였다고 했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여자! 어쩌면 나는 그녀와 조금 닮기도 했다. 나도 그렇다. 무언가 한번 이것이다! 하고 시작하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간간이 나누었던 삶의 대화들, 책을 읽어가던 도중 내가 삶의 다른 문제로 완전히 무너져 드러누워야 했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결코 멈추는 법이 없이 살아가는 그녀가 달려와 내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책 읽기가 열어준 마음과 마음의 만남!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내게 접선이 된다. 따듯한 온기, 올바른 마음, 도전의 약동이 전해진다. 우리는 약속을 했다. 우리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삶의 시간이 허락되는 한, 우리는 매년 한 권씩 책을 읽을 거라고. 이렇게 같은 방식으로! 읽고 싶은 책들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우린 또 어렵지 않게 새로운 작품을 고를 거다. 좌절과 낙심, 고독의 경계에 서서 늘 돌이키기를 반복할 때 그 때 함께 낭독하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우리의 장력이 되어 그저 ‘기쁨’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을 선사 받을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말이다.

 

의정부 발곡고 영어교사 장자희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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