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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머무는 볕(陽) - 광양(光陽)한옥 이야기

2023년 3월호(16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1. 1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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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천의 건축이야기 4

마음에 머무는 볕(陽) - 광양(光陽)한옥 이야기 

부제: 마을재생을 통한 지역의 소중한 삶을 일깨우다.

 

 2022년 늦가을, 광양 인서리 한옥에서 태어나 자라신 70대 어르신과 만나 깨끗하게 고친 한옥에 대한 소회를 여쭸다. 

“112년 된 이 집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지으려고 했었지. 그런데 태어나 자란 집을 없애는 게 마음이 쓰여서 계속 세를 줬어. 가족들과 서울에 살고, 일이 바쁘니 큰 신경을 못 썼는데, 광양시에서 사서 고친다기에 팔았어. 그런데 이렇게 잘 고쳐질 줄이야. 정말 고마운 일이지. 저 뒷방이 내 공부방이었고, 여기는 부엌이었어. 다 기억이 나… 저 동백나무는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심으셨어.” 

본인 추억이 깃든 집을 판 것이 아쉬우셨는지 종종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하셨지만 대문을 밀고 나서며

“집을 살려줘서 고맙네. 광양시 소유가 되었으니 다시 살 일은 없겠지만 이렇게 마당에 서니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추억, 아버지와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좋네. 종종 올 수도 있겠고…”

우리 모두 낡았든 새 것이든 물질로 이뤄진 건물에서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산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
 
2016년 5월. 당시 광양시총괄건축가 안재락 교수님께서 광양읍에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있는데 한옥이 맞는지 또 이 집들을 살릴 수 있는지 와서 봐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광양? 그 곳에는 지인도 없고, 광양제철소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딱히 관광지라 떠올릴만한 것이 없어서 인근 순천이나 여수를 들를 때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이 광양이었다. 큰 기대 없이 자문을 위해 내려간 광양읍에서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햇빛이 가득한 너른 마당과 한옥이었다. 옛날 이 동네를 광양(光陽)이라 지은 누군가의 눈에도 저 빛과 땅이 어우러진 집들이 보였으리라. 이렇게 밝고 따뜻한 곳에 한옥이 자그마치 600여 채나 남아있었다! 


광양읍에 남겨진 한옥은 대부분 일자형 평면으로 남향 한 전면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에 방을 북쪽으로 길게 놓은 겹집구조였는데. 이런 유형은 한반도 남동해안형 평면으로 바다에서 멀지않은 광양읍도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 사는 방식이 비슷해서 대부분 환경에 영향을 받는데, 특히 건축물은 지어지는 곳이 땅이고, 집을 둘러싼 것이 하늘이고, 풀과 나무들이라. 집과 나무를 보면 지역의 특색을 엿볼 수 있다. 


광양한옥은 볕이 가득한 마당과 감나무, 구불구불한 골목과 낮은 담으로 둘러싸여 지역의 풍토를 그대로 설명한다. 이 중 마당에 감나무를 심은 집들이 눈에 띄어 마을주민께 물으니 오래전부터 집집마다 감나무를 심었다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동네를 ‘감나무골(고을)’이라고도 부른단다. 빛이 가득해서 광양(光陽)인 마을에 집집마다 마당에 심은 감나무는 그 빛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는 햇빛을 막아줘 집을 시원하게 하고 가을에는 햇빛에 익은 열매를 주고, 겨울에는 잎을 떨궈서 빛이 벽에 닿게 해 따뜻하게 해준다. 오래된 동네의 집들을 유심히 봐야하는 이유는 이렇듯 집이 주변을 설명해주며 사람 사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광양한옥이 지역의 기후, 풍토, 축적된 역사적 기억을 다시 인식하게 될 소중한 자산임을 알리기 위해 2016년부터 2년간 광양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참여했다. 광양읍에 남겨진 600여 채의 한옥들은 지어진 시기가 조선후기부터 1980년대 광양제철소가 건설되는 시기까지 다양했는데 각 시기마다 사용한 기와의 재료, 목재의 원산지, 가공방식을 분석해보니 시기에 따른 특성을 알게 되었다. 이에 조선후기, 일제강점기, 1960년대, 1980년대 시기별 광양읍 주거의 특성을 간직한 한옥의 매입을 광양시에 제안했고, 시에서 예산을 편성해 2018년 매입을 완료했다.


자! 매입했으니 이제 끝일까요? 
우리는 매입한 한옥 고치기에 앞서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1)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한옥이 지어진 시기의 생활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요? 
2) 과거를 인식하며 지금을 살기 위해서 매입한 한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3) 겨울에 춥고, 여름은 덥고, 대부분 자연재료로 지어져 관리가 어렵고, 나이 들어 오르내리기 불편한 한옥, 그래서 외면당한 한옥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4) 여러 세대를 지나 삶과 죽음을 관통해 축적되어온 기억을 어떻게 연속적으로 쌓아갈 수 있을까요?


오래된 집을 고칠 때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집이 전하는 장소의 의미, 지역의 기후, 풍토를 존중하는 자세로 접근하면 됩니다. 2019년 설계를 완료한 후, 12월 공사에 착수해 2021년 봄에 완성된 광양한옥은 현재 북 카페, 게스트하우스, 전시관, 교육시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한옥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그 지역의 독특한 특성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이를 녹여낸 건축물을 만들 때 진정한 새로움이 됩니다.
 
올 봄 매화꽃 필 때 광양한옥에 방문해보시면 어떨까요? 
마음에 머무는 따뜻한 볕을 느껴보세요. 

 

 

㈜참우리건축, 김원천 한옥건축가
building@chamooree.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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